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이름이 미애였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엔 이태원에 있던 그 친구집에서 음악 듣기가 딱이었다.
60년대 전통적인 한옥이었던 그 아이네 집 그 친구의 방은
기억자 모양으로 생긴 본체 가운데 위치해 있는 부엌 옆에 달린 작은 골방이었다.
그곳은 해가 전혀 들지 않아 낮에도 전등을 켜야 했었다.
습한 기운이 돌아 약간 곰팡네 비슷한 한옥 특유한 냄새가 났었다.
안방과 안방 마주한 그 아이 오빠 방과는 달리 그 아이방에 들어가면 공부보다는 음악 듣기가 제격이었다.
그 아이방은 식구들이 늘 거하는 본체와는 떨어진 별개의 공간같았다.
음악을 아무리 크게 틀어도 그 아이 어머니의 간섭을 받지 않을 정도로 별개의 공간이었다.
비오는 토요일쯤엔 늘 "오늘 우리집에 가자! 나 좋은 판 구해 놓았거든"하며 날 꼬들겼고
나도 그 아이집에 가는 것이 전혀 싫지 않았다.
그 친구가 거하는 그 공간은 동굴처럼 아늑했고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아 비밀스럽고 자유스러웠다.
비 오는 날 친구와 함께 누워 있으면 빗물받이 양철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 또한 운치가 있었다.
음악을 듣다가 온갖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정작 공부는 조금도 하지 않은 채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었다..
그 아이는 나보다 조숙했었는데 자신의 조숙함을 내 앞에서는 큰 자랑으로 여겼었다.
자신의 사촌 오빠들이 다 유명 대학에 다니고 있어서인지 그 오빠들 친구들이랑
모종의 연애의 감정들을 주고 받았던 것 같은데, 그 약간의 감정들을 부풀려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 자랑했고,
놀랜 장닭처럼 쳐다보는 내 앞에선 늘 개선장군처럼 의시댔었다.
'넌 어려서 모를꺼야'라는 말을 늘 달고 있었는데 사실 내가 보기엔 저도 나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그 아이 사랑법은 노골적이고 적극적이었다.
고3 때 영어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셨는데 총각 선생님이셨다.
우리 둘 다 그 선생님을 좋아했었는데, 우리 둘의 방법은 너무도 달랐다.
난 그 시간이 되면 선생님들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자세와 준비물 상태
머리 교복 차림새에 온 신경을 쓰고 눈을 그 선생님에게서 아예 떼지를 않았던 반면에,
그 아이는 책상 위에 교과서조차 올려 놓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선생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수업이 끝난 후 상담시간을 이끌어 내었다.
부임 후 첫날 "여고생들 얼굴은 삶은 계란 껍질 벗겨 놓은 것 같다'라고 여고생을 처음 본 느낌을 말씀하시곤
날 시킬 때마다 저기 '삶은 계란'이라 부르며 관심을 보일 때마다 미애는 더 심통을 내곤 했었다.
일 년 내내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두고 우린 졸업을 했다.
그 아이는 미대로 갔다. 그리고 우리의 만남은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았다.
비오는 한가한 오후이면 이태원 그 아이집 은밀하고 비밀스럽고 자유롭고 행복하던 그 아이의 작은 방과
그때 들었던 그 당시 유행하던 팝송들이 생각난다.
'살아가는 이야기1 > 나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인 잃은 사진 (0) | 2007.10.05 |
---|---|
보고싶은 복실이 (0) | 2007.09.28 |
때 늦은 분수를 보며.. (0) | 2007.09.11 |
대추나무 아래서.. (0) | 2007.08.29 |
거의 움직임 없는 바다, 미동도 하지 않는 배, 뜨거운 햇살 (0) | 2007.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