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허가서를 받았었다. 인도에서였다.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입학 원서를 보낸지 거의 반년이 지나서였다.
내 손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봉투 끝자락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안스러울 정도로 초라한 그 봉투 안에 글자들이 쏟아지지 않고 담겨 온 것만도 기적 같았다.
사상과 철학책을 즐겨 보던 나에게
인도는 우리네 시간과는 다른 시간의 지배를 받는 것 같은 신비한 나라였다.
될 것도 없고 굳이 안될 것도 없는...자유로운 영혼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그곳.
무질서와 사기가 흔하게 있으면서 사람의 진실의 가면을 잠깐 빌려 웃어 보이는 모습이 밉지 않아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또 그렇기에 자유스런 그 신비한 나라로 가고 싶었다.
수학적 과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유혹이 되질 않겠지만
사람들에 대해선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나 같은 사람에겐 매혹적인 나라였다.
고의적인 나쁜 의도만 없다면 적당한 거짓말도 상대방이 웃으면 같이 웃어줄 수 있는 여유 정도는 가진 나에겐 견딜만한 나라이고
온순한 아이. 예의 바른 아이. 나의 자연스런 감정과 조화시킨 남들과의 평화보다는 먼저 주변에 불편함을 주지 않아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아이로 길들여진 나는 그곳에서 거추장스런 내 틀을 벗어 던지고 내 안의 숨통을 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주장, 나의 색깔이 약한듯 연한듯해도 내면에는 질긴 아이, 강한 아이라는 생각을 우리 부모님께서가지고 계셨고 그점을 늘 걱정하셨기에 더더욱 세상에서 요구되는 내 밖의 틀을 더 강요하셨는지 모른다.
난 그 시절 내 안의 나와 겉으로 보이는 나와의 괴리 속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었는데 그 방향이
심리학과 동양철학과 사상 쪽이었다.
성서를 가까이 하던 때였지만 그 당시 생각으로는 성서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뿌리로 하여 모든 철학과 사상 종교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그 고리를 찾아보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었다.
그 열망을 이루려면 역사와 종교와 철학과 제일 중요한 성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흉내라도 낼 것이었으니 모든 면에서 부족한 나에겐 그냥 공상 속의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그땐 정말 사춘기적 감성들로 세상이 보일 때이니 현실을 무시한 생각의 온갖 여유와 호사, 사치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 그 나라는 머리에 든 것 없이 입만 살아있는 게으른 사람들의 천국"이라 하셨든가 ^^
뭐든지 정확한 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하셨던 우리 아버지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나라였다.
우리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로 그 가고 싶던 나라로 가지는 못하고 대학 졸업을 하고 필리핀에서 치대를 다니는 친구 따라 별로 가고 싶지 않던 필리핀으로 가게 되었다. 많이 아쉬워 하면서...
그러나, 어쩌면
생각이 넘쳐나는 그곳을 가지 않았기에 내가 지금의 무난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갈 수도 있었으나 가지 않은 길이기에 인도는 늘 내 마음이 가는 나라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자기 색을 가지지 않아 주변이 자기 마음에 담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와 함께 그곳으로 마음의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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