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이라지만 우리집도 아니었다.
토담집이었다.
부엌엔 밥을 하던 흔적이 있었지만 오랜 세월 속에 묻혀 있은 듯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어이 없이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의 일이 아닌 집안 일에 관련 된 일이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난 어머니의 손길이 머물렀던 흔적을 따라 손으로 스치고 있었다.
도마며, 먼지 쌓인 솥이며...
손이 스치는 곳마다 세월을 거슬러 내 어머니 살아 계시던 시간으로 회복되고 있었다.
어머니가 서 계셨다. 내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난 내 어머니로 계속 인식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원수인 자들이 보였다.
우리 어머니를 몰면서 그렇게 가고 있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탓인지 내 입에선 말도 나오지 않았고 내 발걸음도 떼어지지 않았다.
가슴에 피멍이 들고 내 눈이 타는 것 같았다.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난, 우리 예수님이 생각이 났었다.
나의 생각은 요한복음 18장과 연결되면서 그냥 예수님 생각으로 생각이 모아졌다.
고등학교 시절, 지금 호주에 가 있는 친구가 순복음 교회에 열심히 다닐 때였다.
그 친구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상당하였지만 종교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어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그 때 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난 신들의 싸움에 말려들기 싫어. 그것은 우리 인간의 몫이 아닌 것 같애"
그땐 정말이지 몰라서 했던 말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믿지 못해 아버지의 능력에까지 도전한 당신의 피조물들을,
포기하고 버리지 않으신 아버지의 사랑의 오랜 발자취를 알았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더 할 수 없는 희생까지 감수하시면서
당신의 능력에까지 도전한 우리 인간들을 당신의 옆자리까지 마련해 주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알았다면,
내 아버지의 원수된 자들의 표적이 되더라도 싸울 것이었다.
2000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복음의 씨를 뿌려지게 되었고,
그야말로 알곡과 가라지가 이 땅에서 혼재되어 무성하게 자라
우리의 눈으로는 분별하기 어려운 오늘의 현실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살고 있고, 하나님의 계획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뿌리신 복음이 정리되고 완성되는 시기의 시작의 때는 분명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의 오늘이라는 시간 중에...
복음이 완성되는 시기의 시작의 때는
우리 세대 이후의 먼 훗날일 수도 있고, 우리의 세대 중에 일어날 수도 있고,
지금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그 때가 어느 때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금도 좋고, 나의 생의 도중이라도 좋고, 나의 생애 뒤 나의 후손들 생의 때라도 좋다.
우리가 계절을 원하는 대로 땡길 수 없고 미룰 수 없듯이
하나님의 계획된 시간을 우리가 조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함이 진정이라면 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난 나의 생애 중 아니 나의 현실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면 좋겠다.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거둬지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마련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사랑의 마련에 작고 부족하나마 나의 뜨거운 감사함의 마음을 보태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과 나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하루라도 빨리 뵙고 싶기고 하기 때문이다.
2000년 넘는 세월의 공백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 되살아나 우리 앞에 펼쳐지므로
복음이 뿌려지고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자라나는 과정과,
순수한 복음이 변질되는 과정, 왜곡된 복음인지도 모르고 목숨바쳐 지키려 하였던 헛된 희생들과,
그 혼란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계시던 복음의 원초적인 씨앗들이, 어떻게 보호 받아 썩지 않고 유지되었는지를 알고 싶다.
나는 오래 전부터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 1세기 순수한 복음으로 분명코 우리를 다시 모으실 것이라는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제자들이 전했던 복음.
사도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전했던 복음의 실체에 조금도 불순물이 섞이지 않고 조금도 왜곡되지 않은
그 복음으로,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모으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믿음의 형제들이라면,
성경을 비교하며 자신의 양심의 소리와 양심의 눈으로는 알아볼 수 있는,
당신께서 표를 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보내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말이다.
나는, 1세기의 순수한 복음이 분명하게 바로 서게 되는 때를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아주 큰 의미를 지닌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이 정리되고 완성되는 시기의 시작이라는 관점에서의 의미로 보기 때문이다.
그 때가 도래하면 우리는 아주 무거운 책임감과 큰 기쁨으로 가슴이 뜨거워질 것이다.
당신의 자녀들의 심장에서 나오는 불들이 모여 큰 불이 되고 그 큰 불이 환한 빛이 되어
어둠이 가리고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사랑이 만 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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