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계약과 새 계약이란 같은 개념이자 같은 내용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또 다른 계약을 필요로 하였을까? 라는 의문은 당연할 것이다.
옛 계약을 첫 번째 계약이라하고 새 계약을 두 번째 계약이라 한다면 조금 이해가 올까.
질문에 답부터 말하자면,
첫 번째 계약이 깨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이라는 하나님의 여자가 수 없이 바람을 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 여자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면 이 첫 번째 계약은 예수 이후에도 존속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 존속 해야만 할 것이다.
계약이라 함은 상황 관계의 설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계약에 딸린 법 조항들은 새로운 법의 등장으로 인해 대치 되었을 것이다.
마치 하나의 국가와 나 라는 개인과 맺은 상황관계의 설정은 변하질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관계를 유지하는 법들은 변해가는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풀어 논 모든 편지들은 첫 번째 계약이나 두 번째 계약 모두 변함없는 같은 대상과 내용을 재차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이쯤에서,,, 첫 번째 계약 안에서 죄와 관련하여 수동적 장치 역활을 해 준 동물 희생 제사직에 의문을 던진다.
동물 희생이 인간 희생을 대신할 수 없다는것 쯤은 누구나 다 하는 이치일 것이다.
하지만 계약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저지르는 모든 종류의 죄들을 대치할 동물 희생을 법들로 지정했으며
또한 합법적 제사직이 완료 되었을때, 그들의 백성들이 저지른 죄들을 용서해 주셨던 것이다.
즉 동물 희생의 피가 인간의 죄를 용서하여 대신 속죄하는 힘을 인정하셨다는 논리이다.
과연 하나님은 동물의 피와 인간의 피를 대등한 위치에서 보시고 인간의 죄들을 사하신 것일까?
과거 첫 번째 계약 안에서 활동하는 법이였던 율법의 개념은 행위를 요하는 육체 방식이었다.
그러나 죄를 사하는 제사직 장치는 동물과 인간이라는,,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맞바꾸는,,
공의의 저울에 달려서 본다면 무언가 걸 맞지 않은 요소들이 작용 했었다는 것이다.
걸맞지 않은 요소들이란
행위를 요하는 법에 못 미치는 백성들의 악행,,,그리고 그 악행의 결과로 형성되는 죄를 동물의 희생으로 속죄하는 방식인 것이다.
여기서 시간상 악행과 죄라는 서로 같지 않은 개념의 설명은 나중에 하자.
하지만 악행은 죄 자체가 아니다 라는 것쯤은 집고 넘어가야 한다.
즉 몸의 행위인 악행과 세력인 죄 사이의 서로 틀린 개념이지만 서로 상통하는 관계이다.
첫 번째 율법 중 제사직을 정리 하자면 이렇다.
1) 법들에 접촉되는 백성들의 악행 중에 하나님에게 저지른 악행들은 동물의 희생으로 대신할 수 있다.
( 이러한 신에게 저지르는 악행들도 종류별로 크게 4 가지로 나누어서 각각 분별하여 각 죄에 해당하는 제사방법을 택하였음)
2) 법들에 접촉되는 백성들의 악행 중에 이웃 백성을 향해 저지른 악행들은 그 종유에 따라,, 금전적 피해 보상, 혹 명예 회손과 관련된
것 이라면 그에 합당한 보상과 함께 화해를 맺는 절차,,이성을 향한 도덕적 악행들을 포함하여 육체에 손상을 입히는 악행은 그 질에
따라 재판의 과정을 거쳐서 합당한 보상과 처분이 필수적 이었다.
즉 악행은 그에 합당한 보상과 재판으로 사형이라는 죽음까지 개인 몫이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의 희생은 어떤 역활을 했는가 가 의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스라엘 백성이 중한 죄를 저질려서 사형에 처해지는 재판을 받았다 치자.
이 범죄자에게는 제사직인 동물의 희생으로 속죄할 수는 없는 것인가?
