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과 글' 카페.
김창호님 글
창세기는 첫 창조의 기록인 동시에 새 창조를 위한 징조서다.
징조서를 과학의 눈으로 보려하는 데서 많은 오류와 오해가 생겨나고 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을 징조로 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것을 계시하고 있다.
마ㅏㄴ약 창세기가 과학서가 되어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과학자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징조서는 영과 생명의 눈에만 그 계시가 드러난다.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은 영과 생명의 눈으로 바라본 새 창조의 계시다.
이사야는 만군의 야웨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이름으로 예언하였고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언하였다.
이사야는 구약의 예언자요 요한은 신약 시대의 예언자다.
예언의 순서로 보면 이사야의 예언은 처음이요 요한의 예언은 나중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요한의 예언으로 말미암아 온전해졌고 또 두 예언은 하나가 되었다.
이사야의 예언은 요한의 예언의 알파와 징조가 되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 풍성하고 온전한 하나를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은 만군의 야웨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계시 되었고 그 아들은 예수와 그리스도로 계시되었다.
만군의 야웨는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어 거기에서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시어 그들을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이다.
예수는 하나님께 심판된 그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시어 모든 죄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신
아들 하나님이요, 그리스도는 죄사함을 받은 그의 형제들 안에 임재하신 기름부음의 하나님이다.
아버지의 이름도 알파와 오메가로 아들의 이름도 알파와 오메가로 계시되었다.
이는 사람 또한 처음과 나중의 두 존재이기 때문이다.
야웨 하나님은 첫 사람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는 둘째 사람을 거룩하게 하신다.
아버지는 심판과 의의 하나님이시다. 심판은 알파요 의는 오메가다.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이시다. 그의 은혜는 사람 안에 진리를 이루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하나이며, 하나님의 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는 하나다.
하나님과 그 아들이 하나임과 같이, 하나님의 새 창조 안에서 첫 사람과 둘째 사람은 하나이며
그 하나된 실존은 하나님과 하나이다.
이사야는 메시아를 예언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예언을 좇아 메시아로 오셨다.
그와 같이 어린양의 신부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요한의 예언을 좇아 새 예루살렘을 이룬다.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실존으로 드러났듯이 요한의 예언은 새 예루살렘의 거룩한 실존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을 좇아 새 예루살렘이 되어 하늘에서 내려온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고, 듣고, 마음에 품는 것은 그 계시가 우리에게서 새 예루살렘의 실존을 이루게 하려 함이다.
이사야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던 유대 나라가 앗수르의 위협에 직면하여 있을 때 그것을 배경으로 예언하였고,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가 로마의 지배하에서 우상숭배와 핍박에 시달리고 있을 때, 그것을 배경으로 예언하였다. 유대가 처하여 있던 상황이나 소아시아의 에클레시아가 처하여 있던 상황이나, 오늘날 우리가 물신숭배에 처한 상황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다르지만 육신의 처음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점에서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지금으로부터 2800년 전의 이사야의 예언이나 2000년 전의 요한의 예언은 오늘 우리에게 와 있는 예언이다.
두 예언은 육신의 크로노스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의 카이로스 안으로 들어와서 새롭게 창조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고 있다.
해 아래 사는 크로노스의 삶은 새 것이 없으나 하늘에 속한 카이로스의 삶은 언제나 새롭다.
이사야가 예언할 당시 유대에 거짓 예언자들이 많았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자신의 예언을 '하존'이라 불렀고
거짓 예언자들의 예언을 '히자욘'이라 불렀다.
하존은 말씀이 말씀 자신을 드러내는 나중 사람의 실존상, 곧 로고비젼(logovision)이며
히자욘은 거짓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첫 사람의 욕심을 이루고자 하는 꿈이나 환상
곧 에고비전(egovision)이다.
로고비전은 카이로스에 속한 영원한 생명의 계시요, 에고비전은 육신의 크로노스에 속한 생존의 몽시다.
이사야서의 하존은 요한계시록의 아포카리프시스(계시)이며, 그 계시가 이루어진 실존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거짓 예언자는 에고비젼을 좇은 자들을 그의 징조로서 미혹하고 있다.
성경에 두 종류의 시간이 계시되어 있다. 처음과 나중이라 할 때 그 처음은 크로노스요, 나중은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첫 사람의 시간이며 카이로스는 둘째 사람의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실존적 시간, 수직적 시간, 새 창조의 시간이며, 크로노스는 역사적 시간, 수평적 시간, 흘러가는 시간이다.
'때가 가깝다'라고 한 시간은 카이로스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 카이로스 안에서 그의 자녀들을 새롭게 지으시는 것이다.
이사야는 그의 예언 속에서 우리에게 세 가지 길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로고비전의 길과 이스라엘 자손이 좇는 에고비젼의 길과 앗수르와 애굽과 다른 나라들이 좇는
세상 권세의 길이다. 요한 역시 그의 예언 속에서 세 가지 길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길과 종교의 에고비젼의 길과 종교의 에고비젼의 길과 로마의 권세의 길이다.
사람은 그가 어느 때 어느 장소에 살고 있던 간에 이 셋 중 하나의 길을 걷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세 길은 모두 알(R)자로 시작하고 있다.
즉 레마와 종교(Religion)와 로마(Rome)의 알(R)이다.
이 땅에 사람이 사는 한 어느 누구든지 이 세 길 중 하나를 걷지 않을 수 없다.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은 그 때 그 곳의 사람들에게 그 때의 상황을 바탕으로 예언된 것이므로
그것은 알파다.
그 알파의 예언이 오늘날 그 예언을 읽는 이들에게 새 창조의 징조가 되면 그것은 오메가다.
오메가에도 처음과 나중이 있다. 그 처음은 그 예언에서 받은 새 창조의 말씀이요,
나중은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이루어진 새 창조의 증거다.
이사야서의 하존(로고비젼)과 요한계시록의 아포카뤼프시스(계시)는 하나님의 새 창조 안에서 하나다.
요한계시록에는 붉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음녀와 그들에게 속한 무리들이
어린 양과 그의 신부를 적대하는 세력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로고비젼을 그들 자신의 탐심의 에고비젼으로 바꾸었다.
오늘날 진리의 이름으로 선포되고 강요되고 있는 수많은 교리들이 에고비젼의 산물임을 아는 이는 지극히 적다.
요한계시록은 교리를 가진 자가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스스로 짐승이 되고, 거짓 예언자가 되고, 음녀가 되고,
그들의 무리에 속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