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계약,,, 모세를 중보로 놓고 이스라엘과 맺은 약속이다.
하나님은 이 계약을 통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 이스라엘은 그의 백성이 되는 계약이다.
이 계약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의 백성들의 수준 요구가 필수적이다.
그러니 조항이 되는 법의 역활은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즉 법이라는 강제성을 띈 요구가 백성들의 뒤에서 밀고 당겨
지속적인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요소들로 작용될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죄성을 육체로 입고 있는 수준 아래인 연고로,, 매번 계약 관계에 못 미치는 수준을 끌어 올려주는
수동적 장치인 제사직이 또한 매우 중요한 필수 요소로써 아예 법으로 함께 제정되어 이 백성에게 주워졌다.
이 제사직을 포함한 윤리 법 모두를 우리는 "율법" 이라고 한다.
정리 하자면 이렇다.
하나님과 계약관계 안으로 초대 받은 죄성인 이스라엘이 이 신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식이란,
곧 이 강제성을 띈 율법의 세력 하에서만 가능 했었다는 의미이다.
즉 옛 계약의 방식이란 곧 제사직과 윤리 법 조항들을 육체로 행할 때에만 그 관계가 가능했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깐 계약을 통한 신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신과의 관계,,, 당신은 이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저 하나님을 숭배한다는 단순한 개념으로만 들이 댄다면 그 숭배란 당신 자신이 설정한 우상 개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신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개념이 당신 정신에 설정 되어야 한다.
정수물 한 사발 떠 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라는 무 개념 방식이 절대 될 수 없는 창조주의 정신 세계를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아마 이렇게 투덜대며 말할 것이다.
" 뭐가 그리 복잡해,, 그냥 단순한 것이 순수한것 아닐까? 진리란 이리 복잡하지 않아도 되" 라고
그러나 이 관계란 진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기본으로 분리되야 할 정신 세계라는 뜻이다.
인간 사회내에서도 어떤 사람하고의 관계 안으로 들어 갈 때에도 우리는 그 사람과의 친분에 따라서 수 많은 절차가
말과 행동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간단한 예로,, 만약 당신이 일하는 직장에서 당신이 대표 사장하고 관계를 맺고 싶을때 당신의 말과 행동 절차를 곰곰히 생각해 보라.
당신은 아마 많은 시간을 활해하며 그 대표 사장과의 관계 설정을 위해 말과 행동에 정성을 드려 둘 만의 약속 관계 안으로까지 발전하는
정신 세계의 관계를 이룩해 놓을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 가는 일이란 아마 예를 든것과 유사한 이치일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를 마치 결혼관계로 빗대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여자라 일컬었다.
인간 사회내에서도 이 결혼 관계로까지의 인연을 맺기위해서는 쌍방의 정신 세계에서 일어나는 활동과 약속들과 절차들을 요 한다.
하물며 정신 세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당신만의 그 무례한 엿 장사 숭배 방식으로 들이대는 것은 창조주를 당신 발 밑에 두는 것과
일반 일 것이다.
아무튼 내 포인트는 신과의 숭배 교통에는 그 신이 이미 설정하신 방식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과의 숭배란 곧 그 분 방식에 우리의 이해와 순종으로 마무리 된다.
그 분의 방식이란 곧 계약 관계이다.
당신이 만약 이러한 계약 개념에 눈을 뜨지 못했다면,, 한가지 힌트를 주겠다.
그 힌트란, 당신이 그리도 중히 여기는 인간 사회내 에서 그리도 흔한 돈 계약, 집 계약 등등,,들을 상기하길 바란다.
당신은 이 돈과 관련된 계약들에는 당신 정신을 날까롭게 세웠기 때문이다.
즉 돈과 신,,, 이 둘 중에 당신은 돈을 신보다 더 무서워 한다는 증거일 것이다란 내 나름대로의 논리다.
돈에게는 당신의 정신 논리를 날카롭게 세워서 그 이치를 따져 보지만 창조주에게는 당신 자신을 무식한 척 하고
당신 정신을 무도 쓸지 못하는 무딘 칼로 방치해 두는,, 창조주를 무시하는 죄의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신 차리고 진정 회계하고 창조주의 계약관계를 곰곰히 묵상해 봐야 할 것이다.
당신이 그리도 사랑한다는 고백하는 예수님도 이 계약의 피 때문에 희생되지 않았는가?
예수가 피흘린 이유는 당신과 하나님과의 계약을 위해서 였다.
이것이 진리이다.
예수가 피 흘린것은 아는데 계약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당신 표현이란
마치, 예수가 피 흘린 것은 아는데 그 희생이 무었을 위해, 누구를 위한 희생인지를 모른다는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당신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는 광경을 보고는 있을지 언정,, 그 십자가 위에서 희생하는 예수 안에는 없다는 뜻일 것이다.
아직도 당신은 구경꾼 신분으로써만,,,
하나님을 당신이 설정한 당신 방식인 감정 가는대로만,,
이해를 멀리한 감상적으로만 숭배하는것은 아닌지 한번 돌아 보길 바란다.
"하나님은 자신을 진정으로 찾는자를 찾으 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찾아 해매는가?
당신은 무었으로 찾아 해매는가?
과연 하나님을 무었으로 찾는 중인가?
영과 진리이신 하나님을 이 영이 하신 영원한 계약과 예수를 보내신 이해의 진리로 찾느가?
아니면 그져 육체로 부르짖고,,, 감성적으로 사랑한다하며 당신 자신만의 세계에 갇쳐서 당신 뜻으로만 하나님을 만들어가는가?
계약,,, 참 중요한 개념이다.
그 수 많은 계약 중 신과의 영원한 계약,,, 약속,,,,
하나님은 이 우리와의 계약,,,이 영원한 약속을 위해 자신의 전부인 예수까지 사탄에게 넘기셨으며,
그 사탄이 저질을 가장 잔인한 방식의 희생까지 허락 하셨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한다 고백하는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 매번 소리 쳐 노래부르는 우리는,,,
그 계약의 컽에서부터 그 속 알맹이까지 모두 다,, 하나도 빠짐없이 이해해야할 책임이 있다.
이 계약이 먼저 우리의 정신에 설치 되야 하고 그 후,
이 계약이 우리의 심장에서 실행되야 하며,
이 계약이 우리의 영혼 모두에 저장 되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친히 이리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믿는 당신 안에서 생명의 씨로 자라날 것이기 때문이다.
새 계약이란,
바로 이 영이다. 즉 십자가 행위로 얻은 이 권한이다 이 능력이다 이 POWER 이다.
"내가 내 법을 그들 정신에 새기며,
내 법을 그들 심장에 쓸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는 그들의 악한 행동과 그들의 죄들을 기억치 않을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아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계약은 하나님의 약속인
"너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라는
하나님의 성령 이다.
이제 이 성령이 십자가 위에서 완료되어 아버지로부터 예수에게 전수되어서
120 명 제자들에게까지 부워진다.
이 성령을,,, 이 하나님을,,, 이 권한을,, 이 능력(POWER) 을 옛 율법과 관련하여 분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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