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눈을 붙였다가 눈을 뜨니 밖에 어둠이 내려있다.
어릴 적 해질 녘
잠이 들었다 어스름한 밤이 올 적에 잠이 깨면 항상 마음이 깨끗해지면서 마음이 슬펐다.
마음이 깨끗해지니 아마 허전해서 그런 기분이 들었나보다.
그때 불이 밝게 켜진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계신 어머니를 보면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부엌과 연결된 작은 문을 열고, 팔을 베고 누워 어머니의 움직임을 보는 것은 참 행복했었고
그렇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딸을 보는 내 어머니도 행복해 하셨던 것 같다.
"일어났네!"
"네 밥에 고구마 많이 넣어 줘?"
"응"
"우리 아버지 밥에도..."
"너나 좋아하지 네 아버지 밥에 그런 것 넣는 것 싫어하셔"
그 당시 난 밥에 들어가 있는 고구마를 참 좋아했었다.
그땐 우리 집이 많이 어려워서 밥에 고구마를 넣어주시는 것인지 몰랐다.
우리 아버지 집안 일로, 병원을 그만 두시고 서울로 휑하니 올라가셨고
외가의 반대도 무릅쓰고 우리 삼남매를 데리고 돈 없이 무작정 서울로 따라 올라오셨던 것이다.
갑작스런 집의 변화에, 고생이라고는 모르셨던 어머니는 난리를 맞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집안 사정이 그러할 때 즈음의 일이었으니 아마도 양식을 늘려 먹을 요량이셨던 것 같다.
어른들은 고달프셨겠지만
그런 사정 알리 없는 나에겐 그때의 따뜻하고 평화로운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지금에도 해질녘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해질녘 유난히 마음이 착해지는 것도 그런 기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가족들이 함께 걸으면서 일어나는 흙먼지가 우리 식구들을 비켜갈 리 없었지만
흙먼지 바람 맞은 기억보다 함께 걸으면서 느꼈던 훈훈한 정이 얽힌 기억들이 더 생생하다.
옳은 것을 가르치는 것에 앞서 우리의 마음 서늘 할 틈이 없이 어루만져주고 따뜻하게 품어주셨던
부모님이 살면 살수록 감사하다.
병아리처럼 집이란 울타리가 세상의 전부였으니 온 식구들이 안방에 몰려있었던 그 때가 좋았다.
좀 커서는 가족 모두 말 수가 별로 없어
각기 제 방에서 제 할 일 한다고 조용하던 집으로 변해버렸으니
가족들이 안방에 모이던 그 때가 우리 가족의 황금기이지 않았나 싶다.
넘어져 피가나서 울고 들어왔을 때,
다친 것에 화가 나셔서
" 조심하지. 왜 맨날 뛰어다니니 다니길. 선머슴처럼...
이리와 봐, 어머 이것 좀 봐. 가만있어. 약 바르게 ..."
" 정암아! ~"
"네 동생 꽉 좀 잡고 있어 봐"
"너 또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다 다친데 또 엎어지면 너 큰일 나"
"덜렁거리지 말고 좀 얌전히 다녀! 알았어?"
그리고는 상처에 비해 붕대를 더 많이 감고서는, 특혜를 누렸다.
모든 심부름에서 제외되었고 못 움직이게 이불로 칭칭 감겨 눕혀 있으면서도 맛난 것도 손 앞에 두어졌고...
지금 생각해도 그런 시간들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기본 뿌리가 되었고
인생에서 무엇이 진짜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마음의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평소 잔심부름은 모두 내차지였는데 그때부터는 오빠의 몫이었다.
별로 아픈 것 같지도 않은데 뺀질뺀질 웃고 누워있는 동생이 얄미워 몇 번씩 째려보며 쥐어박는 신늉을 하였지만 그 또한 우리들만의 재미난 놀이의 일부였다.
너무도 눈에 익은 얼굴들, 목소리들, 몸짓들
나에게 생명이 주어지고 처음으로 만나 인생의 바탕이 되어주었던 소중한 사람들
우리 아버지 빼고는 모두 마음만 먹으면 볼 수있고 손이라도 만져볼 수 있다.
감사하게도...
나의 뿌리와 같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 감사하다.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서 생기는 흙먼지는 어쩔 수 없겠지만
걸어가는 마음 속은 썰렁하지 않고 우리 어렸을 적처럼 늘 따뜻하였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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