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되지 않은 물99%에 극약1%섞인 생수
알프스의 오염되지 않은 물의 깨끗한 이미지이기 때문에
맛도 냄새도 없는 극약1%는 그냥 간과되어 선택한 것이
제가 여호와의 증인을 선택한 배경이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지속적인 반역을 해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과
이방민족들에게 너무 인정없는 하나님의 모습이,
영원한 죽음과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형주에서 돌아가시도록 허락하신 사랑의 하나님 모습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어 하나님의 모습을 두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던 저에게
주변 배경 지식을 가지고한 성서연구는
나비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 속 깊이 숨겨놓았던 하나님에 대한 오해는 없어져버렸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지금도 제게 성서 연구를 시켜주었던 우리 자매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오염되지 않은 알프스 산의 오염되지 않은 물이었습니다.
순수한 물이라는 믿음 위에 들어온 것이
치명적인 1%의 독인 - 예언에 결부시킨 지상 조직교리l이었습니다.
우리가 조사해 볼 수 있는 부분에 이미 믿음이 생겼기에
확인하여 알아볼 수 없는 예언과 결부된 지상조직교리는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조직이 하나님의 유일한 의사전달 통로로 인식되어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조직에서 내려온 어떠한 결정도 하나님의 의사전달로 되어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지금 저 자신은 그 당시의 제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가 증인을 떠나면서 증인이었으면서도
다른 증인들은 알고 있는데,저만 모르는 어떤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주 고지식한 사람이며, 융통성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 조직이 살아 계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통치하고 계시는 신권조직이라는
것을 사실로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였기에
이 조직에서 나오는 어떠한 것도 틀릴 수 없다고 생각해왔었습니다.
만일 이 조직이 수없이 많은 예언을 번복하고
파수대의 내용도 사람의 생각처럼
시대와 과학이 발전하는 만큼씩 변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 아는 만큼, 아니 조금이라도 그때 알았더라면
저는 절대 여호와의 증인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에게 실존하는 신권 조직이니,
조직이 유일한 하나님의 의사전달 통로라는 의미는
어떠한 실수도 존재하지 않은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임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 조직에선 저 같이 순수하고 완벽하게 인식하고 접근하는 사람은
언젠가 떠날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되고마는 것일 것입니다.
어찌보면 결국엔 조직의 눈으로는
배교자로 될 가능성이 너무도 많은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알프스물 99%를
마시다보면
치명적인 독 1%는 도저히 맛으로는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증인이 되려고 결정을 할 때에
제일 걸리던 것이 청소년기의 우리 아들 아이였었고
어지간하면 증인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의 양심으로는
개인적인 희생이 두려워 하나님 앞에 옳다고 생각되는 길을 가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알프스의 99% 깨끗한 물의 놀라움과
성서 연구의 도움으로 그간 갖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오해들을 없애는 기쁨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의사전달 통로에 대해선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확인 하지 않았던 이 1%가 제가 그곳을 나오게 한 전부이고
이 1%가 치명적인 독이기에 먹지못하는 물이 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까페의 나의 이야기에 글을 올리는 것은 처음부터 부담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겐 남의 관심을 끌어 자신을 내세울만한 어떤 것도,
잘하는 것이 별로 없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부담스럽게 느끼도록 하는 것은
지나온 시간동안 수많은 신앙적인 시행착오를 증명하듯이
제가 거쳐 지나왔던 종교조직마다 제의 아는 분들 또는 심지어 친지까지 다양하게
지금도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앙적인 부분에 대해
하나님을 대면하기 전까지 이 길이 진리다라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저 자신은 "아는 만큼 행동했다"는 것인데,
하나님께선 어떻게 여기실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보잘 것 없는 생각들을
공개적으로 글로 올리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혹시나 나름대로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남들에게는,
유치하고 ,편협된 사고에서 비롯된 행로로 여겨지면 어쩌나 염려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글을 여기에 글을 올리려함은
혹시라도 예전의 저처럼 하나님을 찾아 방황하는 저와 비슷한 동료가,
제가 앞서서 언급한 1%의 치명적인 독을 한번 살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저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동료들에게
당장 발 앞의 돌부리는 치워줄 수는 없어도
위험한 돌부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저 나름대로의순수한 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증인생활은 참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회중의 권고도 그랬고,
그간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오해의 딱지들을 떼어내는
기쁨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일 주일의 세 집회를 다니다보면 풍성히 주어지는 영적 양식에
머리 속엔 계속 변화있는 내용들이 담겨져 세상적인 고민들은 작게 보여지게 되었습니다.
만일 고민이 생기에 되면 더 조직에 연합함으로,
직접 헤쳐나가기보다 영적인 일들이 세상과 반대되는 것이란 관계로 보게되면서
세상과 점점 더 담을 쌓아가게 되었습니다.
일방적인 도태이니 힘들 이유가 없는 것이고,
걸맞게 성서 적용과 파수대의 "검소한 생활에 자족하는 법을 배우라든가
사업장의 규모를 줄여 하나님의 봉사 사업에 열심을 내는 것이 더 훌륭하지 아니한가?"라는쪽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며,
몇가지 성서적으로 명분을 세우니
자기 희생을 하는 것이니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이란 착각을 하게 되고
자기 만족에 빠짐으로 행복한 느낌을 갖게 되는 원리였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라
다른 증인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증인을 그만 두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화 유람선에서 내려
내가 직접 노를 저어가야 하는 작은 배로 갈아 탄 기분이었습니다.
