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도재
만약 사람들이 사망에 대하여 분명히 이해하였다면 원죄론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야웨 하나님이 아담에게
그가 먹지 말라 명한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 '정녕 죽으리라'한 그 죽음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제자가 예수께 말하기를 "나로 먼저 가서 나의 부친을 장사하게 하소서" 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였다.
분명 예수께서는 여기서 두 가지 죽음을 말하고 있다.
육신으로 죽어서 땅에 묻혀야 할 사람이 있고, 육신으로는 살아 있으나 하나님을 향하여 죽어 있는 사람이 있다.
아담이 하나님이 그에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실과를 먹고 죽었던 죽음은
육신으로는 살아 있으나 하나님을 향하여 죽은 죽음이다.
그가 금지된 실과를 먹고도 살았는데 그것은 믿음이 죽은 그의 육신이 산 것이다.
그 육신은 살았으나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 있던 '레네페쉬 하야'가 죽은 것이다.
그에게서 '레'가 떨어져 나가자 다른 동물과 같은 육체의 존재가 되었다.
죽 하나님을 향하여 살았던 자가 육신으로는 살았으나 그 혼이 하나님과 상관없도록 단절된 것이 아담의 죽음이다.
그 육신은 때가 되면 언젠가 죽을 것이다. 그 육신의 죽음은 모든 생물이 공통으로 당하는 것이다.
육신의 죽음은 징조이다. 사람들은 생존을 생명으로 알고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을 향해 살던 사람의 그 혼이 그와 단절되는 그 죽음에 두어져 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가 육신으로 죽는 것은 옷을 벗거나 장막을 떠나는 것과 같아서
그가 육신을 떠나면 새 옷을 입고 새 장막에 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