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조직과 연합하거나, 증인조직에서 떠나오거나
워치타워의 거짓됨을 밝히는 카페에서 활동하거나, 증인조직과 아예 관련 없는 이웃사랑을 실천하거나
...
그런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에게 믿음을 두고 있는 이 세상에 사는 크리스챤들 중에서 극히 일부분에 해당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는 안티 증인활동과 나름대로 선을 행하고자 하는 노력들, 그 모든 것의 근본 동기는 무엇인가?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인 이웃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함은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여서 그분의 진정한 뜻을 알고
그 뜻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두는 것을 말 함이 아닌가?
우리가 이 카페에서 안티 증인활동을 하더라도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보다
조직에 의해 왜곡되게 주입된 성서의 내용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우리가 거의 접근하고 있지 않았던 성령부분에 관련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실되고 겸손한 태도로의 연구 조사가 먼저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께 속하여 그분께 우리가 연합되는 것 아닌가?
그분께 연합되는 길은 그분의 뜻을 바로 아는 길, 바로 성서의 바른 진리로의 접근이 아닌가?
지금 이대로 성서 지식에 멈춘다면 우리는 진정 워치타워의 올가미에서 절대 자유롭게 된 것은 아니다.
몸은 워치타워를 나왔지만 그곳에서 배운 성서의 기본 지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면
증인의 겉옷만 벗은 것일뿐 그 이상은 아닐 것이다.
아이가 오줌 싸서 지린내 나는 이불 솜을 그대로 둔 채로
겉거버만 깨끗한 것으로 교체하고는, 새 이불이라며 안심하며 덮고 자는 것.
그것과 뭐이 다르단 말인가?
그 이불은 눈 보기에만 깨끗할 뿐, 사실은 지린 냄새나는 그 이불의 본체인 것이다.
신약 성경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큰 물줄기인 성령에 대한 부분을 가려버린 그곳에서 배운 성서지식을 붙잡고
어느 누구를 손가락질하며 나무라고 도리어 가르치고,
누가 소용돌이 바람의 핵으로 서로 앞다투어 믿음없는 자들의 축이 되려 한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예정된 시간을 두고 살고 있는 우리가 어찌 그분의 방법과 때를 예측하고 가름하여
자신의 판단을 넘어서 다른이들의 판단에 개입하려 한다는 말인가?
자신의 성서지식에 의지하여 성서에서 분명히 거짓됨이 밝혀진 사실이 없다면
침묵하며 지켜보는 겸손을 진정 가질 수 없다는 말인가?
그 겸손은 한낱 사람에게 향하는 겸손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겸손일 것이다.
그 겸손은 하나님의 방법과 시기를 기다리는
진실로 그분의 때를 기다리는 사랑과 믿음에서 나오는 겸손일 것이다.
믿음이란 자기 세대에서 자신의 믿음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본 사람이 가졌던 믿음만 믿음이 아니리라.
자신의 세대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의 때를 만나지 못하고
혹시나 혹시나 하며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 많은 사람들의 믿음 또한 믿음이리라.
자신의 믿음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았던 보지 못했던 간에,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으로
이 세상이 그분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그 시간이 도래하길
마음을 열어놓고 바라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리라.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 많으심과 영광스러우심이 드러나는 그 날을 고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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