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바로 전 글 마지막 문장들을 다시 인용한
것입니다.
"그래서인데요,,잠깐 여기서 잊어먹기 전에,,
이 말은 하고 가야겠습니다.,,,
즉, 6 째 날에 창조된 인간은,,,
인간 안에 창조된 하나님 형상이라는,어떤 사상과 개념들을 입력할 수 있는,,
다시말해서,,이미 우리 안에는 창조된 hardware 즉,
6 째 날 육체 창조 도면상,, 꼭, 이 구조, 혹은 어떤 개념적 법칙에 의거해서만
생명 유지 내지는 기능들이 업 그래이드 되도록,,,
다시말해서,
이 수령 기능 부분이 이미 창조(내재)되었으며 오직,
자신의 육체적 행위나 생각으로만
오직, 외부적 영향에 반응하여서 이 수령 부분이
발동하여 자신의 정체성으로 즉, 자아라는 성장의 피로 형성되어가는 존재라는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체성과 영원한 생명이란,,, 산 영혼인 육체 안에서 활동하는
매개체 수령 부분의 기능적 반응이라는 이론 입니다.
이 인간 존재 구조에 들어오고 나가는,, 법칙의 입력들,,,
이 말은,,,어떤 법칙이 먼저냐? 가 관건이었습니다.",,,,
그렀습니다 형제들.
영원한 생명은, 혹은 정 반대의 사망은,
지식의 이해,분해,그리고 판단부분인 인간 정신 부분에서
가동시켜서,
생명과 혹은 사망에 관련된 수위급의 법칙을 육체적 행위 완료를
통해서
양심 부분으로 수령받고, 그 다음, 양심으로 이미 수령된 행위,
즉,
생명과 혹은 사망에 관련된 이 법칙의 열매가,,
심장에서 접수되고 자아로 완전히 완료되는,,
하나의 정체성 자아,,,로 마무리 되는 하나의 길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의 6 번째 날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 창조 때에
이 4 가지 하나님 형상들은 이미 hardware 로 형성되어서
7 번째 날에 이 4 부분의 기능적 반응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영광으로 드러나는 창조 방식 입니다.
그렀다면 그 선악과와 생명 나무의 정체성 혹은 신격 자질을 드러내는
그 나무들의 실제성내지는 본질적 가치설이 나와야 할 겁니다.
아래는 좀 다른 글의 주제로 삽입되야 하지만,, 약간만 들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이 설마 그져 동산 위의 수 많은 나무들 중에 아무거나 골라서
하나는 선악과 나무로 이름 지어서 만들고
또 하나는 생명 나무로 꾸며서,,
하나님의 7 째 날 안에서 제 시간표에,,
그 나무의 열매를 취하는 인간을 말이죠,,
신격화 승인과 그 다음, 영원한 신의 영광을 의미하는,, 영원한 생명나무로,,
이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 아들로써의 승인과
그 승인받은 아들이 마침내, 영원한 상속물격인 하나님의 영광에까지 참여 라는
,,,
거대한 신의 본질을 이런 보통 일반적인 나무들에 박아놓고 인간을
그 나무 밑 아래에 두셨냐는
말입니다.
절대로 그럴리가 없죠. 만약에 이 동화책 기독교적 창조론이 사실이라면,,
신이 자신과 똑같은 아들을요, 지성없는 나무 위에다 말로만의 계명을 입혀서
그 나무 밑에 두고서 말하기를 ,,' 너희는 그 나무들에 의해서 나처럼 완료되라' 말이
아닙니까?
우리 인간이 흙으로 출생되어 나무의 권한 아래서 완료된, 이성없는 나무의
후손입니까?
그래서 우리 인간이 나무 밑에 무릎꿁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나무에게 복종하는,,
나무가 우리의 신격 조상 역활이냐구요,,
절대로,,,이 나무들은,,, 그 안이,, 물과 입자들인 나이테로만 구성된,,
가치적으로 볼 때 텅 빈 나무들이 아닙니다.
