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랬듯
갸우뚱 하면서도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진도를 계속 내었을 때
갸우뚱 하던 바로 그 순간부터
사단은 이미 난 것이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라는 사실을
나는 가슴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가 죄인이래? "라고 갸우뚱거렸지만
난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나이에도 나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 그리고 무엇이 죄인지에 대한
나름의 설정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죄인이 아닌 자가
어찌 십자가에 못박혀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그들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귀한 피의 대속을 입을 수 있겠는가..
물론 머리로는 내가 원죄 아래 죄인이며 오직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을 통해
그 원죄와 태어나서 내가 지은 모든 죄가 사하여질 것 임을 믿었었다.
하지만, 가슴으로는 늘 갸우뚱 갸우뚱이었다. 억지같았다.
내 머리로는 우리 주님의 피로 대속받은 바 그리스도인이었으나
내 가슴으로는 주님의 피로 대속받을 대상이 없었기에 ..
나는 주님의 피로 씻기움을 받지 못한 무늬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했고
그러하기에 성령의 흔적인 평안와 기쁨이 없는 삶이 나의 삶이 되었나 싶다.
주님의 영이신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 나의 삶이었기에 ..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가납되지 않는,
어떤 진공상태의 커다란 유리병 안에 갇혀
나의 기도가 공명되어 내 귀로 다시 돌아와 들리는 상태의 공허감..
그 공허감으로 나는 기도를 해도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말 해왔다.
적어도 내 가슴 속에 내장되어 있는 센서는
기도라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소통의 바탕 .. 신뢰와 믿음 그리고 교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내내 신호를 보내왔었다.
그건 아마도 하나님과 무관한,
일방적 자기 의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은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문제는 그 의구심 자체가 어디서 근원을 둔 생각일까에 대해서
내가 생각해 본 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모든 인간은 악하되 오직 하나님만 선하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하게 되는
자연스런 모든 생각자체가 악할 가능성에 대해서
나는 조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부러 악하게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올라오는 자연스런 감정이
반 도덕적이고 반 사회적인 것이 아니고서는 모두 건강한 자연의 산물이라 여겼었다.
그래서 그 감정들의 기반이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뒤엉킨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의 마음의 밭이라는 것과
긴긴 장마가 끝날 때마다 여기저기에서 쑥쑥 자라오르는 원시적인 감정들은 반드시
나의 정체성에 기반을 둔 의지 아래 다듬어지고 뽑혀져야 하는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내 생명의 자중심을 하나님에게서 찾고 있었던 비교적 영적인 경향의 나에게 있어
나의 생각과 그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들은 모순이었다.
나의 지난 날은 이 모순 속에서의 자기 정체성 혼돈의 세월이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내 인생은 마치 상하로 움직이는 말을 타고
동심원을 그리며 달리는
회전목마 위의 저주받은 인생이라 낙심하곤 했었다.
문제는 실상 움직이는 배경이 아니라
바로 지극히 하나님 지향이면서도 근원적으로 하나님 지향이 될 수 없는
두 요소를 모두 지니고 살아온 내 탓이었던 것이다.
내 신앙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여진 것이었다.
내 신앙은 처음부터 갸우뚱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더 갸우뚱 해지는 것도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래 나의 믿음의 행로는 술 취한듯 비틀거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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