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팩트가 있다면 그 팩트에 담긴 에너지가
바로 그 팩트에 관한 '진실'일 것이라 생각한다.
진실은 에너지 상태이고 또 에너지 상태이기에 방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을 행하는 자다"라는 성경말씀은 같은 맥락으로 이해 가능하다.
'방향'이 존재하기 위해선 그 방향의 기준이 필요한데
세상을 펼치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뜻이
우리의 머리 위에 하늘이 되고 발을 딛는 땅이 되어 우리 생명의 터전이 되게 하셨듯이
그분의 뜻이 우리가 인지하고 판단하기 아주 오래전에
이미 기준이 되어왔다는 생각이다.
그분의 뜻이
사람으로 하여금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지배하게 하는 것이었다.
질투로 미워하고 증오하고 살인하여 복수로 서로의 생명이 위협받게까지 되는 상태가 아닌
용서와 배려와 존중을 통한 화평으로 서로 세워주고 서로 도와주는 가운데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 살게 되는 상태..
바로 그 상태가 "서로 사랑하라"는 그분의 계명의 실제 요지이며 방향이 아닐까 한다.
에너지로 본다면 개인의 안위로 집중된 에너지의 응축이 아닌 나의 이해를 풀어 이웃에게 유익이 돌려지게 하는 상생으로 향하는 에너지의 확산의 방향이
바로 사랑 자체이신 그분의 선하신 뜻인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에게 영원히 사는 길을 펼치신 그 사실의 진실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의 위대한 사랑이란 에너지 자체였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이 믿는 자들에게 그토록 위대한 까닭은
그분의 희생이 이뤄낸 죽음에서 인류를 구원해 내신 에너지의 파워 때문이다.
내가 우리 하나님과 예수님을 늘 사모하는 이유는
십자가 사건 속에 담긴 위대한 사랑의 에너지가 나에게 미쳤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그분의 뜻에 따라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모든 존재들은 모두 나름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며
더 나아가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같은 추상적인 무형의 것까지도
에너지를 가진 상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에너지의 매체로서만 존재 가능하겠지만 ..
그런 연유로 나는 그 모두를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감히 다 파악할 수 없는
어떤 에너지 상태로 존재하고 계시는 분이 아니실까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을 거대한 선한 에너지 '사랑'이라고 이해한다면
하나님을 우리의 관념 안에 가두어 놓고
우리네 관념을 이룬 지식들이 하나님이 되어 스스로 노예가 되어
종교적 관념의 노예로 전락되고마는 그런 악순환의 고리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떤 팩트에 대한 진실은 그 팩트를 일으키게 한 에너지다.."
이 명제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생각이 에너지를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관문이라면
마음은 그 관문 즉 대문을 통해 들어오는 에너지라는 손님을
마당에 머물게 하다가 다시 내 보내버리던지
안방에까지 초대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존재.. 라는 생각이다.
나에게 들어온 '에너지 개념'은
수평적 논리의 관념에서 자유로움을 입을 수 있게 해 주었고
보다 예수 지향적인 생각과 마음을 지키는 힘을 세워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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