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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들 /담아온 글 ...

물의 역활을 담당했었던 선악과(보충 설명4)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아는, 그래서 신의 지식을 공급하는 이 선악과 나무의 기능 중에서, 

"너희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라는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 볼 때,
육체의 죽음과 관련된 악이라는 지식을 담당했었던 선악과의 한 면이였습니다.

"먹지말라" 라는 말씀은, 법의 성격이기 전에, 법이라기 보다는,,,
선악과 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알수 있듯이  
이 나무가 담고있는 선과 악 이라는 두 요소 중에서 
특히, 악에 해당되는 "육체의 행위" 를 멀리하라는, 
죽음에 대한 경고로 봐야겠죠.

정체성 시각에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인류를 대표하는 아담은 그 당시에, 
미래의 후손이라는 온 인류를 등에 엎고는 
선악과 태두리 안쪽에서부터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요,
1) 창조물이라는 존재로써의 길을 걷기 시작해서
2) 우선, 악한 행위의 결말인 죽음의 사정권 밖으로 선택에 의해서 스스로 해방되고,(구출)
3) 반대로, 선한 지식의 행위의 열매를 그의 양심에서 맺는것으로 선한 열매로 먹고,
4) 하나님의 승인이라는 아들의 정체성을 그의 양심에다 들여놓는 과정들의 시각으로 봐야겠죠.
(이 4번까지의 과정의 완료 전까지는, 아담의 그 어떤 정체성도 아직 형성이 안된 상태를 말합니다.)

창조물의 자율성 시각에서 볼 때는 이런 표현이겠죠.
이 선악과에는 이중성 선택의 길들이 깔려 있었는데요,
악의 결과인,,,죽음의 사정권 안에 거하는 창조물로써의 존재인 동시에,
선의 결과인 아들로 선언되어 태어남을 경험하는 장소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태어남이라는 자격만이
그 다음 기능의 나무인 생명나무로의 길이 열리는데요,
히브리서 9장 8절9절에서의 포인트가 교차되는 시점이기도 하죠.
즉, 선악과를 성소에 비유하자면, 이 성소의 과정을 다 완료하기전에는 결코, 
지성소격인 생명나무로의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원칙 논리입니다.

이 원칙의 사본격인 율법의 성전 기능 구조는 
그 구조의 원본격인 선악과와 생명나무로 된 옛 구조에서 근원된 것으로써,   
아들로의 부르심과 승인이라는 태어남으로 마친,
선악과 나무의 역활을 조금 엿 볼 수 있는 율법적 접근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악과와 생명나무로 된 에덴의 성전에서
히브리서 9장 8절과9절에서 성령이 분명히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리는데요,, 
태어남만이  그 다음 단계인 생명나무로의 진입을 허락하는데요, 
왜냐하면 이 태어남의 자격을 수여하는 선악과의 과정이 아직 진행 중 이라면, 
생명나무의 역활로 연결된 희망이라는 길이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이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은요,) 
생명나무로의 완료인 하나님 차원 생명인 왕좌를 의미하며
이 희망의 길이, 오직, 아들의 정체성으로 태어남으로 된 하나님 승인이라는것입니다. 
두 나무 사이를 연결하는 그 희망의 길, 즉 생명나무로의 입구까지 가는 권한이 태어남 입니다. 

