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점심을 시켜먹었다.
김치 찌개를 시켰는데 뚝배기에 파란색 파 빨간 김치가 넉넉히 들어있는 것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오늘은 성공했다 생각하며 수저를 드는데 불쾌한 냄새가 났다.
냄새의 출처를 알아야 먹든지 말든지 할 것 같아 이리저리 조사에 들어갔다.
문제는 김치찌게가 담겨진 뚝배기였다.
뚝배기에 여러 냄새가 배여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이해하고 무시하고 먹으니 그런대로 괜찮아졌다.
그 불쾌한 냄새를 어디에선가 맡아본 기억이 있었던 것같아서
점심 먹는 내내 그 냄새의 기억을 더듬으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 기억의 끝엔 한 애틋한 얼굴이 있었다.
늦은 밤, 평소와 어울리지 않는,
새로 산 정장차림, 질나지 않아 유난스레 구두 뒷굽 소리가 남는 구두를 신고
우리 식구들의 인사와 축복을 받으며 떠나던 얼굴이었다.
결혼식 때나 끼는 망사 장갑을 낀 손엔 커다란 가방이 들려있었다.
아줌마 옷에선 늘 그냄새가 났었다.
아줌마 옷에서 늘 그 냄새가 나니 아줌마 방에서도 그 이상한 냄새가 났었다.
그것은 음식 냄새가 섞여 배인 부엌 냄새였다.
나의 외가 대식구의 뒷치닥거리는 지금 생각하면 보통 일이 아니었을텐데
아무런 불평 없이 늘 웃으며 일하시던 외가의 오랜 식구였었다.
사랑을 꿈꾸며 떠나는 밤. 아줌마는 참 행복해 보였다.
터미널에서 남편 될 분을 만나서 그 밤에 함께 떠난다 했다.
아줌마의 그 큰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난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두 사람 몫의 잠옷이며, 레이스 달린 속치마며, 아줌마와 전혀 어울리 않는 빨간 루즈까지...
여러 날 전부터 집안 일을 끝낸 늦은 밤이면,
아줌마는 거의 파장난 시장의 양품점들을 돌며 한 가지 한 가지 사들였었다.
열댓 살 된 아이가 무슨 보는 눈이 있다고 어린 나에게 어떠냐고 묻고 또 묻곤 하셨는지...
늦은 밤마다,
아줌마는 그 망사 장갑을 몇 번이나 꺼내 손에 껴보기를 반복했다.
평소하지 않던 화장도 하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그 부담스런 빨간 루즈를 발라보고 지우기도 하셨다.
난 아줌마 방에서 나는 그 이상한 냄새와 아줌마가 찾아가려는 무지개빛 사랑과 너무 어울리지 않아,
솔직히 마음이 너무 아프고 서글프게 보였다.
하지만 궁굼했다. 그 사랑이란 것이 대체 어떤 것이기에,
고목나무같이 매력 없던 아줌마가, 무지개를 찾아 떠나는 아이처럼 저렇게 기쁨에 들뜨게 되는 것일까?
난 사랑의 마력에 빠진 아줌마를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사가지고 오시는 물건들이 궁굼하여
밤 늦도록 불이 켜져있는 아줌마 방을 기웃거렸다.
가로등 뒤로 아줌마의 서글픈 그림자가 더 이상 일렁거리지 않게 되어서야
우리는 문을 닫고 들어왔었다.
할머니와 이모의 걱정스런 뒷 이야기가 나는 듣기 싫었다.
아줌마의 무지개 빛 환상에 어둠을 드리우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하얀 망사 장갑을 끼면서 행복해 하던 한 여자의 희망을 난 옆에서 다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아줌마는 더 이상의 연락도 없었고 그리고 서서히 우리의 기억 속에 묻혀졌다.
개학 때가 가까와서 서울로 다시 올라오기 전까지 내 머리 속에는 아줌마 생각 뿐이었다.
곧 돕는 식구가 들어오셨지만 그 이후로는 식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쯤이면 환갑을 훨씬 넘기셨을텐데 어떤 모습으로 살고 계실련지 꼭 만나뵙고 싶어졌다.
아줌마를 기억해 내는 실마리가 아줌마의 고생 흔적이어서 마음이 아팠지만,
행복하고 여유있는 노년을 보내시길 막연하게 바래 보았다.
'살아가는 이야기1 > 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실 잘 모릅니다. (0) | 2007.02.07 |
---|---|
그 사랑만을 먹고 그 사랑만을 기억하는 나무 (0) | 2007.02.06 |
내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0) | 2007.02.04 |
새로운 길 (0) | 2007.02.02 |
세월 속에 묻힌 내 그리운 이름들 (0) | 2007.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