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의 내 도화지를 많이 아꼈다.
그 도화지는 내가 원하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넣을 내 인생이었다.
가장 먼저 그리기를 아꼈던 것은 그 당시 관심이 많았던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고
다음은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그림이었다.
고1때인가 어머니가 아주 존경하시는 노스님이
서울 큰 절에 계시다가 온양의 어느 절 주지스님으로 가시게 되었다.
지금 기억엔 몸이 좀 좋지 않으셔서 휴양차 가셨던 것 같다.
그 노스님과는 이미 아주 오랜 구면이어서 온양으로 그분을 뵈러 가는 길은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하룻 밤을 지내면서 난 그 노스님과 밤 늦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님. 부처님이 세상을 만드셨습니까?"
물론 몰라서 묻는 질문은 아니었다.
"뭐를 믿는 것이 불교인가요?"
"해탈이 되어 부처의 경지까지 가는 과정이 불교라 할 수 있단다.
복을 빌어 무엇인가를 얻어낸다는 마음은 불교의 기본 취지와는 다른 것이지."
"그럼 이곳은 제가 찾는 곳은 아니네요."
"저는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을 찾아가고 있거든요."
"너는 이담에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니?"
"윤회라는 것이 만일 있다면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이 제 바램이 될 것이예요."
"허허. 고달픈 인생을 많이 산 어른같은 대답이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대화 내용이다.
그 다음 날 노스님은 어머니를 불러 놓고
"보살님 따님은 불가와 인연이 없는 아이니 공연히 애쓰지 마세요.
그 아이가 하려는대로 그냥 두십시오."라 말씀하셨다 한다.
그 말씀 듣기전까지는 성경을 집에 두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 당시, 성경을 늘 읽지는 않았지만 소중한 보물 간직하듯 책상 한 켠에 두고
다른 부분이 아닌 요한 계시록 1장을 두려움 반 기대 반 조심스럽게 읽고 덮어두곤 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고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 말이 아주 신비하면서도 두렵기도 하면서도 희망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이후로 나의 종교에 관해 별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지만,
집에 종교가 나뉘면 집이 시끄럽다는
예전 어머니가 주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 나 역시 예전과 별 다를 바 없이 살았다.
주로 하늘을 보며 기도하고 다녔다.
"제가 종교를 선택하게 되면 하나님 섬기기를 선택할 것이니 그때까지 보호해 주세요."라고...
난 내 마음의 도화지에 정말 멋진 하나님과 관련된 그림을 그려 넣고 싶었다.
그 그림 그릴 도화지를 난 매일 가지고 다니면서도 아름다운 구상만 했지
연필로도 스케치하지도 않았다.
이담에 정말 깨끗하고 웅장한 하나님의 그림을 그릴 때를 위해 아껴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인 정말 생각만해도 눈이 반짝해질만한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정말로 깨끗하고 예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난 참 유난을 많이 떨었다.
관심 없는 아이가 쳐다보는 것도 기분 나빠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모르게 얼굴을 손으로 자꾸 비며 닦았다.
어릴적 내가 싫은 사람이 내 얼굴만 봐도 울었을 때처럼...
그것은 내가 잘났다 생각해서는 전혀 아니었고
내 도화지에 나 모르게 얼룩이 생길 것 같은 조바심이었다.
미팅 때 만났던 아이를 두번 이상 잘 만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잘 모르면서 내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넣게 될까봐 싫었다.
철이 들어갈 무렵, 나에게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절실한 애착이 바로 이 두 가지였다.
그래서 남들은 재밌는 그들 나름대로의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난 돌돌말아 놓고 때 묻을까봐 유난을 떨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의미 없는 과민한 어린아이의 행동같은 것이지만 그 때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 유별남은 아마도 내 자신이 대단하다라는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고
인생을 정말 멋지게 살고픈 아이의 삶에 대한 애착이었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간직한 그 아이의 힘들어간 작은 주먹과 같은 것이었다.
난 본디 삶의 애착이 많은 아이였다.
아무리 그 도화지를 아끼려해도 어느 때가 되니 진짜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그림과 내 사랑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려가는 과정에 있다.
하나님에 대한 그림은 그리다 덧칠하고 덧칠 하면서 그림 버렸나 싶었지만 세상을 좀 더 살다보니
인생에서 하나님의 그림과 사랑에 대한 그림은 유화처럼 붓터치가 많이 갈수록 강렬하고 사실적인 힘있는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그림은 계속되고 있다.
내 마지막 세상 사는 날까지 내 어릴적 그 어떤 희생을 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그 내일의 희망을 간직한, 내 손에 힘들어간 내 인생의 애착 두 가지는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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