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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가장 오래된 궁굼증

나에게 있어 가장 조금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오랜 궁굼증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데리러 다시 오겠다"는 말씀이다. 

 

"속히 오겠다" 

"너희 중에 몇몇은 살아서 내가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시간들로부터 2000년 이상의 많은 시간 후에나 있을 일들을

그렇게 표현하실 수 없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그 성구를 처음 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없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 성구를 변화산에서 몇몇 제자들에게만 보여주신 우리 주님의 모습으로

이해를 하는 것은 억지 이해라고 나는 느끼고 있다.

 

너희가 거할 장소를 마련하고 너희를 데리러 다시 오시겠다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아버지의 마련으로 하나님 우편의 자리에 오르게 되시어

예수를 맏형으로 하는 하늘 가족의 통로를 만드신 후에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데리러 오신다 하심으로 이해하는 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가 다시 오겠다"라는 말씀은

개인의 생애중에게 오시는 예수님으로 이해하는 것이 

성서의 말씀의 흐름상 더 옳은 이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비유처럼,

씨가 주님의 일꾼들에 의해 낮에  알곡의 씨가 뿌려졌고 

시간이 흘러 밤이 되어 악한 자에 의해서 알곡을 덮을 가라지 씨가 부려졌다.

선한 주인의 세심한 배려 속에 하나의 알곡조차 희생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것이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는 추수의 시기까지 되었을 때의 시간의 공간이 주인에 의하여 허락된 것이지 않을까?

그 시간의 공간이 바로 2000년이 넘는 긴 시간이 된 것은 아닐까?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당신의 자녀들인 사도들에 의해서 복음의 씨가 뿌려졌고

추수할 때가 이르는 어느 때. 바로 하나님의 시간이 도래한 때,

당신께서 친히 자녀로 삼으신 이들의 추수꾼들에 의해서 알곡을 추수하게 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 아닐까?

 

즉 예수님의 개인에게 오시는 오심은 일세기 때 사도들과 마지막 때 추수의 일꾼들 에게 오시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날 예수님께서 만만천사와 함께 구름타고 오신다는 성구가 나에게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데리러 다시 오겠다는 말씀과는 다른 맥락의 다시 오심으로 느껴진다.  

 

어떠한 선입견이나 주입된 지식의 힘을 빼고, 성서라는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으로 읽으면

그 말씀은 2000여년이 넘도록 오시지 않고 있는 상황과는 별개의 다른 방향의 말씀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난 그 어떠한 조직에서의  설명으로도 그 의문을 덮을 수 없었기에 지금까지 그 궁굼증을 뜨겁게 가지고 있다.

난파되어 심해에 빠져 있으나 그 모습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있는 뜨고 있는 인형의 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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