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May grace and peace be yours in abundance in
the knowledge of God and of Jesus our Lord.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에 관한 지식으로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풍성하기를 원합니다.)
3 His divine power has given us
everything needed for life and godliness, through the knowledge of him who
called us by his own
glory and goodness.
(
그분의 신적 능력으로, 생명과 신성한 일 모든것들을, 그분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4 Thus he has given us, through these
things, his precious and very great promises, so that through them you may escape
from the corruption that is in the world because of
lust, and may become participants of the
divine nature.
(이렇게
이런것들을 통해서 그의 귀하고 웅대한 약속들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약속들을 통해서 이 세상의 욕망으로인한
부패로부터 피하고 신적인 경지에 참여케하기
위함입니다.)
위 성구는 베드로 선배님 두 번째 편지 중에서 발취한 구절입니다.
위 구절들중에 밑줄 친 한글만을 잘 살펴보셔도
선악과와 생명나무 속에 박아 논
하나님의 친 가족계획 즉, 인간과 관련되었던 영원한 의도를 파악하실 겁니다.
그 의도란,
지식을 통한 생명, 지식을 통한 신성함(거룩함),웅대한 약속을 받음(성경은 성령을, 항상 약속의 성령이라하죠,즉, 이미 지불된 그래서
보증된 약속 형태를 말합니다.)
부패,소멸에서 벗어남,(선악과 미달로인한 죽음에서 구출,벗어남)
신격화되어 마침내 이 길을(생명나무의 길) 쭉 가면,드디어
하나님과 하나됨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영광에 도착함 대충 이런 과정들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선악을 아는 지식) 범위 중에는
죄로 드러나서 사망이냐 아니면 육체를 지배하여서 신격화 옷을 입느냐 라는
히브리서 4장의 살아계신 말씀의 결과들이 드러나는 창조의 장소죠.
그리고 저의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바울 선배님이 로마서 3장에 언급한
인간이 죄에 떨어졌을 때 바로 "하나님의 영광" 이라는 목적지에서의 떨어짐이라고 했지요.
기억나시죠?
그 기억을 되살려서 위 구절 중에 색깔 입힌 단어들을 한번 다시 봐 주세요. 여기보니까
베드로 선배님도 같은 어휘로 쓰셨내요.
우리를 하나님 자신의 영광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선으로 다시
부르셨답니다.
다시 이 최종적 장소까지 오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답니다.
그 부르심의 절차 방법이 바로 윗 구절들입니다.
우선, 죄에 떨어져 사망인 우리에게 다시 길을 가기에 필요한 새 생명을,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신성한 일에 참여케 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것들의 제공으로 되 있군요.
그렀다면, 이 상황이란, 우리를 다시 아담이 죄 짖기 전의 상태로 되 돌려 놓았다는 뜻인데요 그쵸.
다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선이라는 신만의 장소에 거하게하기 위해서
우리 인간의 최종 목적 달성 장소로 삼으라고 희망의 깃발로 꼿아주시고
우리더러 다시 한번 출발하라고,,, 우리를 우선 죽음의 장소에서 끌어내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라는 이 거대한 산 소망을 예수의 자질 안에다 먼저 심어서
그 장소를 우리에게 오픈해 주신 것입니다.
이 쯤에서 한번 이런 추리해 보죠.
태초때의 오리지날 에덴의 선악과 창조 과정을 그대로 가져다가,
위에 베드로 선배님이 정리한 예수 안에서의 믿음 창조 과정 위에 그대로 펼처놔도
이 두 창조 과정들은 똑같은 구조인 하나로만 포개어진다는것을 알게됩니다.
한번해 볼까요. 위에 4절에 빨간 색 두 단어를 보십시요.
욕망으로인한 부패(소멸), 즉, 사망이죠.
이브의 수상한 욕심의 피에 갇친 우리 믿음의 신자가
그 욕심으로인한 부패의 장소로부터(사망) 탈출할 수 있는 상황에 필요한 모든것들을
하나님은 다시 예수 안에다 똑같은 두 나무 구조로 박아놓고 과거 에덴 때와 같이
그 과정을 거치게하여서
믿음의 신자가 이브의 욕망적 죽음에서(선악과 미달이죠) 우선 벗어나는 대속의 혜택과
다시 하나님의 의로 거듭나는 영의 새 생명으로 나오게하고는,
신자들 육체로는 징계와 훈련으로 단련시켜서 산악과 달성과 함께 다음 스탭인, 생명나무격인,
거룩한 제사장 옷을 입히고 결국,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라는 끝맺음 과정 말입니다.
