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형제들과 정규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지 않는 나는 ..
하나님과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형제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블로그 방문을 통해
많은 유익과 기쁜 교제와 격려와 위로를 받곤 한다.
오늘 아침 한 성구가 들어왔다.
"내 이름을 위하여 네 아버지, 어머니, 형제, 누이들을 떠나라"라는 말씀이었다.
그 떠남이 어찌 눈에 보이는 떠남을 말하겠는가..
그들에게서 받는 직. 간접적인 정서생활에서의 감정적 매임의 고리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의 자유로운 독립적이고도 자유로운 영혼이 되라는 의미의 말씀일 것이었다.
어딘가에 감정적으로 매인 자들은 이미 포로이며
그 포로들을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주인이라는 귀납적 사고방식을 통해보면
그 주인은 분명 보이지 않는 우리들의 우상이 될 것이었다.
나에게는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우상들이 존재하는지 ..
또 그 우상들에게 매인 감정적인 족쇄에 의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과 하나되신 예수의 초대에 응할 수 없는 몸이 되고 있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어릴적부터 나를 봐 온 사람들은 ..
내가 약해 보여도 강인하며,
자기 고집이 없는듯 해도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절대 굽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내 자아가 강하며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는 절대 양보가 없다는 것을
가까이 지내면서 그들도 이미 알게 사실이었다.
한 번씩 ..
난 내 인생에 후회 되는 일은 없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것은 내 판단이 늘 옳았고 항상 의로웠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현실과 내 감정 사이에서 내가 선택한 행동은
그 당시 감정과 현실에서 조율한 최대한의 선택이고 그것이 나의 능력의 한계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
현실적으로 지혜롭지는 못했을 수는 있겠지만 ..
그 당시 내가 지닌 감정에 최대한 정직하였고 충실한 것이었기에
적어도 내 인생에는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자기 주장이 없는 것같으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나의 주장을 품고 있고
드러난 주장이 없는 부분에선 내가 판단 할 수 없는 한계라며 백기를 드는 나는 ..
어쩌면 내 주장이라는 색깔에 내 인생을 거는 것과 같이 살아왔었다.
이런 나의 삶의 태도가 지금까지는 나로 내 인생에 대해서
결과야 어찌 되었든 나 스스로 어떤 후회를 남기지 않아 좋을 수는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부분에서는
내 삶의 중심이 되었던 그 강한 자아가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타고난 종교심이 아주 좋은 반면 ..
하와의 후손의 피의 색깔이 아주 진한 나는 ..
요즈음 큰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요즈음에서야 내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정말 옳았음을 느낀다.
"지영이 쟤는 약하지만 질긴 데가 있어.
강한 아이야.. 그게 걱정스러워.."
그래서 내 주장을 말하기 보다 남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도록 강요하셨고..
나의 불편보다는 남의 불편에 더 민감하도록 키우셨지만 ..
내 속에 있는 강한 자아의 생명력은 그 안에서도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너무나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었다.
민들레처럼 강한 나의 생명력은 ..
나로 하여금 이 땅에서의 내 이름을 잊고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따라 ..그저 자연의 거름이 되기를 거부하며 버티고 있었다.
민들레처럼 강한 나의 생명력은 ..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 땅의 하나를 뿌리로 움켜잡고서 울면서도 풀지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고 ..마지막 남은 하와의 손끝에 들어간 본능의 힘이었다.
그 본능의 힘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이셨던 사랑을 믿을 때
그 본능으로 들어간 손의 힘은 풀릴 것이며 ..
그리고 나서야 더 이상 하와의 후손으로서의 생명의 의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으로의 의미로
그분이 가신 희생의 길을 따라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었다.
나의 손에 힘이 다 풀려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가장 깊은 곳에는 내 생명력의 근본이 되는 부분에서는
여전히 하와의 손에 들어간 그 힘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좌절했으나..그 좌절은 내 안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기회였었다.
그까지가 나의 한계였다.
나는 주저않아 울고 있었고..
그까지가 나의 한계였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 내 주님께서는 ..
울면서도 손을 내밀고 있는 내 손을 기꺼이 잡아 일으켜 주셨다.
내 주님께서는 곧 당신의 사랑으로 안심시키시고 용기를 주셔서
내 한계를 내 스스로 무너뜨리고 나아가게 하시고 ..
이 땅에 둔 나의 이기심으로 한계 지어진 모든 미련을 떠나 보내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 그 떠나보낸 빈 자리에 영원한 사랑을 채워주셔서 ..
이 땅에 사랑의 표현으로 우뚝 서게 하실 것이다.
이 땅에서 소망하던 사랑의 애착을 떠나보냄은
앞으로 더 큰 사랑들을 소유하게 할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는 단계일 것이다..
비어진 만큼 더 많은 사랑을 .. 울면서 버린 것보다 더 진실된 사랑들을 .. 소유하여
이 땅에서 불완전하던 모든 사랑들을 견고하게 하고 ..
응축되어 작아지고 불길이 약해지던 사랑을 반대로 더 확대하고
더 강한 불로 키우며 정결하게 할 것이었다.
난 예수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신
내 하나님의 사랑 그 이상의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것이 내 믿음의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