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이해하고자 하는 신자들이 이 "하늘" 이라는 단어를
단지, 문자적이자 물리적 지역 개념으로만 받아드린다면
그 신자에게는 모든 것이 문자적 이해로만으로 와 닿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핵심 인물 예수와 관련된 주변의 모든 상황들이 모두 다
이 차원에만 머물게되는 이해의 동결로만 치닫게 됩니다.
이런 신자들의 정신적 이해 세계에서는
예수의 하늘 왕국마저,, 그져 또 다른 문자적 영역에 존재하는 물질 세계이자,
또 하나의 물질적 땅 개념으로만 정리된다는 차원을 의미합니다..
이런 물질적, 육체적 차원의 세계에다가 예수와 그의 왕국을 두고서 제자들도 혼미 스러웠던적이 있었죠.
예수가 육체의 죽음에서 영으로 부활했을 때에, 예수는 자신의 영광스런 영의 몸을 필요에 따라서 잠깐 바꾸었던 경우인데요,
영이신 예수는 그의 영의 몸을 인간의 몸으로 물질화해서 제자들 앞에 자주 드러내야할 상황들을 말합니다.
그때마다 예수는 자신이 죽기전의 인간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간 이미지로 나타난 경우가 자주 발생했었습니다.
그 때마다 제자들은 잠깐이나마, 예수의 정체성 파악에 들어 갔었고 곧 예수임을 인정하곤 했었죠.
그 중에 한번은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죠, " 왕국을 회복할 때가 바로 지금이죠?" 라고,,
그 당시까지도, 오직 물리적, 물질적 개념으로만 사로잡혀 있었던 제자들이였습니다.
예수는 더 이상 육체가 아닙니다. 아니,, 예수는 우리들의 믿음 안에서 더 이상 육체가 되면 안됩니다.
예수는 이제 영 이십니다. 즉, 육체의 거룩한 행위를 완료하신 결과인, 아버지의 영광의 영의 생명으로 정리되신 분 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물질적 육체적 차원에 어떤 신자가 거한다면,,,
믿음과 희생과 생명의 영과 인간 예수와 영광의 영이신 아버지를 아직 혼동하는 혼미 속에 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신자에게는 예수가 아직도 희생될 육체기능으로 오셔야 할 육체예수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를 육체로 받아드리면서 육체로 부활된 예수를 믿고는,
그 분을 문자적 구름을 타고 오시는 육체로 된 손오공 예수를 기다리고,
이 육체의 예수가 물질적 왕국을 하늘이라는 높은 문자적 영역에다가 창설해서는
믿는 신자들은 이 천국으로 받아드리고, 믿지 않은 모든 인류들은 불타는 지옥에 보내 버리기를 기다립니다.
이런 끔찍하고도 무지막지한 신들의 미친 살인적 상황을 실제인 양,,, 예수 믿음이라는 미명 아래서,,,,이 육체 예수를
희망합니다.
많은 물 위에 하늘로 좌정하신,,,이 하늘이라는 진정한 창조주의 지식의 물층들을
결코 볼 수가 없는 변질된 믿음 입니다.
하늘들,,,즉,,하늘의 것들,,,
우선, 하늘이란, 어떤 기능적 차원을 의미하는 것이죠.
만약 우주 모두가 다 이 하늘 기능만을 소유했다면 굳이 하늘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겠죠.
다시 말해서, 하늘이라는 단어와 그 정의란, 오직, 상대성 대상이 이미 존재해야한다는 개념이 그 바탕에 깔려있는
말이기도하죠.
즉, 그 상대적 대상인 땅이 꼭 존재할 때에만,이 하늘이라는 단어와 덩 달아서 그 단어가 의미하는 기능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하늘을 처음으로 니고데모에게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 때에 3번에 걸쳐서 이 하늘을 보여주면서 짧게 그러나 명료하게 설명 하십니다.
