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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세월 속에 묻힌 내 그리운 이름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목포에 계시던 작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받았다.

토요일이라 읽찍 집에 와있던 나는, 

급히 집에 오셔서 이것저것 준비하시는 아버지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준비를 다 마치신 우리 아버지.

작은 방에 들어가셔서 한참을 나오시지 않으셨다.

목포로 떠날 채비를 다하신 어머니조차 밖에서 재촉할 수 없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 많은 일 모두 아버지의 자존심을 뿌리채 흔드는 작은 아버지 일들이었고,

그 시작이 그 잘 되던 병원을 접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작은 아버지는 당신의 자존심을 짓누르는 정말 무거운 짐이셨다.

조카들에게는 은근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대하셨지만

동생은 평생 용납하지 않으셨었다.

 

서울에 한 번씩 오셔도 겸상 한 번조차 하시기를 거부하셨던 아버지셨다.

우리 집에 소주병이 눈에 보인다는 것은 작은 아버지께서 오셨다는 증거였다.

물론 아버지께서 집에 계시는 시간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난 작은 아버지가 너무 싫었다.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저를 보고는

"형수요. 지영이 쟤는 제 아버지를 닮아서 차갑기가 돌덩이 같소."

 

어버지께서는 당신의 자존심으로 당신의 동생을 평생 용납하시지 못하셨지만,

내 어머니가 당신 동생을 따뜻하게 챙기시는 것을 늘 고마워하셨다.

 

이상한 것은 어머니는 작은 아버지를 여자 잘못 만나 인생이 저렇게 되었다고

작은 어머니를 푸대접하셨고,

아버지는 남편 잘못 만나 고생하는 작은 어머니를 애틋하게 생각하시곤 잘 해주셨다.

어린 내 눈엔 아버지 생각이 옳다고 생각되어 작은 어머니께는 살갑게 했었다. 

 

늘 내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작은 아버지를 싫어하던 나는

작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한참 후에 작은 방에서 나오셨던 아버지의 눈은 젖어있었다.

그 순간,

난 아버지가 내가 느끼는 비슷한 죄책감을 느끼실까봐 두려웠었다. 

 

 

작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돌아오셔서도 참으로 많은 날을 슬퍼하셨다.

저런 눈물을 가슴에 두고 어찌 그리 냉정한 표정을 가지고 사셨을까 싶을 정도였었다.

 

가끔 한 번씩,

아버지가 용납할 수 없는 옷가지와 구두 뒷축이  구겨져 있는 신발이 아버지 눈에 띄는 날이면, 

아버지 눈은 신문을 향하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옆방에 술 마시고 누워있는 동생에게 다 가있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신문을 보고 계셨지만 건넛방에 아버지 눈치 보며 누워있을 동생을 의식하시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신문을 들고 계시는 아버지를 뵈는 것은 나에게도 고통이었다.

 

난 늘 내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그 눈물과 한숨을 보고 들으면서 자랐다.

작은 아버지께 목돈을 챙겨서 드리신 어머니께 도리어 큰 소리를 치셨지만,

그것이 본 마음이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작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내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당신의 친혈육이라곤 

당신 말고는 아무도 이세상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로 외로움을 느끼실 것 같아서 늘 두려웠다.  

그래서 늘 내 아버지 옆을 맴돌았다.

 

 

내 아버지의 아픔은 작은 아버지의 큰 아들인 나의 동갑내기 사촌에게 늘 머물렀다. 

나보다 몇 개월 생일이 빨라 어른들께서는 오빠라고 부르라고 강요하셨지만,

어른들 안 계신 곳에서는 늘 이름을 불렀다.

"훈아!"부르면  "어허, 오빠, 오빠라 부르라 하시는 것 못 들었어?"

 

내사촌은 날 좋아했었다.

몰래 몰래 가져간 내 사진을 학교에서 자랑한다는 말을 작은 어머니께 한 번씩 전해듣기도 했었다. 

그런데, 난 내 작은 아버지 싫은 만큼 내 사촌이 싫었다.

자꾸 말 시키며 웃는 것도 싫은데, 밖에 나갈 일 있으면 왜 그렇게 딱 붙어 오는지.

내 일에 콩 나라 팥 나라 간섭하는 일이 있을 때면 지독하게 못되게 굴었다.

어쩌면 아버지께서 유난히 칭찬하고 예뻐하는 사촌에게 철없는 질투를 하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혼하고 철이 들어 어릴 적 그 행동들이 미안하여

그 미안함을 만회해보려하니 그 오빠의 안스러운 삶의 날이 그리 길지 않았다.

이 년전, 작은 아버지, 아버지를 따라 가버렸다.

 

그 미안함을 다 덮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그 미안함은 나에게 아직 한으로 남아있다.

나는 내 아버지 밑에 태어나 고생이란 것은 모르고 살았으나

복없는 그오빠는 그 문제 많던 내 작은 아버지 밑에 태어난 죄로 많은 고생을 안아야 했었다.

 

처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데려온 것이 미안해, 늘 업고 다닐정도로 아끼던 꽃같이 고운 아내를 두고,

사랑스런 딸 둘을 이 세상에 흔적으로 남기곤 너무도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버렸다.

 

작은 아버지의 마약과 술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족들에게 치명적인 불행을 안겨주었다.

그 불행을 직접적으로 맞은 이들이 작은 어머니와 그 가여운 동갑내기 오빠 그리고 내 아버지셨다.

 

내 아버지의 차갑고 날카로운 결단은 당신 가정을 지키기 위한 최대한의 몸부림이었고,

그 결단 아래 당신의 그 뜨거운 애정을 당신의 이지력 아래 두어야 했던 아버지의 속은 이미

다 타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만나셨던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신 내 시아버님께서도 내 아버지에게 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으니,

내 아버지의 아픔은 이미 오래 전, 당신의 가슴에 묻어둔 아픔이었음이 분명하다.   

 

  

세월 속에 묻힌 내 그리운 이름들이,

세월이 갈수록 왜 더 선명히 가슴 속에서 살아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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