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1/5

편지서를 읽으면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들

 

한 때 속해있던 교회에서 배운 지식에 따라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 몸이 성전인 줄 알았다.

 

그 당시 먹는 음식을 철저하게 가렸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내 안에 있는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었다.

 

마음의 바탕이 오뉴월의 바람처럼 쉽게 변하여 지속적인 선을 행하기엔 역부족인 얕은 마음의 밭과

죄성이 여실히 살아있는 내 몸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성전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기에

 

우리 개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교리적 이해는 지극히 부담스러운 것이었을 뿐더러

내가 내 스스로를 잘 알고 있기에 그 주장을 내 양심으로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배워 알게된 성전개념에 대한 지식과 나의 양심과의 팽팽한 줄달리에 기에서,

내 양심은 그 힘 겨루기 자리에서 스스로 이 그 줄을 스스로 놓아버리게 만들었고,

그 자리를 떠난 나의 영혼은 서서히 그 교파에서 나와 방황의 길로 바람처럼 떠돌아 다니게 되었다.  

 

나의 양심은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인정하는 단순한 사실로 해서

우리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각기 회중의 영적인 상태와 그 회중에서 불거졌던 문제에 따라

격려 혹은 꾸중을 하고 있는 바울의 편지 내용은 당시 그 회중식구들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그들에게 했던 표면화된 격려와 꾸중의 단편적인 것들을

그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 시대 우리에게 주는 편지로 이해하고 받아 들일 때에는

어떤 면에서의 큰 모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끝날이 가까울수록 모이기에 힘쓰라"라는 표현을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하고

자신이 속한 곳이 우상숭배의 산 현장인지 아니면 거짓 진리로 복음의 빛을 완전히 가려버린 조직인지를 살피지 않고

앞서의 성구로 자신의 발을 묶어 두는 그런 종류의 모순을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모이는 이유가 서로 영을 세워주고 형제간의 사랑 위한 마련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바울의 에베소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서 언급한 내용 (2장 4 - 6)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가 하늘 위에 있는 그분의 보좌 곁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앉혀 주셨습니다.

또한 앞으로 오는 모든 세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보여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의 자비를 나타내셨습니다."의 성구를 보면서

그 성구에 언급된 '우리 모두'가 현재 그 성경을 읽고 있는 모든 독자들로 이해해서는 큰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의 고린도 회중에게 보낸 서신에서 언급한 내용 ( 6장 14 -18)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살고 그들 중에 다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의 성구를 보면서 

예수님의 지체가 되는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지칭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 또한 현재 그 성경을 읽고 있는 모든 독자들로

이해하여서도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 성전이면서 각기 다른 이해속에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성전들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같은 이해 속에 있는 특정한 조직이나 교파만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말일까?

그 또한 편파적이지 않으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성전들이란 그 바울의 편지를 쓴 바울과 그 편지를 받은 고린도 회중내의 식구들이고,

더 나아가 바울과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의 몫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또 바울의 편지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란 부분에서도  생각해 본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그분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는 자들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은 그 기본적인 뿌리에

바울과 그의 사도들이 성령으로부터 가르침과 인도를 받은 복음의 빛을 전하는 것을 포함한 것 모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가 

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빛 전부였을까?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 영적인 어린아이에서 머무는 것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장성하기를 촉구한

영역은 믿음의 어떤 부분을 두고 말을 한 것일까?

 

그 부분이 예수를 통한 구원의 구체적인 비밀들로

하님의 의를 세워 밝히는 영적으로 장성한 이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당신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보혜사인

성령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도와 가르치고 인도하였던 구체적인 상세한 구원의 비밀들이

바울이나 사도들의 편지서에 녹아 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요즘 나의 생각의 촛점은 바울과 예수님의 사도들이 전하고 있었던 복음의 빛은 무엇인가이다.

분명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고 예수님이 그분의 아들이시며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죽음에서 구원받게 되었다"란 복음의 기초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편지를 받는 고린도 회중 식구들과 그 편지를 썼던 바울이

어떤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성전'이란 영광스런 표현을 사용하였던 것일까?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바로 이런 면에서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해 볼 때

편지서를 오해없이 제 의미 그대로 전달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살아가는 이야기1 > 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마음이 무거워지는 까닭은..  (0) 2007.09.08
무지개  (0) 2007.09.07
빗나가기만 하는 사랑  (0) 2007.09.03
가장 오래된 궁굼증  (0) 2007.08.28
이번 여행의 가치  (0) 2007.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