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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나의 일상

탱자

내가 사는 곳이 좀 시골스러워서 우리 시장은 시골 장터 분위기가 조금 있다.

오늘 내 눈에 시골 할머니들이 내어 놓은 노란 탱자가 들어왔다.

... 

 

우리 학교 교문 앞, 찬바람이 돌던 이 맘 때쯤이면

할머니들이 작은 소쿠리에 탁구공같은 노란 탱자를 담아 놓고 계셨다. 

 

한 소쿠리에 담긴 열댓 개의 탱자 가격은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 한 그릇의 값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예쁜 노란 색의 작은 열매에 어찌 그리 향긋한 냄새가 날 수 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책가방을 들지 않은 다른 손에 탱자를 쥐고서 연신 코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은 노란 은행나무 잎들로 가을이 한창이던 운치있는 길이라

어린아이와 같은 중학교 일 학년 아이의 감정으로도 가슴이 벅차 올랐었다.

 

요즘에야 자연 방향제들도 각기 취향대로 고를 수 있는 지금과 달리

특별히 좋은 향을 집에 두는 일이란 없었던 시절이라

소쿠리에 담아 선반에 두어 우리집 전체가 탱자향으로 향긋해지면 

이 향기가 나로 인한 것이라는 뿌듯함에 놀랍기까지 하였다.

 

그 특별한 기분은 매년 그 맘때 꼭 탱자를 사들고 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탱자를 볼 수 없게 된 날부터는,

찬바람 부는 초가을 날씨, 그때 우리 학교 교문앞, 한 번씩 가던 분식집,

은행나무 줄지어 있던 정든 길, 그 시절 엄마가 자주 해 주시던 찌게와 반찬들이

탱자와 함께 기억에 저장되었다.

 

오늘 시장에서 사온 탱자는 예전에 내가 사들고 왔던 탱자만큼 진노랑의 환상적인 색도 나지 않고

깔끔하지도 않을 뿐더러 놀랍기까지 하던 향긋하던 진한 향기도 못한 것 같다.

 

내 코가 순수함을 잃어버렸나? 내 눈이 교만해져서인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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