간략하자면 이런 말입니다. 그 당시 아담이나, 오늘날 신자나 구분없이 다,,
결국은, 죽음이 거하는 선악과 영역에서 해탈돠고---> 생명으로 거듭 나오냐 그래서,
이 과정에서 승인받은 상태로, 거룩한 제사장 옷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인
생명을 주는 생명나무 참여냐,,라는 과정말입니다.
내성은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흙의 자재로 도구인 육체가 만들어진 이유 때문에,
선악과 라는 죽음이 거하는 장소에서부터 이기고 ---->생명나무라는 하나님의 영광까지의 길은
예나 지금이나 딱 한가지,,,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으로써의 과정 입니다.
이 부패되어 소멸되는 땅의 기질이로부터(육체) 벗어나서 신격화되는 경지에 이르도록
원래부터 디자인 된 하나님의 의도가 길처럼 놓여져 있었던것이죠.
그리고 이 흙 기질에서부터 벗어나야 하나님만의 영의 신격화로 약속처럼 초대받았구요..
하나님의 신성을 키워내는 이 두 나무 과정으로, 하나님은 우선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들어 놓고,
인간을 부른 것입니다. 바로 위 구절과 같은 과정말입니다.
인간 조상들은,,, 원래부터요,,그 거룩한 나무들과 결국, 하나가 되서,
하나님이 앞으로 펼쳐내실 육체로 된 거대한 거룩한 가족들을 의도하셨던 것이죠.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되는 장자들의 왕국,,, 이 왕국이 7 번째 날에 기초, 즉 머리 역활을 하여서
이 머리로부터 온 몸들이 형성되고 마침내 이 기초 아래서 온 땅도 하나님의 영광스런 아들들로
충만해지는 가족 계획 말입니다.
아담은 왕으로 부르심을 받은 상태였고 이미 그 약속을 거짖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서 그 두 나무는 기능을 잠시 접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에덴에 모든 기능들의 정지를 의미하는것으로써,
생명나무 접근 금지령을 내리고 인간을 거룩한 에덴으로부터 밖의 야생의 땅으로 추방하고는
심지어 에덴으로 통하는 그 길 자체까지 막아 버립니다.
아담 시대에 이런 표현들로 조취를 취하신 상황의 전개란, 곧, 인류의 머리속에서
생명과 거룩함에 속하는 과정 자체를 지웠다는 의미고,
따라서 하나님 7 번째 날 창조 과정을 정한 때까지 철저한 비밀로 봉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때가되자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비밀, 7 번째 날 쉼의 서광이 그림자처럼 비췄죠.
인류는 그 서광을 통해서 마치도 짙은 안개 속에 굳게 닫혔던 에덴의 그 자태를 조금 볼 수 있었습니다.
십계명과 이에 딸린 수 백가지의 법과 규례와 율례들을 통해서 우리는 에덴의 산악과 나무의 의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거룩한 제사장 구조들을 통해서는 우리는 에덴의 생명 나무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서광에 믿음을 두는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그림자같은 서광의 존재지만 다시 열린 그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때가되자 드디어 에덴의 실체를 다시 출현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에덴을 7 째날 다시 오픈하시고 예수라는 생명나무를 다시 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나무가 말 그대로 생명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 안에 생명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져 아무 나무를 정해서 인간에게 그 나무가 시키는대로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주는 그래서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의 영광도 그 근원이,, 일개의 나무라는,, 그래서 원숭이 진화론 보다 더 미개한,,
존재성, 정체성 보두 다 제로인,,,,그져 일개의 보통 나무였다는 이 미개한 논리가 절대 될수없는,,
감히 가까히 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나무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 말씀인 선악과와 그리고 스스로 이 생명나무가 되는 작업을 먼저 합니다.
그리고는 씨에서 땅을 뚫고 나 온 자신만의 영광스런 생명을
이 나무의 뿌리에 부워주는 일을 합니다.
바로 생명수라는 자신만의 말씀과 하나님의 일로 된 행위로,
이 성령으로 이 뿌리에 부어주는 일을 합니다.
이쯤에서 나는 지금 이 전개되는 상황을 옆에서 보고 있다가
'하나님 지금 뭐하시는 중 이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답했죠.,, '아이야 나는 지금 생명나무를 만드는 중이란다.',,,
그 때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아,,,그럼 첫 번째 에덴에서의 그 두 나무들도 보통 아무 나무들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피와 하나님의 땀으로 만들어진 하나님 자신이셨겠구나' 라는 신음소리를 내면서요,,,
나는 지금 나에게 믿음으로 비춰진 그 빛을 꺼꾸로 따라서 올라가서야
현재 나에게 심겨진 믿음의 구조가 과거 에덴의 두 나무 구조와 아주 똑 같다는 사실에 눈을 뜬 것이었죠.