이 나무들은 이미 신격화 된,,,동산 안에 계시는 말씀이라는 이미지이자,
영원한 생명으로써 동산에 알맞은 모습인 생명 나무라는 이미지, 즉, 아버지
이십니다.
다만, 나무들로 표현된것이죠.
그리고 더해서요,,,
말씀이라는 영의 첫 아들과(선악과) 신의 영광이라는 아버지는,,(생명나무)
후에 아담에게 주실,, 그 신격화 자질과 신의 영광이라는 자신의 본질성을
이미 다 자신의 영의 재산, 혹은 에너지로,
이 영으로 모두 다 이미 paid-off
한,
완료 상태로의 나무 이미지였다는 사실 입니다.
단지, 태초의 분위기 상, 아담이 이해하기 쉽게,,하나의 나무 모습을 한
형상으로써
아담과 함께 하나가 되어서 같이 있어 준 그 당시의 신의 모습입니다.
아담은 예수와 아버지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자라서 하나로 완료되도록 지불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그때 그때 상황의 이해를 위해서 아무거나로 이미지
표현하십니다.
때로는 보석으로, 때로는 불타는 나무가지로, 때로는 바람으로, 때로는 불타는
산으로,
때로는 번개와 천둥소리로, 때로는 동물 모습으로,,등등,,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은 것들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 소유물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함께 그 당시,,하나가 되어서,,
아담과 인류에게 주실 모든 상속물을 이미 다 자신의 영으로 지불하고는
이 가치를 말씀 안에 입력해서 ,,그 동산 안에 나무 모습으로,, 이 말씀
형태로,,
아담과 이브에게 항상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라는 신의 자질성과 신의 본질성을 합성한 나무 이미지로 오셔서
,, 대속이라는 가치,,를 지불하여 완료된 이 예수 나무,,,
그리고
에덴의 두 나무의 본질성 가치는 서로 유사한 길을 이미 완료한 나무들의
가치다.
이 말은 맞습니다.
그리고 매우 심각한 이론으로, 하지만 엄청난 좋은 소식의
본질로
이 예수와 두 나무의 본질성을 서로 끼워서 마춰 보겠습니다.
한 마디로 대속 주 예수는,, 이미 paid-off 된 대속 나무 이미지가 되기
위해선,
스스로가 그 길을 행위로 가는 방식으로 이 paid-off 완료형을 마무리 했죠.
에덴의 나무도,,이같은 똑같은 본질적 가치를 놓고 볼 때,
그 그림이 서로 맞아 떨어져야한다는 이론 입니다.
예수가 죄로 떨어진 온 인류를 다시 살릴 수있는 대속물이 되기 위해선,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가 온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는,
영원성과 영광이신 아버지는 우선 가치들의 합성을 위해서 예수와 하나가 되어야하고,
이 예수라는 이미지 나무가 자질성으로 형성이 완료 되야하죠.
예수는 ,,,신격화 자질과 신의 유산인 영광을 지니기 위해선,
먼저,, 스스로가 그 자질성을 행하여서 완료된 나무 이미지가 되야한다는 논리
입니다.
이 자질과 영광이 합성으로 완료된 나무에서만 신격화 버젼과 영광이 나옵니다.
즉, 생명은 생명에서만 산출된다라는 법칙입니다.
그리고 육은 육을 낳고 영은 영을 낳는다는 철칙에서만 육이든, 영이든, 생명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일반적 나무를 택해서 동산 중앙에 심고는 그 나무에 자신만의 영생을
주고는
그 나무의 생명을 인간에게도 물려주신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만약, 예수가 아무런 업적도 없이 그냥 죄없는 육체로만 머룰렀다면 말이죠.
그냥 죄 없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 예수를 죄인인 인간에게 믿어라 할수는 없는
노릇아닙니까?
핵심은 바로 생명의 본질성의 근거 입니다.
이 근거 없이는 하나님의 창조는 공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요술 지팡이로 내리치면 없던것도 저절로 생겨나는 그런 마술가 가 절대로
아닙니다.
이 말은 , 하나님은 그냥 일반적 나무와 마찬가지격인 동산 안의 선악과와
생명 나무를 만들어 놓고
그 나무 위에다 법을 쒸우고는 영생과 죽음을 두셨다가 아니라는
말이죠.