태어난다는것이란, 분명한 희망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을 비롯해서 모든 성경은 이 태어남과 희망을 연결해 낳으며
창조물로써의 훈련 과정의 길 끝인 인내의 성품 다음으로  그 순서 자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만약, 땅이 하늘을 지배하는 현상인 드러난다면, 
즉, 육체가 인간의 정신 세계와 양심세계 그리고 심장세계인 하늘을 오히려 지배하려 든다면 말이죠,
그 결과로, 인간의 온 갓 육체적 행위가 그 어느 야생 동물 세계에서 발생하는 육체적 야생 행위 수준이라면, 
인간이 동물과 비교해서 전혀 다를 바가 없다면 말이죠,,,,
이런 행위들로는 그 때까지 공백이었던 아담이라는 인간 양심안에
아들로의 정체성 입력이란 생각할 수 없겠죠.
제 아무리 아담이 신의 형상으로써 기본구조를 가춘 존재라도 결국, 
이 흙의 성질의 지배 아래로 떨어지는 소멸(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그의 육체가 시키는 대로 악한 행동을 한다는것을 
그 선악과 중에서 악한 열매를 맺는, 그래서 자신이 맺은 그 악을 먹고, 
그 악의 요소들이 아담의 양심을 지배하고 심장으로 전이되서 육체의 사망과 관련시켰는데요, 
그 이유는 그 선과 악이라는 선택으로만 맺어지는 이중적 열매 중에서 
선한 열매라는 하나님 아들로의 승인 전에, 미리 먹는 일이란,
소멸로만 향하는 육체의 악한 행위들 외에는 미리 먹을일이 없다는 말이기도하기 때문이죠.
 
이런 취지로 볼 때에 다시한번 엿 볼수있는 신의 비밀입니다.
아담 당시의 그 선악과는 ,
인간 몸인 땅(흙)의 성질을 지배할 하늘의 선한 지식이자, 
아직은, 인간 몸 안으로 이식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아담의 선한 선택으로, 맞이 할 아들의 정체성으로 찍혀질, 완성된 양심이라는 장기이죠.

이처럼 열매를 향해서 자라나는 나무로 상징된 이 영적 장기는, 
하나님이 잠시 인간 몸과 이탈시킨, 돌출된 하늘 장기로써, 
아담 스스로도 눈으로 볼 수있도록 설계한 하늘의 것,
하나님의 형상인, 아들의 영으로 간주되야 할것입니다.
이 장기는 오직, 하나님에 관한 선한 지식을 통해서만 
육체의 선한 행위와 함께 작용하여 그 완성도를 향해가는 잉태구조를 가추고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권한으로 태어나 완료되는 인간 양심이라는 하늘의 장기 입니다.

아들로 부르심을 받은 창조물 아담은,, 참다운 지식에 의거한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의 몸에서 돌출된  이 장기가 형성되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으며,
정해진 때에는, 자신의 중요한 일부분인 몸 안으로 다시 맞이할 돌출된 장기로 가꾸고 있었던 것이죠.
아담은 자신을 뚜렷히 반영하는 이 나무로,  양심이라는 투명한 지식의 물로 된 거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수정처럼 맑은 이 물로 태어나는 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6 째날에 아담을 창조물로 마치고는, 
이 창조물을 자신의 안식 장소인 에덴의 왕좌에서, 7번째 날로 함께 돌입하여 
자신의 아들로 삼기위해 신의 임신 중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곧 희망 찬 출산을 앞 둔,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심을 받은 아담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담을 창조하신 신도, 하나님의 승인으로 완료 될,
아들로 태어남이라는 태의 열매를 맺는 중이었습니다.  

에덴에서의 아담의 생명 수준

다시 이 글의 원점으로 돌아와서요, 
1)창조물이라는 정의와  이 창조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2)아들로 태어난다는,, 이 두 어휘의 차이점을 생각해 본적이 있나요?

혹시 이런 질문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에덴에서 아담의 생명수준을 두고 하는 질문인데요,
아담은 태어났던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 입니다.
좀 우수운 질문인가요?^^ 창조가 곧 생명이자, 이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말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당시 아담의 생명과 관련되서 다른 질문 할까요.
아담이 생명으로 태어났더라면, 왜,  구태어, 생명 나무라는,,, 
생명을 의미하는 나무가 따로 존재했었냐? 라는 말입니다.
아담이 흙으로 입고 나 온 그 존재로써의 생명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이었냐 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창조물로써의 존재와,,, 
이 창조물이 존재라는 출발점에서부터 시작해서,물을 통해서 결국, 
태어난다는,, 두 정체성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창조물이란 하나님이 손으로 만든, (동,식물을 포함해서죠) 모든 생명체를 의미하지만, 그래서 
아담도 이 창조물로 존재했어지만,
태어난다라는 말은, 이 존재로써의 창조물이 깊숙한 관계(부모관계) 로 돌입했다는 
의미의 차이를 담고있습니다. 즉, 
창조주가 손으로 만든 창조물과 "하나님이 아들로 낳으셨다" 라는 단어 차이는 엄청나다는거죠.