분명 이 범죄자도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회개 했을 것인데 말이다.
동물 희생으로 되 있는 과거 율법의 제사직은 범법자들을 위해 과연 무었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과연 이 동물 제사직의 범주는 매우 약한 죄를 저지른 자들에게만 효력을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
여기서 악행과 죄 라는 개념이 분리 되야 한다.
율법,,,, 이 율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동물 희생 제사직,,,
이 수동적 보호 장치인 제사직으로 계약 전체를 흔들리지 보호해 주는 방식인 첫 번째 계약,,,
즉 제사직은 바로 이 신과의 계약의 유지를 위해서 라는 결론이다.
동물 희생으로 백성들이 저지른 그 악행 자체가 면죄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 악행들이 어떤 보상이나 재판의 처벌없이 동물 희생으로 된 제사직으로 면죄 받고 해결 된다면
그 나라는 아예 악행과 범죄를 권장하는 강도 소굴이 될 것이다. 바울이 말했듯이 용서 받을 테니 악행을 짓자 가 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나라가 동물 제사직으로 면죄받을 수 있는 분야는 죄 라는 분야 이었다.
그러니 악행과 죄 라는 두 개념이 먼저 우리들의 정신에서 분리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동물 제사직도 한정 된 기간까지 라는 그림자 였다.
그 제사직의 실체란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앞서 던진 의문들을 조금 밝힐 수 있다.
동물의 피가 인간의 악행으로 형성된 죄를 씻겨 낼 수 있느냐 는 앞서 의문 말이다.
그 이유인 즉은, 동물 희생의 제사직 자체는 믿음을 전제로 한 제사 방식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저지른 악행으로 양심에 죄가 형성 되지만 그 죄의 세력을 동물의 피로 씻겨 다시 깨끗히 한다는 개념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의 피의 실체가 오기까지,, 즉 실체가 정말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초를 둔 방식이었기 때문에 동물 제사직은 효력을 발생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 그림자의 그늘 까지도 스스로 뿌리치고 탱볓의 죄를 택하게 되었다.
바로 각 종 우상 숭배로 제사직 숭배를 내다 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악행은 악행대로, 죄는 죄대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여져만 간 것이다.
한 마디로 첫 번째 계약은 이스라엘을 죄로부터 보호할 수있는 수동 장치인 동물 제사직 마져 내 팽겨처진 배신으로
신 과의 계약이 깨져버린 것이다.
첫 번째 계약은 악행과 죄 이 두 가지 요소가 해결되지 못한 것이다.
요약 하자면 이렇다.
옛 계약, 첫 번째 계약은 이러한 방식 이었다.
즉 악행은 그에 합당한 보상과 처벌로써 개인과 나라가 받게 되어 이었지만,
죄는 동물 희생으로써 깨끗히 되는 제사직 제도를 이용해서 신과의 계약 관계를 유지 할 수 있는 방식 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계약,,, 그림자의 실체가 직접 와서 완성한 신과의 두 번째 계약은 월등히 더 나은 계약이다.
우선,,,, 악행들,, 과거 첫 번째 계약에서 처럼 꼭 재판을 거쳐서 보상하고 보응 받아야 하는 악행들이
이 두 번째 계약 안에서는 용서 받을 수 있는 희망 내지는 은혜가 기초로 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1) 악행을 용서 할 것이고 그들의 2) 죄를 더는 기억치 않을 것이다,,,,," 라고 분명히 명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은 과연 어떻케 그 분의 공의로움과 위배됨 없이 매일 저지르는 우리들의 악행들을 용서할 수 있으며
또 우리들의 양심에 쌓일대로 쌓여진 수 많은 붉은 죄를 기억치 않을 것인가.
과연 두 번째 계약의 실체란 무엇인가?
바로 이 두 번째 계약이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심장에 쓰여지고 새겨지기" 때문이다.
과연 "정신에 새겨지고 심장에 쓰여진" 다는 의미에 이해가 온다면 그 비밀 또한 밣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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