유람선을 탔을 땐 배가 고프지 않아도
세끼의 맛있는 다양한 메뉴의 식사가 나와 배부름을 느꼈고,
아름다눈 노래로 내 감정을 풍부하게 해 주었으며
늘어지게 잠을 자도, 배는 앞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작은 배로 갈아 탄 이후로는
내가 만들어 먹지 않으면 허기에 지치게 되며,
내가 노를 젖지 아니하면 전혀 앞으로 나가질 않고,
혹여 늘어지게 잠을 자고 나면 배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밀려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음을 풍요롭게 하려 노래를 불러도,
예전 유람선에선 다른 사람들과의 합창이었기에
내 음이 틀려도 소리만 작게 내면 남도 모르고
나 자신에게도 어느정도는 속이며 지나갈 수 있었으나,
자금은 내 음이 틀린 것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어
계속 악보를 보고 음을 다듬어야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처음엔 죽을 것만 같이 너무 힘들고,
편하고 쾌적했던 유람선에서 잘 못 내렸나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저는 한가지 저의 경험상 내가 터득했던 기본 지침을 상기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어떤 길을 가다가 길을 잃으면
처음 시작한 길로 다시 돌아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방향을 새로 잡는 것이고,
어떤 일을 하다가 꼬이면
원래 하려고 하였던 동기를 새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요하지 않았던 작은 감정적인 것들로 빗나간 것들을
올곧게 바를 수 있게 되는 제가 터득한 방법이었습니다.
처음엔 정말이지 힘들었지만
저에겐 제가 보호해야할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도 제가 걸었던 많은 시행착오로
젊은 날을 헤메고 다니게 할 수는 없었기에
저는 빨리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찿아 여기까지 왔고,
여기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곳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으면
여기를 떠나는 것이 제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정말 양심에 비추어 조직이 우상숭배가 되고 있는 그 사실을 알면서
하나님을 섬긴다하며 이곳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유람선이 앞으로 향하고 있기에
우리의 목적지로 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어느날 항해일지를 보니 내가 가려고 했던 목적지와 방향이 다른 것을 알았을 때의
두려움, 분노, 절망감.... 그런 기분을 님들께서는 이해하실 수 있을지요?
배의 방향을 잡는 선장만 믿고 앞으로 가고 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으로 기대하는 동료들에게
배의 방향이 이상하다고 아무리 이야기 해 주어도 말이 먹히지 않는
그 답답함을 님들께서는 이해해 주실 수 있으시겠는지요?
선장실에 있는 나침반과 항해일지를 좀 보라 하여도
이 유람선의 규칙이 아니라며
도리어 자기 아이들이 영향을 받을 까봐 접하지 못하도록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세뇌라는 무서운 생각이 저의 유람선에서의 이탈을 급하게 만들었습니다
제 아이들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자기 부모의 손에 의해 혹은 장로들의 손에 의해 눈과 귀를 막아지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면서
우리 가족은 급하게 급하게 구명보트를 타고 유람선에서 내렸습니다.
유람선 배 위에서 제 아이들의 또래들은
우리 아이들을 불쌍하게 물끄러미 바라보더군요.
같은 시간 저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모릅니다.
그 선장에게 향하는 분노와 내 동료들에 대한 연민등이
현재 여호와의 증인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입니다.
제가 잘못 생각을 해서 그 유람선이 진짜 목적지를 가는 배였고,
제가 낙오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저는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분별력과 판단력이 그것이 전부였고, 나의 한계였기
때문입니다.
결과야 어떻게 되던지 저는 제가 아는 만큼 행동했고,
하나님을 찾는 면에선 정말 용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도 불만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판단 능력이 부족했다면 그 책임도 제가 져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제 제가 직접 노 저어 가는 배를 타고 가니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예전엔 유람선을 탄 그 자체가
내 목적지를 향하는 자신의 의지를 이미 나타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유람선의 안내 방송과 안전 수칙만 잘 지키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구명보트를 타고나서는 모든 행동이
내가 가고자하는 목적과 부합되는지 끊임없이 살펴야합니다.
내가 원하는 목적지가 하나님이면
그분께서 남겨주신 성경을 나침반으로 하여 나아가야되고,
가고 싶으면 노를 저어야하고,
살아서 그곳에 가야할 것 같으면
배안에서 생명유지에 필요한 먹거리를 만들어먹는
자신을 위한 수고로움을 해야 할 것이고,
모든 것이 처음 가고자하던 목적의 의미를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힘들면 포기하고 육지로 배의 방향을 틀어도 되고,
그래도 목적지를 가야할 것 같으면 성경을 나침반으로 삼아
매 행동의 동기가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갈 수 밖에 없는 길이었습니다.
요즈음은 이런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성서에서 말하는 좁은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어떤 조직에 속하여 처음 마음과는 달라져도 변질되어도
그냥 그 조직이 가는 방향대로가는
타성에 붙은 종교조직 구성원이 아니라
매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었인지를 정직하게 살펴볼 수 있고,
내 목적지를 갈 것인지 안 갈 것인지를 매번 선택하며
앞으로든 뒤로든 홀로가는 신앙이
하나님을 향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일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요즈음은 많이 느긋해졌습니다.
배의 방향과 내가 가고자하는 방향만 맞다면
노도 쉬엄 쉬엄 저어가고,
내가 살아서 도착지 못하더라도
내 배의 방향만이라도 하나님을 향하다가 죽는다면
그것은 살아계신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
걱정은 조금도 안됩니다.
요즈음은
진정 자유하면서도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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