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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들 /담아온 글 ...

[스크랩] 2012년 01월13일 구약을 읽을 때는 반드시 그리스도로 부터 읽고 이해 한다

출처 : 고동엽 개인 블러그
글쓴이 : 고동엽 블러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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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이 율법을 생활의 법으로 하고 사는 유대교의 책같이 보일지라도 바로 구약 전체가 다 그리스도를 목표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책으로 보고 있다. 구약은 그 자체로는 완결되지 않고, 늘 쉼이 없고, 늘 불안해서 참 안식이 없기때문에 그리스도를 목표로 늘 나아가고, 그리스도를 향해 달리고 결국은 그리스도에게 와서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다 성취되는걸로 본다. 그래서 구약을 읽을 때는 반드시 그리스도로 부터 읽고 이해 한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하나님이 바로 그리스도에게서 구원을 이루셨고 바로 그 동일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구원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의를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주의는 문자적인것을 이해했다 그래서 바울과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을 인용해서 신약을 증명할 때 글자대로가 아니고 바로 구약의 약속이 구약의 문맥을 떠나서 신약에서 성취되므로 그 문맥이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신약과 구약이 한 성경으로 통일되어 있고 완전히 하나로 믿으니까 별 문제가 없었지만, 초대교회에에서는 4복음서나, 바울과 기타 다른 서신들을 읽는 그리스도 성도들에게는 구약이 어떻게 교회책이 되느냐 하는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던 것이다. 구약이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의 책이 아니고 바로 율법을 지키는 그들을 지나서 교회의 책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무단히 노력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이 온후에는 믿음으로 사는데 이것은 전혀 율법의 지배를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루터는 이 복음의 도를 이해할 때에 아직도 율법 아래 사람을 가두어 두었다가 거기서 해방시켜 복음으로 자유롭게 해야 진정한 구원으로 이루어지는 줄 알고 아직도 복음과 율법이 생명으로 마주 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개신교로 하여금 바울의 복음의 이해를 잘못하게 한 근원이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 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정죄함이 없이 생명의 성령의 법안에서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롬8:2). 예수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기 때문에 십자가 이후엔 구원의 길로서 율법의 기능은 모두가 종결 되었다고 볼수 있다(요19:30). 히브리서의 가르침에서도 구약의 피제사는 죄를 절대 깨끗케 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제사에 비하면 그림자와 예표뿐이고 그리스도의 제사는 실체요, 그 원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히7:19에도 '율법은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에 이에 더 좋은 소망으로 우리가 하나님게 가까이 나아간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로 보았고 따라서 히브리서 저자는 율법의 기능의 종결에 대하여 바울보다 더 과격하게 말하고 있다. 바울의 이해는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선포할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예수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들에게만 뿐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율법은 지킬수 없으니까 율법을 지킬 필요없이 예수만 믿으라고' 전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니 유대인들이 분이 넘치고 이가 갈렸다. 자기들의 신성한 종교에 율법을 지킬 필요없이 예수만 믿으면 된다고 하니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바울이 구원의 방편으로 율법을 들어 말할 때 모세를 들어 말하지 않고 아브라함을 들어 말한 것은 구속사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후3:14에서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게 되어 오늘날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어지지 않은채 그대로 남아 있다' 고 한다. 하나님 앞에 갔다 왔을 때 모세의 얼굴에 하나님의 광채로 인해 두려워서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웠다. 그 수건때문에 모세가 증거한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볼수 있는 것은 먼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건이 벗겨져야 구약을 바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바로 믿는 자들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약은 읽을때 바로 이 종말론적인 성취로부터 읽어야 한다. 옛 언약의 약속과 선지자의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되고 성취됐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율법이 구원의 길로 일단 폐기 됐어도 '오직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구약을 정당화 한다. 의식법은 완전히 폐지되고 성취된 것으로 보고, 그 다음에 도덕법은 더욱 강화되고, 그리고 모든 예언은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됐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함과 동시에 구약을 그대로 받는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약의 의식법과 제사법도 예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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