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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순전한 하나님 사랑에는 자기 열심 안에 있는 자기 의가 없어야 한다.

자기 열심 아래 자기 의로 뭉친 자기 사랑으로,

하나님 사랑을 이루어 내려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

인간적인 서글픔으로 무거운 슬픔을 느끼게 된다.

 

자기 열심 속에 빳빳하게 살아있는 자기 의로 뭉친 자기사랑은,  인위적으로 만든 향기같아서

과하면 도리어 머리 아픈 역한 냄새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주변에서 아니 내 안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기에,

하나님을 섬긴다며 하는 일들, 자기 열심속 자기 성취감으로 변질된 이유에 대해서 계속

깊은  고민을 해왔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서글픈 깊은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언젠가, 어떤 분의 글에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글을 남긴 적이 있었다.

요즈음 난 솔직히 그 때 쓴 글에대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여호와의 증인식 치우친 거짓 종교에 대한 혐오감과 성서적 바른 이해에서 벗어난 성령부분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작용하지 않았다 할 수 없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믿음 안에서 변화와 성장은 당연한 것이며 더 자연스운 것일 수 있기에

기존의 성서 이해의 틀의 변화를 주지 않으려는 노력 자체가 더 위험한 것이라 생각한다.

    

왜곡된 성서 인식과 자기 열심이 주인이 되어버린 일 때문에

자신의 선한 의도가 변질되어버리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대체 그러한 서글픈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 방법은 결국, 

무엇보다 스스로의 마음을 정직하게 살피려는, 정직한 마음의 눈을 가지는 것이었다.

 

나의 열심이 내 의에의한, 나의 노력에 불과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정말 아팠다.

그래서, 같은 길을 가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와같은 냄새를 맡게 될 때

정말 가슴아픈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하는 그들의 진짜 소망을 알기에, 

때로는 건방져 보일지 모르는 나의 견해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야기 해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벌거벗었다고 말해 줄 수 있었던 것이 그를 진정 사랑이라 스스로 확신하면서... 

그러나 그것을 온전히 인정하기에는 억울함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그 열심은 자기 스스로 희생을 동반한 것이었기에 더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문제 만큼은 

자기 의에 의지하지 않는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보여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미움이란 어울리지 않는 것이며,

관대함을 놓치는 것은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 말고도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엔 존재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계시는 내가 모를 많은 사람이 있을 것에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갖는 자세와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보다 성령으로 더 온전케 많이 알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과

 

나는 하나님의 사람들 중의 극히 미천한 사람일 수 있다는 가난한 마음과   

 

오늘 알고 있는 지식도 내일 모래 알게될 깨달음이 오게되면 초라하기 그지 없는 초등적인 지식에 머물고 있었음을 미리 예축할 수 있는 지혜로움과

 

나의 열심 안에 순전한 하나님의 사랑 이외에도 나의 열심속 자기 의로 뭉친 완고함은 없는지 살피려는 정직한 자세를 가지고,

 

어느 순간에도 위의 생각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이제까지 걷던 발걸음을 바로 돌리는 사람이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자기 의와는 무관하게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라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