하나님은 자신의 친 아들들을 이런 아래와 같은 표현으로 낳습니다. 
물론 예수가 그 좋은 예 이겠죠. 성경은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인간아기 예수로 시작된 존재가 
하나님의 선과 악에 관한 참다운 지식의 물 안에서 임신되어 교육받고,
29년에 아들로써의 승인과 함께, 이 아들이 진정한 희망을 소유하고는, 
이 희망의 길을 완료하기 위해서 이 길을 가는 시점인,,, 태어난 ,,,것이죠. 
이 아들에게는 그 때에, 성소에서의 선한 행위들을 통해서 지성소로 연결된 
그 희망이라는 하늘의 길이 물의 탄생과 함께 열린 것입니다.  . 

그래서, 예수에 대한 모든 지식이란,,,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처럼 물의 역활을 의미합니다. 
이 물이란, 생명수 역활을 하며, 이 생명수는 양심에서 시작되어서 심장으로의 문을 열어주는,
우선, 하나님의 선이 무었이고 악이 무었인지를 가름하는, 하늘의 지식입니다.

에덴의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 밖으로 돌출된 예수, 두 번째 장기인,,,두 번째 선악과 나무죠.
"입으로 이 예수를 나의 생명의 주인(근본)이라 고백하는 자마다 구원(saved,구출)  받습니다." (로마서 10장9절10절 요약)
이 로마서의 핵심은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선이 무었이고, 악이 무었인지를 다시 정한, 두 번째 선악과 입니다.
우리 몸 밖에서 시작되는 예수라는 하나님의 선한 지식의 나무, , 
우리는 이 두 번째 선악과 나무 앞으로, 오직 믿음을 통해서,
 다시 투명한 하나님의 지식의 거울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죽음의 태두리와 동시에 아들의 생명으로 태어남 이라는 
옛 에덴의 선악과 구조와 똑같은 기능들을 예수라는 나무로 심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당신을 우선, 영의 창조물로 만들고는 
당신을 이 예수의 지식으로 된 나무 앞에, 다시 한번 이 동산 안으로 인도한 것이죠.
당신을 다시한번 하나님의 안식의 7번째 날 안으로 데리고 들어 온 것입니다.

그리고는 당신을 이 예수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물로 임신하신 것이죠.
이 믿음으로 된 하나님의 자궁 안에 거하는 당신에게는 이 하늘의 물이 풍부합니다.
당신은 이 수정같이 맑고 거울처럼 투명한 이 예수로 된 물을 마시고, 
이 지식을 행위로 열매로 먹고 태어나는 하나님의 아들 입니다.
 
이 물로, 이 지식으로, 태어나는 하나님의 아들마다 
아들이 가는 길, 예수의 몸으로써의 길, 성전의 길을 갈 것입니다.

아버지가 계신곳인 지성소까지 예수의 피를 가지고,,,
예수의 몸을 의미하는 성전의 길, 이 몸의 기능을 가지고,,예수처럼 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인,,,,,성전의 모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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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for your new birth was not from any perishable seed but 
from imperishable seed, the living and enduring Word of God.
여러분의 새로 태어남은 소멸될 씨가 아니라, 
살아있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되 있습니다."   베드로의 증언

그래서 예수 안의 여러분은 하나님이 창조로 말씀하실 그 말씀의 일부 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우리를 통해서, 이 성전의 기능으로, 말씀하시는 중입니다.

"죽음에 거하는 너희여 일어나라, 잠에서 깨어나라."
이 죽음은,,, 우리를 성전의 기능으로 채워주신 말씀이라는 능력으로만 소멸될 원수입니다.
태어난 우리가 가는 이 희망의 길,,,생명 나무로 연결된 이 길의 사명을 의미합니다.
예수는 또한 이 생명나무로도 오신 분입니다.    

다음의 글에서 이 생명나무의 역활을 드러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