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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야기/3

[스크랩] 젊은 날의 모든 의문들을 내려놓고 쉬게 해준 큰 나무.

제가 다섯살 즈음 제 아버지께서는 집안의 사정으로

하시던 병원을 접고 서울로 올라가셨습니다.

얼마 안 있어 나머지 식구들도 서울로 따라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낯선 곳으로의 이사로 어울리던 또래들과도 헤어지고 "부산 촌뜨기다"라는 놀림을 받으며 외톨박이가 갑자기 되어버렸습니다.

사투리가 재밌다고 생각없이 놀리는 동네 아이들이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저는 그당시 애살이 많고 자존심 강한 아이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꼭 대청 마루 밑에 기어들어가서 아침에 우리 닭이 낳아 놓은 따끈 따끈한 계란을 찾아 우리 어버지께 드리는 일을 오빠나 동생에게 뺏기지 않았고

아이 셋이서 아버지 신발 두짝을 서로 닦으려고 다툴 때에 어느 한번도 뺏긴 적 없는 저였습니다.

부당한 말을 듣기라도 하면 울고 불고 세상이 시끄럽도록 울어대다가 지쳐서 잠들기 전까지 포기하는 법이 없던 자존심 센 아이이기도 하였고 

일단 자고나서는 앞 뒤 잘못은 다 제가 한 것처럼 미안하다며 앞서의 시비는 다 제가 잘못한 것 같아 "미안해"를 입에 달고 있던 착한 아이이기도 하였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저는 아이들이 같이 놀자고 손을 붙잡아 끌기 전까지는 집 대문 앞에 앉아서 아이들 노는 것만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된 아랫집 아이 손에 이끌려 겨울 어린이 성경학교에 가게 된 것입니다.

여섯 살. 어린이 성경학교에서 배운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우리 하늘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정도 이지만

어린이 성경 학교가 제겐 무척 재미있어서 그랬는지 그 때 배운 단순한 그 지식은

평생을 하나님께 붙잡히도록한 믿음의 씨가 되어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이 그러하기에 좀 커서 어린이 성경학교 교사 일을 할 때도 어린아이 한명도 가볍게 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막연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던 제가 고3

대학과 학과 진로 결정을 앞에 둔 시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어린 신앙에 큰 걸림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그분의 의를 덮어버리는 더러운 사상들의 덫에 걸려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철학관에 엄마 손에 이끌려 점을 보러 가게 된 것인데

용하다는 점장이는 당사자를 꼭 보아야 한다고 했고,

제 어머니께서는 딸 인생에 도움이 되는 과 선택을 위한 것으로

제 손으로 돈을 벌어야 할 팔자라면 직장이 용이한 과를 선택하고

굳이 돈을 벌어야 할 팔자가 아니라면 학교 등급을 올려서 간판에 도움이 되는 학교의 낮은 과에

지원시키려는 계산이었습니다. 

제 어머니 생각은 당신의 생각으로는 아주 현실적인? 판단이라 확신하고 계신 터였습니다.

물론 그날 저녁 아버지께 심한 질책을 받으셨지만 말입니다.

 

저는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종이 한장에 제 인생 행로가 다 그려지는 상황이 제가 막연히 알던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감독의 마음대로 정해지는 배역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꼭두각시 놀음 자체가 싫어 하늘을 쳐다보기가 싫어졌습니다. 

 

지금 기억엔 그 상황이 너무도 힘들어서 하나님 생각을 몇 달정도 애써 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그분에 대해 무척 화가 나있었습니다.

점쟁이의 호언장담도 비켜가고 원하는 학교가 아닌 전혀 예상 밖의 대학에 가게 되었고

저를 기대하던 우리 어머니의 미움을 한동안 인내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저는 성경을 처음 배우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재단 학교였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되면서 저는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하나님께로 마음을 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모든 의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주에서의 대속 아래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주는 하나님을 찾는 저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에 반론을 제기하는

온갖 사상에도 거뜬히 이길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고,

하나님을 찾아 가는 캄캄한 망망대해에서의 커다란 등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좋은 환경의 친구들에겐 대속이라는 의미로 크게 와닿았을련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에 관련해서는 어떤 조언이나 실제 고민을 들어줄 이 없는 저의 환경에서는

하나님의 의와 그분의 공의로우심 그리고 사랑 많으심을 부인 못하게 해 주는 큰 증표였습니다.

젊은 날의 무수한 의문점들을 다 내려놓고 쉬게 만들은 큰 나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주의 사건은

저처럼 그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어린아이가

그분을 찾아 오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온갖 덫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바라보기만 해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대속의 의미가 가슴으로 와닿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의 믿음은 보잘 것 없지만

시작이 워낙 초라했던 저이기에 참으로 먼길을 달려왔음을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 없이는 불가능 했던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오는 과정엔 기도도 허공에 공던지는 것이라며 투덜 거리며

바른 길을 찾았다 확신하며 감사하다가도 산을 만나고 강을 만나기도 하여

감사의 기도를 했던 자신이 머쓱해질 정도의 

하나님 관심 밖에 있는 역시나 버려진 외톨이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혼자라는 외로움에 떨며 밤을 지새기도 하였지만

지금 바라보니 그 과정도 하나님 관심 아래의 시간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

부족한 저를 오늘까지 아버지의 그늘 안에서 지켜주켜 주셨음을 확인하여

감당하기 어려운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감사가 나오는 참 특별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주 아주 행복한 날입니다.

출처 : i 여호와의증인 정보까페
글쓴이 : 언제나그자리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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