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진에는 1940년경이라고 적혀 있었다.
함경남도 북청군 오매리..
그 사진은 아버지집 과수원 앞에서 할아버지께서 직접 찍으신 가족사진이었다.
일찍 돌아가셨다던 아버지 여동생..
난 한 번 본 적 없는 고모가 상고머리를 한 채로 의자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섰고
훤칠한 키에 안경 낀 할아버지와 열 살의 아버지 그리고
반 평생 넘게 아버지의 짐만 되셨던 작은 아버지가 서 계시는 사진이다.
이 사진은 본디 친할아버지께서 부산에 살고 있는 당신의 동생에게 보낸 사진이었으나
1.4후퇴때 인민군으로 내려오셨던 우리 아버지께서 부산에 남게 되시어
아버지 숙부님께로부터 다시 돌려받으신 사진이었다.
아버지께서 남으로 내려오시기 전에 그 가족 사진 중에 할아버지와 고모는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다.
가족들의 곁을 가장 먼저 떠난 이는 대여섯 살 되었던 고모가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맘 때 아버지 과수원의 복사꽃이 만개하고 있을 적이었다고 회고하셨었다.
그 여동생을 아버지가 참 가슴 아프게 가슴에 묻고 계셨었다.
고향에 계시던 아버지의 숙부께서 국군과 깊게 연루되어 있었기에
북쪽에 어머니 혼자 두고 내려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북측 돌아갈 수 없으셨던 아버지는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남측 전향수로 결심을 하셨던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간다 해도 국군과 연루된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고
아버지 역시 돌아가도 앞날이 위태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결정에 대해서 아버지께서는 늘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계셨었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근거없는 죄의식이 늘 따라 다녔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 있는 유일한 가족 사진!
닳고 닳았지만 그 사진에서 여러 사진을 만들어 내셨다.
할머니 사진, 할아버지 사진, 고모 사진,,
새로 만든 사진은 본디 있던 가족사진에서 얼굴 하나하나를 확대 시켜 놓은 것이었기에
희미하니 조금 무섭기까지 하였다. 특히 어린 고모 사진은 좀 더 그랬고..
결국 고모 사진은 없애기로 하였고,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만 액자에 넣어 보관하여 왔다.
아버지께서 그토록 소중히 다루며 수시로 꺼내 보시던 그 사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곤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사진이 되었다.
벌써 이십 년 전에 자신의 주인을 잃었던 그 사진도 그 사실을 아는지 마는지 자포자기하듯 오래된 종이처럼
누렇게 떠버렸고 힘이라곤 없어져버렸다.
나에게도 그 사진이 애달픈 것이 아니고 그 사진을 즐겨보시던 그 주인이 없어졌음이 그러 할 뿐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불쌍해진 것은 우리 가족 말고도 또 하나 있었다.
아버지께서 애지중지 하시던 사진, 바로 그 사진이었다.
그 사진의 생명력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바로 끝나버렸던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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