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1.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걷고 있는가? 조도재 1. 종이냐 아들이냐 근원 안에 하나님이 그 하늘들과 그 땅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땅을 말씀으로 새롭게 지으시고 첫 창조의 여섯 날 마지막에 사람을 그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것은 사람이 근원(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그의 모양(신성, 충만)을 본받아 그의 아들이 되는 오메가의 새 창조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육신의 첫 사람은 그가 영이신 하나님께 말씀으로 낳아져서 하나님의 영의 모양을 본받기까지는 처음 땅과 같다. 육신은 처음 땅(땅의 기초)처럼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은 깊음 위에 있다. 첫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을 보아도 보지 못하는 흑암과 들어도 듣지 못하는 공허와 마음으로 생각해도 깨닫지 못하는 혼돈과.. 더보기 로마서 5장은 원죄를 말하고 있는가? 조도재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원죄론을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로마서 5장이 원죄론의 근거처럼 된 것은 너무도 충격적이며 슬픈 일이다.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무엇을 말했는지 자세한 것은 필자의 로마서 주해서 '신 됨을 위한 호음'을 살펴보시기 바라며 여기서는 로마서 5장 17, 18, 19절이 대상이다. 롬 5" 17 에이 - 가르 토 투 헤노스 파라프토마티 호 다나토스 에바실레우센 디아 투 헤노스, 플로 말론 호이 텐 페리스세이안 테스 카리토스 카이 테스 디카이오쉬네스 람바논테스, 엔 조에 바실레우수신 디아 투 헤노스 예수 그리스투. 필자번역: 만일 그 한 사람의 그 범죄를 좇아서 그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다스렸다면 그 은혜와 그 의력의 그 선물을 넘치게 받는 그 사람들은 그 한 사람 예수 .. 더보기 나의 나 됨 조도재 각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됨 곧 '나의 나 됨'이다. '나의 나 됨'은 남을 탓하는 선악지식으로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하나님의 길을 걷는 대전환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담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남을 탓하게 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부터는 먹지 말라 하셨다. 원죄론을 누가 무슨 말로 항변한다 할지라도 뱀의 길이요 사망의 길이다. 첫 창조에 속한 첫 사람은 누구나 육신에 갇혀서 아담처럼 자기 욕심을 좇아서 선악지식의 길을 걷는다. 아담은 '레네페쉬 하야'가 되었음에도 사랑의 하나님을 닮으려 하지 않고 선악지식을 좇아서 하나님처럼 되려 하였다. 첫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좇아서 육신의 길을 걷고 있으므로 모두 죄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선악지식을 좇.. 더보기 선악지식 야웨 하나님은 처음부터 나중까지 아담을 비롯한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믿음을 통하여 그를 향해 살고 또 그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어 그를 닮은 영과 생명의 실존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먼저 아담을 '레네페쉬 하야'가 되게 하셨고 또 에덴동산을 지키고 경작하게 하셨다.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허망하고 거짓된 원죄론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근본적인 이유는 선악지식이다. 즉 불리한 것(악으로 여겨지는 것)은 남에게 돌리고 유리한 것(선으로 여겨지는 것)은 자기에게 돌리는 인간 자신의 생존 가치에 있다. 속담에 말하기를, "잘 된 것은 내 탓이요 잘못된 것은 조상 탓"이라 한다 하였다. 이 일이 성경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기록된 바, '그 때에 그들이 다시 말.. 더보기 사망 조도재 만약 사람들이 사망에 대하여 분명히 이해하였다면 원죄론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야웨 하나님이 아담에게 그가 먹지 말라 명한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 '정녕 죽으리라'한 그 죽음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제자가 예수께 말하기를 "나로 먼저 가서 나의 부친을 장사하게 하소서" 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였다. 분명 예수께서는 여기서 두 가지 죽음을 말하고 있다. 육신으로 죽어서 땅에 묻혀야 할 사람이 있고, 육신으로는 살아 있으나 하나님을 향하여 죽어 있는 사람이 있다. 아담이 하나님이 그에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실과를 먹고 죽었던 죽음은 육신으로는 살아 있으나 하나님을 향하여 죽은 죽음이다. 그가 금지된 실과를.. 더보기 죄란 무엇인가? 글 조도재 히브리어 '히타'이든지 헬라어 '하마르티아'이든지 죄는 '푯대에서 빗나감'이다. 그러면 사람은 무슨 푯대에서 빗나갔기에 모두 죄인이 되었는가!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고 또 그의 모양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려 하셨다. 그것이 창세기 1장 26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경이로운 예정이다. 하나님은 그가 모든 사람의 그 육신의 '나' 안에 낳아주시는 그 영의 '나'로 말미암아 '나의 나 됨'을 이루게 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예정의 푯대이며 거기서 빗나가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모두 죄인이다. 아담은 원죄 없이 그 푯대에서 빗나갔다. 그런즉 모든 사람이 원죄 없이 푯대에서 빗나갔다. 그의 죄가 무엇이기에 유전에 유전을 거듭하겠는가.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에.. 더보기 창조와 새창조의 근원 '그리스도 예수와 영과 진리의 신 인류' 카페에서 조도재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이해한 바를 정리한 글이다. 창세기 1장 27절의 히브리어 '하아담'과 창세기 2장 7절의 '하아담 아파르'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창세기 1장 27절에서 창조된 사람은 육신의 시초이며 이미 그를 통하여 육신의 첫 사람은 생육번성하고 있었다. 즉 만물이 계보를 이루고 있었듯이 사람 또한 계보를 이루었다. 창세기 2장 7절의 '하아담 아파르'는 육신의 계보에 속해있던 그 한 사람이다. 창세기 2장 4절의 '톨도트(계보)'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창세기 2장에서 '톨도트'와 '야웨 하나님'을' 놓치면 창세기 2장은 혼돈의 근원이 된다. 즉 창세기 2장은 첫 사람의 육신의 계보에서 야웨 하나님이 한 사람을 불러내시어 영적 계보의 길.. 더보기 창세기 1장과 2장은 창조의 중복 기록인가? 더보기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37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