어떤 배후에 미리 근본적 paid off 된 에너지가 없이
그냥 말로만 산출되는 창조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만약, 인간이 이런 식으로 산출된 육체와 산 영혼이라면 우리 인간의 가치는 제로 0 입니다.
왜냐구요? 가치가 지불된 적이 없는 상태에서의 산출물이기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육체의 성질인 흙,,,
이 흙도 하나님의 어떤 영에서 지불되어서 산출된 에너지의 드러남 입니다.
제가 딴데로 너무많이 가버렸내요,,,^^
아무튼 법칙이란,,,
이 법칙이 되기 위해서,,먼저, 행위가 마침으로 지불된 완료형 구조입니다.
이 완료형 구조를 가지고 이 공의성과 정당성을 가지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라는 말은,,
이미 하나님 차원에서 다 이루었다 라는 영의 지불이 포함되있는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창조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육의 창조든, 죄로 떨어진 인간의 대속이라는 재창조든,
육의 창조든 영의 창조든지,,, 가치가 이미 지불된 이 법칙의 말씀으로
창조를 다시 드러 내십니다.
그렀다면 아래 성구의 의미를 여러분은 이해하실것이고,,,
더 나아가서 말씀이 왜 살아있는, 영원한 생명을 자체 내에 소유했는지를
받아드릴것입니다.
"그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예수에게 입하니라"
이 영은 이미 하나님 차원에서 지불된, 희생 성격으로 지불되서 완료된 에너지
입니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앞으로 논 할 생명의 법칙으로 작용해서 인간 (이브의) 욕심으로 들어
온
죄와 사망의 법칙을 밝히고 더 나아가 이 어둠의 법칙을 죽일 생명 법칙으로 작용할
겁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 다시 6 번째 날 육체를 대속하시며 7 번째 날을 영으로
완료한다.
아담과 이브가 끌어드린 죄와 사망의 법칙을 파해침
사탄이 아담과 이브의 길로 구상한 법칙이죠.
우선 여기에 아주 커다란 개념의 문 하나를 두고 갑니다.
만약, 아담과 이브가 말이죠,, 행위로 말미암은 죄와 사망이 왔다면 말이죠.
이 법칙이,,,인간의 원래 입력된 hardware 인 육체와 정신과 양심과
심장에서,,
수령과 접수라는 과정으로 말미암아서 자아가 완료되어서 사망이 왔다면
말이죠.,,
아주 정확하고 공의로운 하나의 법칙이 우리 정신에 뚜렷이 꽂혀야 할 것입니다.
바로,,,"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라라" 라는 이 법칙 말입니다.
믿음,,, 뭘 믿는다는 말입니까?
뭘 믿기에 하나님의 창조론에서 법칙 역활을 한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어떤 행위로 이루워진,, 그래서 이 행위가 우리 내면에서
수령과 접수의 과정을 통해서,,
이 창조되는 과정들 안에서 가동되는 어떤 행위로 된 본질적 가치들로
말미암아서,,
결국, 창조로의 완료형, 영원한 생명, 즉, 산다는 말입니까?
지금 저는 두 법칙의 실제성을 파헤치는 중입니다.
바로 죄와 사망으로 완료된 어둠의 법칙과
이 어둠의 법칙을 죽이고, 의와 생명을 주는 빛의 법칙 말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법칙은,,
수령과 접수라는 신의 창조 과정으로만 말마암아 형성되는
두 나무의 본질이신 신의
길입니다.
그리고 이 수령과 접수의 과정은
에덴 동산 상황에서는 두 나무의 과정들로 형성되며,
율법 시대엔 율법 속에 담겨져서 하나의 모형을 갖추었고,
예수 이후 실체가 오셨을 때에는
하나님의 영의 본체에 예수의 육의 순종이라는 신이 지불한 가치에
우리 인간이 심장에 두는 총괄적 믿음이라는 공의로운 선택으로
그 영광과 생명이 완료된다는 법칙입니다.
이미 지불된 신격화 가치들 입니다.
(계속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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