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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나의 일상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

"배 좀 더 넣어봐 ..

그래 배에 힘을 주고

 다시 서 봐..

 

너 자꾸 배를 쑥 내밀고 서 있으니까

똥배가 이렇게 나오는 거야.."

 

내가 열살 남짓 했을 즈음이었을까..

지금은 기억도 나질 않는 원피스이지만

일명 깡통시장이라 불리우던 지금의 국제시장

그 화려하던 불빛 아래서 이모가 골라 낸 것이었다.

옷가게안에 좁은 공간,  지금의 나보다 훨신 젊은 모습의 이모 앞에서

이모의 도움을 받아가며 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이모 눈에 꼭 드는 원피스를 내게 입혀보면서

원피스 허리부분이 내 배에 걸리자

이모가 짜증을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모 눈엔 그 원피스가 너무도 마음에 들어 조카에게 꼭 입히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 원피스를 샀는지의 여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소화해 내지 못하는 조카에게 짜증을 내던

그 따뜻한 마음은 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모는 내 어머니와는 또 다른

내게는 또 다른 어머니의 모습으로 내 어린 시절에 계셨다.

 

어린 계집아이의 태를 벗을 때 즈음

낯설기만 한 속옷들을 함께 사 가지고 와서는  

"이제부턴 이런 것도 둘러야 돼 ..

그래야지 가슴이 예쁘게 자라는 거야..

이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여자라면 다 하는 거야"라며

부끄러워 죽으려는 조카 윗도리를 벗겨 놓고 입혀주던 이모이셨고 ..

 

방학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 날 저녁에

실눈 뜨고 텔리비젼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는

급하게 광복동 안경점에 가서 시력검사를 하고 안경을 맞춰주던 이모이셨다.

" 너 눈이 이렇게 나빠졌는데 네 엄마는 어디다 신경 쓴다고

애 안경도 맞춰주지 않고 있었다니.."라 궁시렁 대면서..

 

같은 자매지간이면서도 내 어머니보다 더 살갑고 따듯했던 이모 ..

그땐 엄마보다 이모가 더 좋았다..

 

겨울방학 때 ..

밖에서 놀다가 들어오니 이모방에

낯선 남자분이 다과상을 받고 이모와 마주하고 계셨다.

이모도 약간은 쑥스러웠는지 문을 빼꼼 열고 들여다 보는 나를 반기며

"들어와 봐.. 인사드려.. 이모 학교 최선생님이셔! "라고 소개하던 낯선 얼굴..

어색하게 들어가 이모 옆에 달라붙어 힐금힐금 

낯선 이방인의 얼굴을 훔쳐보면서

'우리 이모랑 어울리지 않게 너무 촌스럽네..

무슨 과목 선생님일까..'라는 생각을 막 하고 있는데,

마침 .."무슨 과목 선생님이실 것 같니?"라 물으시는 이모의 말을 듣고는

나는 준비된 답을 바로 내었다..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이모는 평소보다 말 수가 더 많아지며
"그래.. 우리 조커 눈매가 매섭구나.. 맞다 사회선생님이시다.."

"우리 조카 눈이 너무 예쁘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이모 앞에

쑥스러운듯 촌스럽게 미소만 지으시고 계시던 분..

그 분이 우리들의 이모부가 되셨다..

 

그분이 다녀가시고 나서

촌시럽게 생겼다고 ..너도 나도 한 마디씩 하던 그 시절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모두 너무도 그리운 얼굴들 ..

모두 내게 영원히 주인 잃어버린 이름들 ..

 

내게는 그런 이모님이셨지만

바쁘게 산다는 핑게로 한 번도 직접 모셔 식사대접을 못하고 있다가

기회가 닿아 두 분을 모셔

가슴에 하나하나 다 새겨진 이모의 그 따뜻한 사랑을 되살려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세련된 젊은 모습은 어느새 사라졌고

신장이 안 좋아져 얼굴이 푸석푸석하게 많이 부어 있으신 가운데

고상한 어른의 향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

 

젊었던 시절 이모님이 내 어머니랑 서로 닮았다고는 생각해 보질 않았으나

연세가 드시니 내 어머니와 많이 닮아 있음을 보게 되었다..

마치 족보에 나란히 올라가 있는 이름을 확인해 보는 뿌듯함 같은 기분이 들어

이모님 얼굴에서 내 어머니 얼굴을 찾아내어 보았다..

은밀한 그 작업도 얼마나 잔잔한 기쁨이 되던지  ..

 

늘 따뜻하고 포근한 캐시미어 얇은 솜이불같았던 이모 ..

두 아들 훌륭하게 키워 걱정이라고는 없이 사시는 두 분이시지만

앞날에 건강과 평화와 잔잔한 기쁨이 늘 함께 하시길 빌어보며

마음으로는 딸의 자리가 필요할 때 내 기꺼이 그 자리를 채워 드리리라 다짐했다..

 







 

 

 















 

 

 


















 






이모부 ~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품안에서 편히 쉬시다가 우리 다시 만나뵈어요 ..

그간 많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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