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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믿음

예전부터 참 궁굼하던 것이 '믿음'이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중보를 믿는다는 것은

그 분들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듣고 가슴에 새겨

그 감사함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하기에 이 조직, 저 조직 다니면서도 그 조직에서 새로 알게된 것이 진리라며

새로 알게된 진리를 어떻게 하면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줄까 하여 애를 쓴 것이다.

새로 알게 된 것을 번복하던 것도 몇 차례가 되니

 내 이웃들에게 이야기 해 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고

그것도 여러 번 하면서 내 스스로도 그 회의감에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여증 조직을 떠나면서 그 회의감은 극을 달했다.

이제껏 어떤 조직보다도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엔, 한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의 형태의 믿음일 것이라는 내면적인 기대와 확신이 있었기에

그것은 어쩌면 한 조직 안에서야 가능한 것이기에 난 항상 어떤 조직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돕는자인 보혜사를 보내 주신다 약속하셨는데...

정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교파에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다른 믿음의 표현들을 내니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무관심하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까지 하였다. 

한 하나님 안에, 그리고 한 성령 안에 왜 이해가 다른 믿음들이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늘 풀지 못하는 숙제가 되어 나중엔 그 숙제가 있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 후서를 읽으면서 새로운 면이 두드러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베드로 후서 1장 1절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와 같이 이 소중한 믿음을 받은 여러분에게... 

   우리와 같이 소중한 믿음을 받은 여러분에게...

  

 

   갈라디아서 3장 23절

   믿음의 때가 오기 전에는 우리가 죄의 포로가 되어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에 갇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믿음은 자신이 본 것, 들을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여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상태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이다.

그래야만 "우리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라는 성구가 맞아 떨어지는 것일테니까. 

성서에서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바른 진실, 성서의 바른 이해, 1세기 때의 복음의 회복은

분명코 한 가지 형태의 믿음일 것이다.

"그 믿음으로는 성경의 어떠한 구절과도 마찰 없이 조화를 이룰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의 그 큰 크기를 다 알게 해주어

그 분의 사랑안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우리 동료 형제들은

스스로 그 사랑안에 노예되기를 소망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우리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란 성구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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