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창이 화면에 떴다.
사실 나는 채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타자가 많이 느린 편이고 오타도 자주 발생할 뿐더러
입체적 생각과 감정을 단순한 언어적 표현의 구속의 한계안에서
짧은 시간안에 적절한 표현을 찾아내는 것이 여전히 나에게 무리로 작용해서 그렇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쪽지를 주시면 쪽지로 답장을 드리겠다는 내 뜻을 전했으나..
꼭 하실 말이 있으셨는지 대화를 요구하시기에 긴장하며 채팅을 하게 되었다.
아주 사려깊고 친절하신 분이셔서 대화는 순조로웠으나 ..
마음에 숙제같은 질문이 내 머릿속에 계속 남게 되었다.
"님께서는 넓은 의미의 삼위일체를 인정하십니까?"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나의 대답은 "예.." 였다
그러나 경직된 언어적 표현의 한계속에서의 "예 !"라는 표현이
내뜻과 전혀 달리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은 서로 각각의 위치가 있으신 분이시지만 ..
이루시는 뜻과 사랑에서는 하나이십니다."라고 좀 더 구체적인 대답을 하였다.
내가 "예"라고 대답하기 꺼려했던 이유가 있기에
나는 삼위일체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란 흑백논리식 질문을 받을 때 난 참 난감하다.
그것은 삼위일체에 대한 단순한 교리적 이해로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기반이 되는 가운데 마련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마련..
즉 성경 전반에 걸친 핵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영역이 희미해져버리기 때문이다.
구원을 이루는 구체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과
하늘의 모형이었던 제사제도상에 나타난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역할의 의미와
부활되시어 아버지 우편에 앉으심으로 구원의 모든 길을 완성하신 그 의미가 흐려지기에 ..
난 문자적인 삼위일체 교리에 맞서왔었다.
그러나 앞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형제에게 언급했던 대로
각기 다른 위치에 계시는 분들이시나
우리의 창조주로는 한 역할을 하신 우리의 창주주로서는 같은 하나님이시며
예수께서 부활되시어 하늘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셔서
하늘로부터 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원을 이루어내신 후로
아버지의 뜻과 사랑으로는 온전한 하나가 되신 것을 생각할 때 ..
삼위일체를 그토록 주장하는 일반 개신교의 형제들도 ..
어쩌면 같은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어적 구속의 틀 속에서 서로 다른 뜻을 가진 것처럼
대립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삼위일체로 이해하면 가려지는 중요한 사안들 때문에
그토록 삼위일체를 부정하였듯 ..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형제들이 삼위일체가 아니라는 주장에 의해서
가려지는 그 어떤 중요한 것이 있기에
'삼위일체'라는 용어 자체에 그토록 예민해 하는 것일까? 궁굼해졌다..
사실 '삼위일체'란 용어로 구분짓지 않으면 나는 사실 그들의 믿음과 사고는 동일할 것인데 말이다.
언젠가 개신교 카페중에서 수준이 상당히 있다는 평판을 있던 숭사리카페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나의 논지를 밝혔다가 뭍 돌팔매질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역시도 '삼위일체 부정?' 그거 이단 중에 이단이다..
라는 언어적 한계속에서 가두어진 우리의 현실이었다..
예수는 아버지의 아들이시고 아버지가 어떠한 형태로든 낳으신 피조물이셨으나 ..
우리 인간들과 같은 맥락의 피조물이 아니셨다.
하지만 영으로 창조된 그분은 신의 아들이신 역시 신이셨다..
또
그분은 그분의 아버지와 함께 우리를 지으신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우리 주이시기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되시나
그분의 아버지와 동등되지는 않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게다..
그래서 ..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되신 나의 하나님, 나의 왕, 나의 주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