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들 썸네일형 리스트형 허공에 두고 있는 두 발 겁이 났다. 잴 수 없는 막연하고도 형태없는 무게감이 엄습하면서 나를 점점 코너로 몰기 시작했다. 나의 행동반경은 그에 비례하여 좁아졌다. 난 어린애들처럼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그랬다. 실제 무게감의 주체가 달려와 위로를 해 주었지만 나와 전혀 무관한 별개의 인생이었다. 나의 .. 더보기 난 지금 많이 아파.. 매우 흐린 하늘 아래 펼쳐져 있는 열대의 늪지대였다. 엄청나게 울창한 습한 밀림의 풍경, 섬과 진창, 더러운 진흙이 이어지고 강의 지류를 따라서 형성된 태곳적 원시 세계의 모습이었다. - 풍성한 처녀림에서, 기름진 대지를 뚫고 나와 과감히 꽃을 피운 식물들 사이로 잎이 무성한 종려나무 가지가 .. 더보기 내딛는 걸음에 .. 내 앞에 내 앞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설맹되어 버린 내 앞에 혹시 누군가 있다 하더라도 볼 수 없으니 내겐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 내 믿음속에서만 존재하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 그들도 나처럼 붉은 핏줄 너머로 감지되는 본능의 빛을 향하여 그렇게 혼자 걸어가고 있을까 .. 설.. 더보기 숲 속에 서서 / 정희성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나는 숲을 찿는다 숲에 가서 나무와 풀잎의 말을 듣는다 무언가 수런대는 그들의 목소리를 알 수 없어도 나는 그들의 은유를 이해할 것 같다 이슬 속에 뜨는 해와 그들의 역사를 그들의 신선한 의인법을 나는 알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기에 .. 더보기 사라진 계절 / 천양희 사자별자리 자취를 감추자 봄이 갔다 꽃이 피었다고 웃을 수만은 없는 그런 날이었다 문을 닫는 순간 내 안의 무엇인가 쾅, 하고 닫혔다 고통이란 자기를 둘러싼 이해의 껍질을 깨치는 것이었다 전갈자리별 자취를 감추자 여름이 갔다 초록 나무에도 그늘이 짙은 그런 날이었다 종이 위에 생각을 올려.. 더보기 숲 / 이영광 숲 이영광 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을 잡고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氣合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들의 손아귀가 천 갈.. 더보기 고요로의 초대 / 조정권 고요로의 초대 조정권 잔디는 그냥 밟고 마당으로 들어오세요 열쇠는 현관문 손잡이 위쪽 담쟁이넝쿨로 덮인 돌벽 틈새를 더듬어 보시구요 키를 꽂기 전 조그맣게 노크하셔야 합니다 적막이 옷매무새라도 고치고 마중 나올 수 있게 대접할 만한 건 없지만 벽난로 옆을 보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 더보기 쉼의 시간 .. 하늘에는 헤아리지 못하는 바람과 비가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 저녁으로 화와 복이 있다.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 부지런함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보배요 삼가함은 몸을 보호하는 부적이다. 더보기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5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