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1/나의 일상

보고싶은 복실이

우리 작은 아파트 밑에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슈퍼마킷이 있었다.

복실이는 그 집 개였다.

흰 바탕에 큰 얼룩 무늬가 여기저기에 박혀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개였다. 

그녀석은 순하였지만 때에 따라서는 진돗개에게도 달려드는 무모한 용기도 갖고 있었다.

목과 여러 곳이 물리고 찢기 하여 죽다가 살아난 이후로,

자기를 물었던 진도개가 지나가면 제 집 뒤로 돌아가 죽어라고 짖는 비겁함이 생겨서 자신의 체면을 내려 앉혔지만...

 

명절 다음 날, 매운 냉면이 먹고 싶어 약국을 일찍 마치고 광복동에 나갔었다.

지나치는 얼굴이 낯이 익다 싶어 기억을 되살려보니 복실이네 집주인이었다.

복실이를 버리고 간 주인..

 

복실이는 주인이 떠나고 난 슈퍼 문 앞 맨바닥에 그 썰렁한 늦가을 날씨에도 그렇게 누워 기다렸다.  

우리 아파트 문 앞에 박스에 담요를 깔아 주어도 잠시도 머물지 않고서는

꼭 슈퍼 문 앞에 앉았거나 엎드려있었다.

우리 식구들을 잘 따랐기에 우리를 따라 우리 집에는 자주 올라왔다.

주는 밥을 먹고나면 잠시도 머물지 않고 바로 돌아 내려갔다.

그리고 제 자리를 지켰다. 

 

보다 못한 동네 사람들이 이사 간 주인에게 연락을 하였는데

그 주인이 복실이를 데려간 이후로 우리는 복실이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때서야 우리 모두는, 주인 옆으로 간 우리 아파트 식구 모두의 개였던 복실이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복실이의 행동반경은 참으로 넓었다.

그 녀석은 사 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이용해 지나다녔고 내가 사는 반송 전역에서 그 녀석은 유명하였다.

신호를 기다리며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이나, 사람들과 함께 횡단보도를 지나는 그 녀석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을 꼭 빼다 닮은 녀석들이 여기저기에 있다는 말을 들리고, 

반송에 그녀석의 자손이 꽤나 많이 퍼져있다는 소문이 흔하게 나돌기까지 하였다.

 

우리에게 복실이가 서서히 잊혀질 무렵 놀라운 이야기가 들렸다.  

복실이가 늘신하게 맞아 반 죽게 된 상태로 폐허된 공장 빈 하수구 밑에 있더라는 이야기였다.

알고 본 즉, 열 살이 넘은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복실이를 데려갈 형편이 되지 않은 복실이 주인은

복실이를 개 키우는 농장에 줘 버렸고,

늘 풀어 놓고 키워진 복실이가 줄에 매여 있는 것이 괴로웠는지 계속 짓고 울고 하는 바람에

그 농장 주인이 자주 매를 들었다고 했다.

어느 날 죽도록 맞고 도망친 복실이가 숨어든 곳은 우리 아파트 바로 밑 작은 공장 빈터였던 것이다.

그 후로 살은 복실이를 보았다는 사람도 없고, 죽은 복실이을 보았다는 사람도 없이

복실이는 이젠 진짜 우리의 기억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우리 아파트에서 이십 분 정도 걸어야 하는 애들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교실까지 따라 들어가려던 복실이였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불이 오기를 기다리는 우리 딸애 옆에 붙어 앉아 신호를 기다리는 더러운 복실가 챙피해

사람들이 자기 개라 생각할까봐 자꾸 옆으로 자리를 옮기면 자꾸 더 따라붙어 챙피했다는 투정을 들으면서도

우리 아이가 학교 교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 이십 분 걸리는 거리를 다시 돌아오던 복실이였다.

 

주인은 복실이를 버렸으나 복실이는 영문도 모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모습이 선하다.

복실이 주인은 자신들의 곁을 떠난 복실이가 당하여야 했던 지옥같은 삶을 상상이나 했겠는지..

내가 아는 소식은 전해 들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난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살다보면 이래저래 맘이 안드는 일도 많고,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그 불편한 감정들을 무시하고 걸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들도 정말 싫을 때가 종종 있다.

복실이의 말로가 너무 서글프고 가슴 아프다.    

복없는 녀석...

그 녀석이 보고 싶다.

 

 

 

 

 

'살아가는 이야기1 > 나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려운 확률속에서의 만남  (0) 2007.10.06
주인 잃은 사진  (0) 2007.10.05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0) 2007.09.14
때 늦은 분수를 보며..  (0) 2007.09.11
대추나무 아래서..  (0) 2007.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