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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들 /1

혼자쓰는 동화 ..

그는 나더러 교회 예배와 저녁 채플 예배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사생아는 어떻게 해도 도저히 구제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목사의 설교를 듣고 싶으면 들어도 좋지만,

교회 맨 뒤에 입을 다물고 앉아서 절대 예배 보는 데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것은 나로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할아버지와 나는 천당 가는 그 모든 절차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던 터였다.

또 그는 자기가 책상 위에서 본 서류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어린아이를 기르는 데 적합하지 않다,

내가 예의범절이라곤 하나도 배우지 못했을 게 확실하다고 떠들어 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또 할아버지가 감옥에 다녀온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 자신도 거의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노라고 하자,

그는 연필 돌리던 손을 멈추고 고함을 질렀다.

"너가? 뭣 때문에?"

나는 한번 붙잡혀서 교수형을 당할 뻔했지만 다행히 달아났다.

개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교수형을 당했을 거라고 설명했지만,

위스키 제조나 증류기가 있는 곳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그걸 말하게 되면 할아버지와 나는 영영 위스키 장사를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목사는 의자로 돌아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끔찍한 일이 있으리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 아무렴."

그는 두세 번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로서는 끔찍한 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목사가 하도 오랫동안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머리를 계속 흔들어댔기 때문에

나는 그가 울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 모든 일에 대해서 나도 그만큼이나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교수형당할 뻔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 미안했다.

우리는 한동안 이런 모양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울지 말라고 하면서, 어쨌든 나는 눈곱만치도 다치지 않았으며,

그 일에 대해 그 사람들을 원망해본 적도 없다,

다만 그 와중에서 링거가 죽었는데 그건 내 잘못이라고 했다. 

목사가 머리를 흔들더니 이렇게 외쳤다.

"입 닥쳐! 너에게 묻지 않았어!"

그건 그랬다.

그는 서류들을 움켜쥐었다.

"우린 두고 보겠다........ 애도 써보겠고 ............ 그래봤자 네 녀석은 소년원행이 되겠지만"

목사가 책상 위에 작은 종을 울리자 예의 그 여자가 순식간에 방안으로 뛰쳐들어왔다.

계속 문 밖에 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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