그리고 율법의 틈새 창으로 새어 들어 온 그 영광스런 서광이 마치, 증인 자격으로
의 정신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찾아 온 위대한 두 기회,
되돌려진 시간과 되돌려진 장소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브의 수상한 욕심의 장소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시도할 수 있는 시간과
그리고는 아담이 담보 잡히고 체결한 죽음의 서류에서 완전히 벗어 날 수 있는 장소가 다시 찾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기 판을 포기하지않고,,,
사람들의 눈에는 소홀히하는 보잘것 없는 졸같은 인간 존재로 하여금,
왕노릇하는 사망을 죽여버리는,,하나님 눈에는 고귀한 믿음의 수를 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수 방식은 생명나무가 될 씨부터 만드는 작업으로써
이 씨 안에 자신의 모든 영광까지 라는 DNA 길을 입히고,
그리고는 이 씨를 먼저 죽게하여서 씨로는 죽고 나무로는 부활이라는
생명의 뿌리로 탄생게하는 믿음의 수 였습니다.
사망의 검은 손악귀에 들어 갔던 모든 바둑 알들이
하나님의 이 단 한 수,,믿음의 수에 의해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희생적 한 수에 의해서
빛의 생명으로 승리를 거둔 방식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생명나무에 접 붙혀진 가지들이 된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그 때 그 에덴의 두 나무들도 보통 나무들이 절대로 아닌,
어럽고 힘들게 하나님의 정성어린 자신의 피와 예수의 순종의 땀으로 된 자체였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놀라운 이 비밀 한 가지를 밝힙니다.
바로 하나님의 한 수란,,,우리 믿음의 신자들을 의미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 나무에 가지요, 생명나무이자,, 선악과 나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최고점에까지 초대된 신의 운명이었다는 비밀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죄를 죽이는 하나님의 한 수인,,거룩한 제사장, 산 돌들입니다.
이 산 돌들은 기초 돌들로써 머릿 돌 되시는 예수와 결합하여 죄를 없애는 성전을 이룹니다.
이 죄를 죽이는 일인 하나님의 일을 하여 하나님의 영광까지 라는
은혜로 초대받은 나무라는것 입니다.
오직 이 나무이신 예수에 가지로 남아있다면은요,,,
이 뜻이 바로 "나는 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라는 뜻으로 된 밀도의 무게 입니다.
이 나무들이 있어야 할 곳은 딱 한 장소 뿐이죠 바로 에덴 말입니다.
그리고요,,이 기능들이 가동으로 이미 존재한다면 에덴은 다시 오픈된 말이구요.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은요,,
에덴이 다시 오픈된 것이라면,,,
우리는 되 돌려진 장소에 다시 서게 된 것이구요 바로 이브의 욕심의 장소 말입니다.
이브의 욕심의 장소가 다시 한번의 장소로,,
아담의 죄의 시간들이 다시 한번의 시간들로써
이 에덴이 다시 한번 우리의 기회로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7 번째 날에 말씀이 다시 한번 진동한 것입니다.
그러니까,,초창기 에덴 때의 그 하나님은 손큼만치도 변한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죄의 시간은 흘러갔을지언정,,,
하나님의 창조의 날은 아직도 그 시간 그 장소에 그 생명나무로 그 말씀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거룩함으로의 초대로,, 장자들의 길로 우리는 다시 초대받았습니다.
다시 나타난 생명나무와 그에 붙은 가지들로써말 입니다.
떨어져나간 이브의 그 가지 그 장소에,,, 다시 이브의 그 자리에 신부로 접붙혀진 우리 입니다.
선악과의 사망에 꽉 잡혀서 그 어둠의 땅의 원소로 되 돌아간 아담의 뿌리 자리에
육체의 씨로써 대신죽고 하나님의 선악을 아는 나무로써 다시 자라 주신 생명의 말씀이
음성으로 발하여지는,,, 오늘이라는 날 그 시간이 다시 찾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늘의 예루살렘 도시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욕심에서 풀려 난 신부들이 낙원에서 죄를 없애는 제사장일을 하고는,
즉, 신부의 옷을 입고는,,,결국, 신랑과 하나가 되는 결혼을 통해서,,,
12 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인 예루살렘.
온 땅을 축복할 이 무지개 일곱 빛을 발하는 이 거룩한 예루살렘의 정체는 무었입니까?
왜 이 예루살렘의 빛이 하나님의 영광의 7 빛과 같은 빛으로 되 있나요?
