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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바닥을 도리어 발판삼아 ..

내 방식의 기도와 내 방식의 찬양조차 멈춘 시간..

 

꼭 죽어버린 것같은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심장까지 멈춘 상태는 아니었다.

내 심장은 도리어 여러개의 눈이 되어 유령처럼 웃고 울고 말하는 자신과 그 주변을 무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 여러개의 눈은, 마지막 순간에 까지 변할 수 없는 나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나의 존재감 앞에서,

'무엇이 죄인지' '왜 모든 사람이 그 죄에 속한 죄인인지'에 대한 답을 묵묵히 찿고 있었다.

 

'죽음에서 삼일만에 영으로 부활하시어 당신의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신 우리 주님만이

진정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수 있다는 재확인의 시간이었다..  

 

시간이란..  에너지로 채워질 공간이 생겨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근원이자 바탕 ...

그래서 우리 인간들이 인식할 수 있는 시간, 그 너머에 존재 가능한 모든 시간들

또 각각 그 시간에서 비롯된 에너지의 공간들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의 

충분한 인식을 통한 시각으로서만이,

우리가 우리 인생들을 둘러싸고 있는 원죄 이후의 한시적이고 가변적인 불안정한 현실들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이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된, 믿음 안에서 인간적으로 참 존경하는 분들이 계시다.

한 분은 예수님께서 이땅에 계실 때 가장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을 떠올리게 하는

참 신실하신 카톨릭 교인이시고 다른 한 분은 사진을 예술의 지평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소유하신 한국 기독교 가장 보수 정통교회에 속하고 계신 분이시고,

또다른 한 분은 비록 교회에 속하고 계신 것은 아니나 어떤 교인들보다 하나님 앞에 신실한 모습으로

삶 자체로 사랑이 뭔지를 분명히 보여주시는 분이시다.    

 

50을 넘긴 나이다보니, 글을 읽어도 행간에 담겨있는 필자의 마음까지 저절로 읽혀진다.

인생 전부를 믿음 안에서 생활해 오신 그분들의 나를 향한 믿음에 속한 사랑의 우려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인간적 마음으로 그 마음들이 얼마나 살갑게 또 고맙게 느끼고 있는지 그분들은 아마 모르실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현실에 속한 믿음의 땅에서 나는 늘 고아상태였기에

가난한 나에게 그마음들은 더욱 귀하고도 감사하게 와닿았다.

 

하지만, 큰오라버니같으신 그분들의 한결같으신 염려를 뒤로하고 난 계속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은 아직 완료가 아닌 진행형 상태이기 때문이다.

난 내가 살아있는 날 중에 예언의 작은 부분이라도 성취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어

적어도 그일에 산 증인이 될 수 있었으면 더없이 좋겠다.

그건 절대 욕심이 아니라 생각한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내가 그리 소중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다만 확인하고 싶어서 이니까.

피조물로서 나에겐 그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더더욱 아직은 믿는자와 믿지 않는자 모두에게 밝히 드러나야할,

우리들의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를 기초로한 그분의 거룩하신 사랑과 능력 그리고 자비의 실체의 규모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가 아닌가?  

 

만일 주님으로부터 큰 자비와 은혜를 입어

그분으로부터 비롯된 귀한 영적 소산들을 소유하게 된다면  

나를 위해 마음을 써주신 그 귀한 마음들에 감사의 보답으로

그 귀한 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