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1/5

평행선

내가 철이 제대로 들지 않았을 적, 가장 힘들 때 선택한 방법이 평행선을 그리며 사는 것이었다.

  

선 하나는 당연히 성경과 하나님께서 새겨주신 양심이었고

다른 선 하나는 매 상황마다 달라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선택해야 하는 행동하는 선이었다.

마음은 그렇게 먹었으나 늘 평행선을 유지하고 살은 것은 아니다.

평행선의 기준 선과 간격이 벌어지면서 중심을 잃어 한참을 가다가도 정신을 차리면 늘 다시 돌아와

다음부터 일어나는 일들은 또 평행선의 기준을 곁눈질하며 중심을 잡고 다시 평행선을 그으며 살았다. 

 

때로는 상황이 내가 의도한 바와는 너무도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내가 원치않는 방향으로 도리어 나를 이끌어 가려고 할때,

이미 지쳐 평정심을 잃은 나의 기분, 생각,옳고 그름에 맡기지 않고

성서와 내 양심의 잣대에만 평행하는 행동을 선택했었다.

 

 

'평행선'

 

자신 없으면 그리라도 살자며 나와 다짐하며 글로 남겨 두었던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십 수 년 전, 내가 쓴 평행선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그때의 고뇌와 고단한 삶의 땀방울로 얼룩진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제대로 하는 기도는 아니었지만

눈을 뜨고 하늘 쳐다보며 마음 속으로 하던 기도가 멈추어졌던 시절이었다. 

 

새로운 환경의 큰 강물의 한 줄기로 합류하여 같이 흐르다가 

나의 흐름의 방향과 속도가 서로 맞지않아 멈칫하다보면 

금새 가변두리로, 급기야는 강 기슭에 고여있기 일 수였다.

그 세찬 물줄기를 새로 따라가려다 보면 많은 용기가 필요했고, 그래서 늘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나의 편한한 하나님의 그늘을 애써 외면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도 생소한 곳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너무도 익숙지 않던 새로운 땅이었다.

 

그 새로운 땅은 나의 풍부한 감성과 자유로운 생각을 갖고 머물기엔 너무도 척박한 곳이었다.

유리 공간 안에 갇혀버린 새가 된 느낌이었다.

진짜 나의 혼을 담고 있는 나는 모습은 갇혀버려 호흡을 멈추어 버릴 것같은 이방인의 땅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밖으로는 요란하고 시끄러워도 속에 있는 자신의 소리가 별로 없는 사람이어서 스스로 편한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 나의 경우에는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여도 내면의 소리가 많은 사람이어서

고인 물의 안온함을 선천적으로 거부하게끔 되어있는듯, 제 자신을 편히 두지 않는 편이었다.

 

아무런 일이 없어도 내면에서는 하나님과의 일방적인 단절로 힘든 시기였는데...

 

어쩌면 외부의 구속이라기보다 

주변과 무리없이 지내기 위한 스스로의 구속으로 내 몸과 영혼을 보이지 않는 거미줄로 칭칭 감아, 

스스로 나의 모든 생각과 감정의 출력을 제한시켰던 것일지 모른다.

 

그 시기에 가장 나다운 생각과 힘든 현실과의 조율이 평행선이었던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평행선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 분과 그분의 가르침에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그분의 가르침에 속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존경받는 남의 아버지의 교훈을 내 교훈으로 땡겨서 그 교훈의 덕으로 내가 살고픈 인생을 사는 것이란 느낌이었다.

그렇게 살았지만 그 평행선의 행동지침으로 그다지 후회할 일 남기지 않고,

주변과 그나마 화평케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옆에서 믿어주고 도와주는 고마운 이들의 작은 도움이 크게 일조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나고 보니 그런 생활 또한 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이 참으로 공평한 것은 괴로운 시간도 좋은 시간도 흐른다는 것이었다.

그냥 버티는 것. 그러는 중에 시간은 흘렀고

또 그 버티는 시간 중에 웃을 일도 감사한 일도 생겼다.

세상은 항상 양면이라서 좋기만 한 것도 없고, 괴룹기만 한 것도 없었다.

 

마음 고생이란 것을 모르고 살다가 그 시절의 마음 고생은,

나로 하여금 세상과 사람과 인생을 제대로 파악하게 도와준 엄청한 기회의 시간이었고,

우리 모두가 얼마나 초라한 인생이고 모두 다 상처뿐인 가여운 인생이라는 것을,

생활 중에 뼈저리게 알게해준 기회의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절 이후로 이슬처럼 살고 싶어졌다.

 

 

화려한 빛잔치 뒤의 정막함과 고요함 속에서 살아나는 가난한 별빛의 은은한 기운 속에서

조용히 세상을 보고 싶었다. 

약한 빛으로 강한 빛을 다 이해하고 싶었다.

낮의 빛과 밤의 빛에 익숙해져 밤의 빛으로 낯의 빛을 헤아리고 싶었다.

보이는 아름다움의 구속에서 자유로와져 마음 속의 아름다움까지 살필 수 있는 약한 빛에 익숙하고 싶었다.    

  

이슬처럼 이곳에 살았으나 죄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햋빛 닿으면 스러지지만 아스라한 아쉬움의 눈물만은 끝내 남기고야 마는 영롱한 진주빛 물방울이 되고 싶었다.

 

어두움 속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햋빛에 대한 기다림에 대한 반가운 눈물인지,

아름다운 이 세상을 떠나는 아쉬움의 눈물인지,

자신도 가름할 길 없는 눈물을

미명의 시간에 이슬처럼 남기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