계시록의 예루살렘 안에는 분명히 있어야 할 성전이,,,죄를 없애는 이 두 나무가,,, 보이질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요,,,
이미 이 두 나무 기능이라는 죄를 없에는 성전은요,
에덴이라는 낙원 도시에서 완료될 때에,
이 살아있는 도시 자체가 예루살렘 크기로까지 성장하여(장성) 합성된,
하나님의 아들들의 총 모임, 즉, 하나님 자신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이런 차원의 도시인데요,,,
이 두 도시 다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라는 샘입니다.
이 두 도시 중에 한 도시인 낙원 도시는 초기적 이미지로써,,
성장을 책임진 두 기능으로 구성으로되 있구요
이 도시 안의 기능들이 아들들의 성장을 다 완료했을 때 결국,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영광 자체가 되는 구성이죠.
신의 잉태와 신의 분만 방식인 것입니다.
곧 에덴의 두 나무인 자궁 도시과
이 자궁으로부터 나와서 실제로 하나님 몸의 일부로 결합되는
즉, 하나님의 형상을 닳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의 아들들로 결합 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영광의 빛을 발하는 이 예루살렘은
수 많은 아들들로 늘려진 확장판 하나님 보좌를 의미합니다.
마지막 결론적으로,,,, 에덴 동산의 두 나무의 입체성이란,
하나님은 6 째날의 창조물인 아담과 이브를 완성하고는
이 두 나무 자체에다가 이들을 접붙이는 방식으로써,
하나님의 쉼인 7 번째 날을 자신의 집인 왕좌에다 열고는
자신의 왕좌를 확장시키는,,, 기초 공사 진행 중이있었던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켐버스 7 번째 날 의도에서
사랑의 입체성 옷을 입지 못하고 추락하는 별이었구요.
그리고 때가 흘러서 문자적 율법의 틈새로
이 영광의 비밀의 빛이 삐짓고 나온 모습으로 표현되자면,
그 당시 성전을 품은 예루살렘이었고,,,
예수의 부활 3일 후에 다시 건설된 영적인 성전인 경우의 모습이란,
2번째 아담인 예수를 이 성전의 머릿돌로, 신랑으로,, 혹은 나무로써
우리는 예수인 이 머릿돌과 결혼방식을 통해서 서로 연결되는 성전의 기초돌들이자
예루살렘의 온전한 수 전부인 가지들, 예수의 신부들, 술람미 처녀, 이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무에 접붙혀진 열매맺는 가지들입니다.
다시 이 하늘 낙원이,, 이 두 나무인 예수와 하나님과 우리들,,,
이렇게 하나의 생명나무가 되어서, 생명수가 되어서 왕좌가 되어서
7 번째 안식의 쉼 날로 들어 온, 또는 들어 올 신자들인 창조물들을 이 열매로 먹일 것입니다.
2 천년 동안 끊겼던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지금 다시 열였음을 기뻐하십시요.
이브의 수상한,,아니,, 악한 자기 중심적 욕심으로 시작된 이 죽음의 장소에다가
예수를 투하시켜서 다시 걷게해서 우리를 다시 에덴의 장소와 시간으로 되 돌려 놓은
우리의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요.
우리의 살아있는 길,,, 에덴으로의 길을 찾아서
다시 이 동산 낙원으로 들어가고는
창세때와 똑같은 아버지의 상속인 영원한 의도를,,,
우리의 살아있는 소망으로,,,이 믿음의 지식과 거룩함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는 살리라" 하는 믿음의 정착지에까지 가기위해서
선악과의 졸업장인 사랑의 종점에서 내려서 이 사랑을 보물처럼 가지고
아버지 앞으로 이 예루살렘의 영광의 빛으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이 생명나무에 우리가 가지로 접붙이기전에 먼저 사망을 없애야 할 것입니다.
사망을 우리 몸에 가지고 그대로 그 거룩한 생명 나무에 접 붙혀질수도 없거니와
그 가지가 죽음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면 결코 생명의 열매도 맺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죄로인해 죽는데 어떻게 남에게 생명을 줄 수가 있습니니까?
위에 베드로 선배님이 하신 말씀 중에
"생명에 필요한,,,그리고 신성에 필요한,,,모든것을 주셨다" 에 답이 있습니다.
신격화에 죄로인한 사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라에게 아직도 사망이 있다면 그건 거짖말 입니다.
다음에 기제될 글 입니다.
'흔적들 > 담아온 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악과와 생명나무가 되 주신 예수와 하나님 (다시 오픈된 하나님의 동산2) (0) | 2016.05.25 |
---|---|
다시 오픈된 하나님의 동산(1) (0) | 2016.05.25 |
율법을 품은 믿음( 이브의 수상한,,11) (0) | 2016.05.10 |
왕좌 (0) | 2016.05.09 |
이브의 수상한 욕심과 아담의 죄를 품은 율법, (10) (0) | 2016.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