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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비가 온다..

툭. 툭.. 투두둑. 투투두두둑 .. 쏴 ...

후덥지근하던 날씨 .. 저도 더 이상 못 버티겠던지

무거움을 다 털어 내고 있다.

 

그간 은근히 품고 있었던 지겨웠던 습도까지 몰아 낼 작정으로

몸을 비틀어 바람까지 내면서 말이다.

 

바람이 분다..

 

머리카락이 날리고 ..

내 겉옷도 날리고 ..

내 얼굴에도 차가운 빗물이 떨어지고 ..

내 눈 앞에 펼쳐진 그다지 높지 않은 바위절벽 아래 검푸른 바닷물도 춤을 춘다..  

 

마구 흔들리는 바닷물에 커다란 포말 하나가 떠오르고

그 안에서 아득한 세계가 펼쳐진다..

 

 

비쩍 말라 키만 훌쩍 큰 열 살 갓 넘은 딸아이 앞에 국수 한 그릇이 놓여있다.

조금 뒤에 ..

국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둔 채 ..

먹지 않은 국수값만 계산하고 

뒷자리에 딸아이를 태우고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자전거 패달을 밟는 젊은 아비가 보인다.. 

 

약한 몸에 동생들을 너무 업어서일까?

어깨죽지에 염증이 생긴 어린 딸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던 길에

배가 고플 것이라 판단한 아비는 장터 국수집에 들러

병원비를 치르고 남은 돈으로 국수 한 그릇을 시켜 딸아이에게 내밀었고 ..

어린 딸은 아침부터 움직이신 자신의 아비를 생각하여  

자기는 전혀 배고프지 않다고 아버지 드시라고 다시 되밀고 ..

그러기를 몇 번 ..

그런 처지가 목이 맨 아비는 ..

그 상황을 오래 끌지 않고 딸을 안고나와 자전거에 태운 것이다.  

 

딸아이는 몸이 약한만큼 마음도 아주 여린 아이였다. 

그러나  자신 위로 뛰어나게 똑똑하고 인물 좋던 두 명의 오빠와 언니를 각각 잃을 때마다

"저승 사자도 무심하시지 매일 저렇게 골골 거리는 아이는 데려가시지 않고 

 어찌 생떼깥은 이 아이를 데려가십니까?"라는 소리를 매 번 들으면서 자라야 했었다. 

 

그 말은 여리디 여린 아이에게 더 할 수 없는 이유없는 죄의식과 무가치한 존재라는 인식이 되어 다가왔다.

그것을 정면으로 거부하기에 그녀는 어렸고 .. 너무 여렸다.

 

집에 밥 해주는 아줌마는 있다 하여도 

밖에서 두 분 모두 열심히 피땀 흘리며 재산을 일구고 있었던 터라..

동생들 업어 재우고 엄마 젖 먹이러 데리고 왔다 갔다 하다보면

오후반 학교 등교 시간을 놓치기가 부지기수였다.

 

언니의 희생을 기본으로 하고.. 

동생들은 드러나게 예뻤고 똑똑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났다.

한 부모 밑에 자란 자매지간이지만 너무도 달랐다.

그 동생들은 양지의 화사한 꽃이었고 ..

죽었던 오빠 언니 다음으로 자랑거리가 되었고 그럴수록 그녀는 스스로 음지의 외로운 꽃이 되었다.

 

아버지의 심기가 편치 않아 집안 분위기 스산한 날..

동생들은 잔소리 들어가면서 학교 준비물과 부풀린 용돈을 타 낼 시간에 

그녀는 차 타고 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미 학교로 걸어 가고 있었다.

 

....

 

세월이 흘러 그녀에겐 딸이 태어났다.

그 딸은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자신이 느낀 서러움은 절대 맛보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서

몸에 흉터조차 하나 남기지 않고 키우려 애를 썼다.  

그녀의 정신세계 안에서.. 

그러나 그녀의 정신세계는 자연적인 호흡이 없었다.

 

외부 세계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쌓은 수 많은 관념들로 무장한 철장같은 감옥이었다.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나 

야성이 강한 그녀의 딸이 그곳에 머무는 것은 고문이었다.

 

제 어미이지만 발톱자국을 남기고 수시로 그 담을 넘어 갔다가는 

얼마되지도 못해 그 담 안으로 기어들어와 ..

제 어미의 상처를 ?아주며 그 옆에서 잠이 들곤 하었다.

 

그녀의 종교심은 가지기 힘들었던 스스로의 자중심을 세워주는 기둥이었기에..

그녀에겐 목숨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아는 정도만큼 다가갔고 할 수 있는 자기 희생은 다 했으며

특히 가족을 위한 것이라면 자기 희생을 마다 않았다.

딸 아이 고 3 때 .. 입학 원서를 내어 놓고 나서였던가 ..

새벽 산기도가 효험이 있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는

밤을 여전히 입고 있는 새벽 네 시 반에

후래쉬를 들고 초와 향을 챙겨 남산을 향하던 그녀였고 ..   

가는 길이 너무도 무서워 오금이 저렸다는 소릴 들은 그녀의 딸은

그런 제 어미가 무서워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자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있고 자신의 어미가 무엇을 하고 있는 줄도 알고 있지만

그 병적인 집착과 열심 옆에 스스로 초라해지며 서 있었다.

 

자신의 근본이 눈 앞에 녹아내리는 초처럼 녹아 내리고 있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마음으로는 정말 징그러워 보기 싫은 광경들이었지만 제 어미 혼자

그곳에 가게 둘 수는 도저히 없었다.

그게 그녀 딸의 거절할 수 없는 양심이었다.

 

 

마구 흔들리는 바닷물 위로 떠오른 커다란 포말 속에

또 다른 포말이 생기더니 함께 터져버렸고 ..

더 이상 그 세계는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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