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가졌던 의문이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폭과 깊이, 질과 양에 관한 것이었다.
타고 난 성향과 환경에 의해 그것이 어느 정도 정해진다면,
그 또한 사랑의 많고 적음을 가진 사람들을 탓해서는 않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랑에 아주 인색하거나, 사랑하는 방법을 거의 모르는 이들을 만나 마음이 상할 때에는,
그들이 커왔던 환경이 그들을 그리 만들었으리라 생각하며 그 상한 마음을 덮어 왔다.
그 생각으로 덮고 덮고 하는데도 완전한 해결이 되지 않고 늘 현재 진행형이 되는 그 현실이
때로는 너무 힘들었었다.
그래서 그 사실에 대해서 또 고민을 시작했고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을 덮어 왔던 그 마음 역시 상대를 향한 진정한 이해와 사랑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
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억지 방편의 이해였을 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나 자신이 자부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정직하게 살펴보자는 마음의 소리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놀라웠던 사실은 나 역시 타고난 성향과 환경에 의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단지, 나의 바탕이 되었던 환경이 남을 배려하는 쪽으로 많이 기울여져 있다는 것이었다.
눈 내리는 겨울 날 이른 아침이면, 지나가는 사람 미끄러진다고 다급하게 우리집 주변으로 눈을 쓸고 연탄재를 뿌리시는 아버지의 이웃을 위한 배려를 보고 자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남에게 어떠한 방향에서든지 불편함을 주는 것은 아주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을
오로지 나와 무관하게 부모님으로부터 받으면서 자라왔을 뿐이었다.
그 환경에 의해 몸에 배인 것들이 사랑을 가진 것인냥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내가 하려는 사랑에 근거한 어떤 행동들도 어쩌면 나의 깊은 만족과 뿌듯함을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미치었다. 사람에게는 아니겠지만 하나님 앞에 옳은 일일 것이라는 그 사실이 주인이 되어서 말이다.
그 뿐만인가,
나에게 잘못한 것을 미안해 하여 그냥 용서하며 덮어 주었던 이가, 갑자기 아무 일 없었던듯 당당해지면 새로 기분 나빠져서, 피해를 입었지만 용서 해주었던 그 사실이 새로 억울해지는
그런 수준을 넘지 못하는 나의 한계가 보였다.
나의 속모습을 보면서 내가 속으로 판단하는 그 모든 것이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은 환경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 드러나지 않는 내면에는,
사람의 한계를 결코 넘을 수 없는 그런 얇팍한 사랑이, 빙산처럼 나의 마음의 바다 속 수면 아래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랑에 대해서 고민하여 왔다.
진정한 사랑은, 나의 마음의 그릇이 작아서 영원히 못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이냐고...
사랑의 동기로 하였지만 결국엔 자기 의 뿐이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증명될 때의 허무감이 몰려올 때,
이렇게 사는 것은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고...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런 것이라면 사람의 인생 자체가 너무 초라한 인생들이지 않겠느냐고...
그렇다고 흉내내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고 흉내조차 내고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안 될 일이라고...
그 사랑에 대한 고민은,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에서야 답을 얻을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이란, 우리가 원한다고, 노력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인간을 사랑하여 주셔서 당신을 통해,
당신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로, 당신의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만들어 주신 예수님과,
당신에게 도전하여서 스스로 죽음의 길로 나아가게 된 우리를 당신의 독생자를 희생하셔서까지 우리를 살게 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당신의 옆자리까지 허락하신 그 하나님과 예수님의 그 온전한 사랑 앞에서
우리가 온전히 죽어 그 분들에 의해서 새로 태어나는 거듭남에서만이,
내가 그토록 원했던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진정한 사랑을 가지는 것이 가능할 것이었다.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에 의해서 태어나게 될 빛의 자녀들.
그 자녀들이 그분들을 닮아 자연스럽게 소유할 수 있는 영의 열매가 바로 그 진정한 사랑일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그 사랑은,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성품을 그대로 소유하신 우리 주이신 예수님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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