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2. 요한복음의 로고스 - 생각하기와 말하기 우리의 언어는 이미 타자에게서 왔고 의식의 세계 역시 타자에 의해 타자의 언어로 일깨워졌고 타자에 의해 형성된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수많은 감각 중 청각을 통한 소리와 음성 언어다. 청각만이 아니다. 온몸의 모든 감각을 사용하지만 특히 언어를 통해 의식의 감각이 일깨워진다는 점이다. 이때의 언어는 그 사회의 문화와 전통과 집단 무의식의 총합이 깃들어 있는 전통 언어다. 생존을 기본으로 한 약육강식의 언어가 내 대뇌피질의 신경망에 반복해서 들려지고 언어 감각과 생각의 기능들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언어는 나의 언어가 아니라 타자의 언어다. 비록 나의 언어 감각기관을 통해 발성이 이뤄지고 발화가 된다 하더라도 이는 마치 앵무새와 같이 타자의 언어를 반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앵무새와 다른 점이 있다면.. 더보기 A.뮈토스와 로고스 1. 뮈토스에 대해 뮈토스는 흔히 신화로 번역하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서사구조를 띠기에 내러티브(narrative)다. 성서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고 한다. (딤전 4: 7) 성서는 온통 이야기로 기록되었다. 바울의 신화를 버리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성서는 공교히(궤변을 꾸며) 만든 이야기일까? 신화에 매몰되면, 그러니까 이야기에서 로고스를 읽어내지 못하면, 신화에 빠진 거고 그럴 때 허탄한 것이 되고 만다.(딛1: 14) 신화는 봉한 샘이고 덮힌 우물이고 로고스를 함장하고 있는 판도라 상자다. 인을 떼어 봉합이 풀릴 때마다, 우물의 덮개가 열릴 때마다 로고스는 홍수를 이루고 심판을 완성하고 생명의 꽃을 피운다. 뮈토스, 오늘까지 살아남아 전승되는 이야기는 단지 흥.. 더보기 에덴의 뮈토스와 로고스 김창호님의 '예수의 믿음'이란 책을 읽고 큰 감동과 내 믿음의 확신과 위로와 희망을 얻었기에 그분의 신간 '에덴의 뮈토스와 로고스' 책을 기쁘게 사서 읽기 시작했다. 내 믿음의 영역에 배치되는 부분이 전혀 없기에 내 품에 보물 안듯 품게 되는 책이었다. 누가 나에게 "교회도 다니지 않으면서 성경은 끼고 사는 너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물으면 "일반적으로 교회라 불리워지는 단체가 내걸고 있는 교리들과 그곳 목사님들의 설교가 내 믿음에서 많은 부분 동의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관계라는 개인적인 필요를 위해 교회라는 조직에 속하는 것이 용납이 잘 안 될 뿐더러 동의하지 못하는 믿음의 굴레 아래 한 조직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도 그 조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면 또 이런 질문을 할 .. 더보기 인자의 기도와 새 창조 '에덴의 뮈토스와 로고스'의 저자 김창호님의 글 사실 '인자의 기도와 새 창조' 이 글은 도무지 가슴에 와닿지 않는 글이다. 하지만 새 창조의 일곱 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글일지 몰라 한 문장 한 문장 세심하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인자의 기도와 새 창조 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언제나 계시며 전능하신 자이다. 그 하나님은 전에도 창조자이시며 지금도 창조자이시며 언제나 창조자이시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만물을 창조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고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또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 예언되고 있다. 하나님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알파와 징조로 삼아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 처음 창조에 속한 육신의 첫 사람은 아무도 .. 더보기 이사야와 요한계시록 '형상과 글' 카페. 김창호님 글 창세기는 첫 창조의 기록인 동시에 새 창조를 위한 징조서다. 징조서를 과학의 눈으로 보려하는 데서 많은 오류와 오해가 생겨나고 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을 징조로 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것을 계시하고 있다. 마ㅏㄴ약 창세기가 과학서가 되어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과학자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징조서는 영과 생명의 눈에만 그 계시가 드러난다.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은 영과 생명의 눈으로 바라본 새 창조의 계시다. 이사야는 만군의 야웨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이름으로 예언하였고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언하였다. 이사야는 구약의 예언자요 요한은 신약 시대의 예언자다. 예언의 순서로 보면 이사야의 예언은 처음이요 .. 더보기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김창호 글 요한계시록은 무엇인가? 요한게시록은 새 창조의 계시다. 요한계시록은 세상의 종말에 관한 책이 아니다. 만약 어느 누가 요한계시록을 세상의 종말을 말하고 있는 책으로 읽고 있다면 그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신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들 안에 이루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예언이다. 요한계시록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종말을 말하고 있는 점서가 아니라 그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어떻게 새롭게 창조되는 지를 계시하고 있다. 계시란 무엇인가. 감추인 것을 열어보임이다. 요한계시록은 우리 모두에게 감춰있던 영과 생명의 실상을 열어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그 열린 책은 도리어 닫힌 책이 되어 있다. 이는 사람들이 욕심의 눈으로 그 책을 읽으.. 더보기 요한계시록 1장 주해와 번역 '예수의 믿음'의 저자 김창호님이 운영하시는 '형상과 글' 카페에 올려진 글들은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지만 유독 요한계시록만이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보는 글자의 모듬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최근에 다시 읽으니 투명한 유리창이 거둬졌는지 글자 하나 하나가 보물이고 그 모둠이 보물창고가 아니겠는가.. 노트에 받아적은 내용을 내 블로그에 다시 옮겨 적어보면서 주옥같은 그 글들을 다시 음미해 볼 생각이다. 1.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하나님이 자기의 종들에게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에게 주셨고, 그는 자기의 종 요한에게 보낸 자기의 천사로 말미암아 징조를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1절은 20장 전체를 여는 열쇠다. 만약 우리가 1장 1절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요한계시록에 충.. 더보기 하나님의 자녀에 대하여 ... 요한은 우리의 실존적 시간(카이로스)을 좇아서 우리 안에 무엇이 새롭게 창조될 것인지를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점치는 자들은 우리의 흘러가고 있는 시간(크로노스)을 좇아서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아내려 한다. 그런즉 우리가 어느 시간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계시록은 예언이 되기도 하고 점이 되기도 한다. 성경에는 분명하게 두 가지 시간이 제시되어 있다. 영의 소욕을 좆아 사는 자의 시간인 카이로스와 육신의 소욕을 좆아 사는 자의 시간이 크로노스이다. 크로노스는 우리의 처음의 때이며, 카이로스는 우리의 나중의 때이다. 처음의 때에 사는 자에게는 요한계시록은 점서이며, 나중의 때에 사는 자에게는 요한계시록은 예언서이며 징조서이다. 예언이나 징조는 모든 사람에게 나중의 때에 들어와서 영과 생명 안.. 더보기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37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