1) "너희가 하늘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다" 라고 하시면서 이 하늘을 우선
태어나는 장소로 설명합니다. 그리고는,
2) "너희가 물과 영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결코 하늘 왕국을 볼 수 도 없다" 고
하십니다. 즉, 하늘의 물을 통해서만 영으로 탄생된다는 영의 탄생과정을
가르칩니다. 끝으로,
3) "너희가 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늘 왕국에 결코 들어갈 수 없다." 라고 하시면서
이제 예수님은 그 하늘의 상황을 니고데모에게 보여주시면서, 불 수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직접 들어갈 수 있는 능력으로 정리하십니다.
정리하자면, 하늘의 것들로 이해로 보고는, 이 하늘의 것들로 태어나는 경험을 하고는,,,태어나서는요,,,어떤 거룩한 삶 이라는 길을
간다는 의미로써 과정을 거쳐서,
예수님이 끝으로 얻으신 구원의 장소, 즉, 그 하늘 왕국이라는 말인데요, 하늘의 것들, 하늘의 재료들, 이 하늘이라는 단어가 품고있는
정의, 이 권한의 차원으로
어떤 신자가 모두 다 채워지는 하늘을 의미합니다.
이 하늘의 것들, 하늘의 상황이란,,, 니고데모에게 그 다음에 말씀하시는 요한 복음 3장 17절,18절,19절 입니다.
이 요한복음 3장 17절, 18절, 19절의 상황이란, 우리가 지금까지 연구해 왔던 다시 오픈된 하늘 동산과 일치한 상황으로 된
그림이죠.
그럼 질문 하나가 필수적으로 따라오는데요,, 바로 이 질문 말입니다.
'과연 예수는 이 이 하늘 동산에, 즉 이 하늘이라는 영역에서만 가능한 이 상황으로 된 하늘 구조에,
이 하늘 환경에,,, 생명 탄생을 위해서라면 물과 영이 존재해야하는 , 두 나무가 작동해야만하는 그 구조에,
그 하늘 낙원에, 이 하늘 왕국에 이미 들어갔냐?' 라는 질문입니다.
그 당시에, 니고데모와 대화 중인 바로 그 시점, 예수는 이미 하늘에 들어 갔다는 말인가요?
예수님이 그 당시 직접 선포하신대로 이 "하늘 왕국이 가까히 온" 것이었죠.
아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추리입니다.
조상이 육체로든 영으로든, 먼저 존재되야 시작이든 끝이든 맺을 수가 있겠죠.
그의 후손도 이 조상으로부터 우선 존재로 나오고 시작과 끝을 맺을 것입니다.
조상이 영의 자격증에 우선, 아들로 인정받아야, 후손도 그 같은 영의 합당성에 참여할 수 있겠죠.
조상이 먼저 하늘 구조에 들어가고 뭔가를 시작해야 그 후손도 그 같은 하늘에서 후손격으로 조상이 간 길을 뒤 따르겠죠.
이 모든 필수적인 과정들이 모두 다 성경에 나와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면서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 라고 성경은 직접 증언합니다.
즉, 필수적인 모든 상황의 증거물이 이 지퍼로 된 보자기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고 더 해서,,,, 예수님의 직접적 단언 입니다.
요한 복음 3장 13절 입니다.
" 하늘에서 내려 온 자 인자 외에는 다시 하늘로 올라 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침례시, 이 하늘이 열리면서 이 하늘의 길을(과정들) 가기 위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오직 한 분 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 하늘의 길 끝에 계신, 저 지성소 끝에 계신 아버지께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하늘의 길이 무척이나 험하고 고통스런 재로로 된 길임을 이미 아들에게 알려 주셨죠.
그러나, 구원이라는,,,끝에 위치한 이 길의 과정의 영역에 아들이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는 모든 지배권을 미리 아들에게
주십니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의 예수 정체성이 엎그레드 되었기 때문입니다.
쉬운 이해를 위해서 이 상황의 길 위에다가 두 나무를 올려 놓고 낙원이미지로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즉, 생명을 위해서는 하늘의 두 나무의 기능으로 오실 수 밖에 없는 예수님 정체성이고,
이제 그 생명 과정 가운데서 선악과 기능을 마치고는 이미 두 번째 나무 기능인 생명나무로까지 입력이 되었다는 의미겠죠.
