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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나의 일상

앞으로 내가 찾아야 할 친구.

난 내가 직접 선을 그으며 주목을 받은 적은 없다.

늘 있는 듯 없는 듯 바탕이 되어주어 눈여겨 보지 않으면 있는 지 없는 지 모르게 사는 존재였다.

학교 다닐 때 반장, 부반장 중에서도 부반장을 넘어 보지 못했고

회장 부회장 중에서도 부회장을 넘어 보지 못했다.

항상 참모 역할을 했지 리더 역할은 체질적으로 맞질 않았다.

늘 나는 사람들의 아니 어떤 환경에서의 바탕이 되어 주었는데 그런 나에게 바탕이 되어주던 친구가 있었다.

 

고1 때 내 짝으로 시작했다가 고3 때 또 짝지가 되었던 깔끔하고 예쁜 애였다.

그 아이 뺨, 눈가, 가늘고 연한 갈색을 띄던 머리카락, 손놀림, 말투까지 비디오로 찍어 새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새학년 새학기 첫날 내 짝으로 배정되고 좀 까탈스런 아이일 것같은 느낌이 들어 약간의 긴장을 가지고서 짐을 싸들고 그 아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얀 피부와 어울리게 모든 것이 깔끔한 아이이고 너무도 착실한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도 설명 하나 하나를 다 책에다 받아 적고 숙제나 준비물을 빠뜨리는 예는 없는 아이였다.

 

고3 때 반 배정이 되었는데 같은 반 또 내 짝이 되었다.

키가 비슷하였기 때문이다.

난 키가 작은 편이라 항상 반에서 키순서로 지어진 번호 7.8번을 유지하였는데 내 짝도 마찬가지였다.

고1 때는 그냥 내 짝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지만 고3이 되어서는 내 짝 수준을 넘어선 '친구'로 서로에게 느껴지게 되었다. 

아침 보충 수업 시간에 조금 늦게 등교해도 문제가 없었던 것이 항상 정확한 시간에 와 있는 그 친구가 보충 프린트를 받아 놓고는

방송으로 해설하는 것을 자기 것과 내 것 두장을 손 빠르게 다 기록해 놓았던 것이다.

선생님 해설하시는 토시 하나도 빠짐 없이...

 

내짝이 나를 불편하게 한 적은 진짜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어쩌다 유달리 서로의 감성 컨디션이 안맞는 날 특별히 미운 짓 없어도 괜시리 태클 걸어 기분 상하게 하는 일 따위의 성가신 일을 만들지 않던 친구였다.

그래서 그친구가 믿음직스러웠다. 

우리 사이에 각자의 용돈은 니껏 내껏이 따로 없었다.

내가 용돈 받은 날이 그 아이 용돈 받는 날이고. 그 아이 용돈 받는 날이 내 용돈 받는 날의 의미와 같았다.

언젠가 그 아이 등교길에 지갑을 도둑 맞고 속상해 있을 때

"내 용돈으로 일주일 같이 버티면 되지 뭐"라는 내 말에 감동을 먹고 나서 우리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괜히 우울해 말하고 싶지 않은 날.

하루종일 입을 닫고 있는 날도 내 눈치보며 묵묵히 견뎌 주었고

그것으로 시비를 걸지 않던 내 바탕이 되어 주던 친구여서 세월이 지날수록 그 친구가 더 그립다.

 

학교 마지막 수업이 끝남을 알리는 방송으로 나오던 아름답고 때로는 경쾌한 음악소리와 함께 청소시간이 되면 불나게 청소하곤 손을 끌던 친구였다.

그 아이 손엔 종이비누와 작은 수건이 들려 있었다.

화창한 날씨, 음악, 친구 ,시원한 수돗가, 로션, 개운함, 웃음 , 거울....

이런 기억의 소품들이 그 시절의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을 되살려준다.

 

수도여고 교복은 칼라를 빳빳하게 풀을 먹여 매일 새로 갈게 되어 있었다.

내 칼라깃은 조금 커서 작은 내 얼굴에 어울리지 않아도 그냥 맞춘 것이니 포기하고 그냥 다녔는데

그 친구는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 아이 칼라는 내 것보다 작으면서 교복과 딱 맞아 앞으로 여미는 부분이 겹치지 않고 끝이 가지런히 맞아 예뻣던 기억이 있다.

 

우리 학교의 맞은 편에 남자 고등학교인 용산고가 있어 등교 하교 시간엔 한줄은 수도여고 애들의 하얀 칼라의 곤색 교복 다른 길 건너로는 용산고 애들의 까만 모자와 까만 교복이 선명하게 구분되었다.

내 짝은 길에서 만나게 되는 남학생들한테 관심이 많았다.

특별히 사귀는 애 없으면, 아무리 멋을 내고 다닌다 해도

객관적 관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 일개의 여고생일 뿐인데도 말이다.

등하교길에서 항상 만난다는 그 남학생 때문이었을까? 

하여튼 내 짝은 하교길에 유달리 신경을 썼다.

세수하고 로션 바르고 머리 빗고 옷매무새 간추리고 가방까지 손수건으로 닦고 까만 구두 반짝 반짝 닦는 것이 그 아이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그리고 날쌔게 "가자!"하며 팔장을 끼는 행동은 늘 변하지 않았다.

 

졸업식 있기 며칠 전

내가 우울해하며 종일토록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 그런 날은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너 아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아이의  목소리 난 그대로 기억한다.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난 그 아이에 대해서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

싸움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곧잘 해 자기 감정에 솔직 당당하고

진짜 여자애들 같이 치사한 작은 것으로 간혹 싸우기도 했지만

그 아이의 싸움은 늘 가벼워서 다른 애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는 않았다. 

항상 화사하고 자기 친구로 받아들인 이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아이일 뿐더러,

옆사람 잘 챙겨주는 너무 너무 따뜻하고 사랑스런 아이여서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사랑할 줄을 알기에 사랑 받을 것이고,

남편과 아이들 잘 챙기며 알뜰하게 가정을 잘 꾸밀 것으로 확신한다.

 

내가 센치멘탈  친구에게 늘 바탕이 되어주었다면 

이 친구는 나의 바탕이 되어 주었다. 

대학을 가고서도 이렇게 살가운 친구와 헤어지게 된 사실이 너무 슬퍼 한동안 다른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듯 소중한 친구들도 기억에 묻히니 말이다.

오늘 눈물나게 그 친구가 보고 싶다.  

내가 앞으로 꼭 찾아내어야 할 친구다.

나의 무심함으로 만남의 끈을 내가 먼저 놓은 것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