이 생명나무로의 길을 가는 가운데서 결국, 예수님은 그 생명의 열매를 맺고는, 사탄의 죄와 사망으로 된 그의 권한을, 그 뿌리째
뽑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이 ,,, "하늘에서 사탄이 번개불 떨어지듯, 땅으로 떨어진" 경우인데요,
이 하늘 전쟁은 "죄와 사망" 이라는 어둠의 권한의 무기로 싸우는 사탄과 VS "의와 생명과 은혜" 로 싸우는 빛의 아들들의
전쟁으로써
누구든지 믿음 안쪽 차원의 영역인 하늘로 들어오는 자마다 각자가, 예수님과 함께, 치루어야하는 영역 전쟁, 즉, 하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제일 먼저, 당연히,,, 하늘에 첫 발을 디딛인 우리의 조상 예수와 사탄과만의 단 둘의 사투, 즉, 하늘 전쟁의 첫 케이스가 이미
그 당시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오늘날까지 하늘에서, 우리들의 믿음의 세계에서, 줄 곧 발생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서 탄생하는 그 신자는 그 신자 개인의 하늘을 지배하고있는 사탄과 한판 싸움을 치뤄야할것이자만
예수님과 그의 천사들인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은 우리를 영으로(편지들) 도울 것입니다.
이 하늘 전쟁은 우리의 믿음으로 치룰 것이며 결코,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하늘이라는 차원체제에
차원적 낙원을 설치하시고
이 차원적 낙원에 차원적 두 나무를 심으시고
인간 예수를 이 하늘 낙원으로 인도하시고는
하늘 낙원으로 이끈 이 차원적 조상 예수를,
죽음을 다스리는 선악과에 빠진 댓가로써, 그를 대속희생과
영원한 생명 나무라는 헌신적 신의 봉사라는 ,,,,이런 차원으로써의 하늘의 두 나무 자체를 예수의 행위들로 심으신 것이죠.
이런 차원적 하늘에서 차원적 낙원 안에다가 차원적 두 나무의 기능을 예수로 심고져,
예수와 함께 신의 피와 신의 땀을 흘려가면서 그 때까지 일하시는,,,이런 하늘을 다시 창설하시는 우리 아버지,,,,,
그 때까지도,, 예수의 피와 살로 된 신의 희생적 땀을 흘려가면서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 하늘의 무한한 사랑의 부모님들의 모습이요,,,,
이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 얻은,,,결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사랑으로, 죽음에서 꺼내시다시피 낳으신 귀한 아들들인
우리 입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란,, 예수님은 하늘에서 이렇게 힘들게 일하시는 아버지를 니고데모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구절이 요한 복음 3장 16절과 17절, 18절 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 하늘에 이미 예수님은 두 나무들의 재료로 사용되기 위해서 이미 그 하늘에 들어가 도착해 있었던
것이죠.
"인자 외에는 다시,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
이 하늘 낙원과 그 안에다가 예수의 피와 살로 된 두 나무의 힘든 과정으로 열어 놓으신 하늘이,,,
바로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그를 우리의 땅의 체질로 내 쫒고는, 결국, 우리가 차지한, 우리가 현재 거하는, 우리의 하늘
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이 하늘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결코, 결코, 이 하늘에 함께 거하는 우리 가족들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혹, 믿음의 영역인 우리의 심장과 우리의 정신의 하늘 전쟁에서 지고는
분통이 터저서 땅인 우리의 육체로 화가나서 쫒겨 내려 온 사탄의 부추킴으로
육체의 실수와 잘못을 혹, 서로에게 저질를지라도 서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각자의 육체의 땅에서의 경험과 약한 부면들이 다 틀리기에
너무나 쉽게 우리가족에게도 실수할 수 있음을 각자는 너무나 잘 알것입니다.
각자에게 처한 힘든 상황들이 우리의 정신적 여유를 많이 빼았아 갔을겁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해 주십시요.
이 계명만이 우리의 주인님이 각자에게 부탁하신 오직 하나의 계명입니다.
우리가 사랑에서 태어낳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다음에 전해드릴 저의 글은 이 하늘로 이해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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