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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들 /담아온 글 ...

[스크랩] 살려주는 영,,, 예수의 기능 (Regeneration in Spirit)

살아있는 영혼과 살려주는 영의 차이점

 

"첫 번째 사람 아담은 살아있는 영혼이었고 두 번째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다." 고후15장45절

 

살아있는 상태와 생명을 줄 수있는 상태를 비교해서 묘사하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왜 첫 사람과 두 번째 사람을 비교하였나.

 

첫 번째 사람의 생명력 Degree 를 "살아있는 영혼" 이라 표현했다.

두 번째 사람의 생명력 Degree 를 "생명을 주는 영" 이라 표현했다.

 

"살아있다"는 피동적 상태와 "살려주는" 이라는 능동적 상태를 서로 비교하여 드러내는 동시에

또한 이 살아 있었던 피동적 상태마져 어떤 연유로인해 살아 있음을 상실한 결과가 초래 되었지만,

이 피해를 그 상실에서 복구시키는 의미로써의 "생명을 주는" 이라는 암시를 서로 연결 시켜놓은 어휘일 것이다.

즉 살아있는 상태에서 죽음으로 떨어진 피해를,,, 그 죽음 속으로 들어가 살려내는 복구기능을 가춘 도구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와 그에 필요를 위해 마련된 특별 기능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유추할 만한 사실이 있다.

이 불구덩이 같은 죽음 속으로 떨어진 상태를 다시 살리기 위해

그 똑같은 불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서 구해내야하는 도구라면,

이 불구덩이를 견뎌내고 그 안의 모든 자들을 담을 수있는 용량의 공간과  

그 불 구덩이를 다시 뚫고 나올 수있는 능력의 재질로 만들어져야 하질 않을까? 라는 당연한 추리이다. 

 

아담 세계가 죽음의 세력에게 납치당해 빼았긴것은 육신의 "살아있는 영혼" 이였다.

그러니 두 번째 아담도 "육신의 살아있는 영혼" 이 이 죽음속으로 들어가야 했었다.

아담은 육신에 영원성을 부여하는 길을 도중하차하여

 

1) 육신으로 죄를 짓고,

2) 육신을 빼았겨서,

3) 육신속에만 거하였던 "산 영혼" 이라는 초기적 창조의 생명력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아담인 예수는

 

1) 육신으로 죄를 뒤집어쓰고

2) 육신을 빼았겨서,

3) 육신속의 생명력인 "산 영혼" 이라는 초기적 창조의 생명으로는 죽음을 맛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희생시켜 두 번째 아담인 예수가 물로써 기본적으로 씻어낸 더러움이란 이것이다.

 

1) 육신으로 더럽혀진 죄를 씻고

2) 빼앗겼던 육신을 되 찻고

2) 육신속의 생명력인 "산 영혼" 이라는 초기적 창조의 생명을 되돌려 놓는 씻음이였다.

 

이 행위들을 두 번째 아담인 예수는 기본적으로 해 놓고 이제 말씀속에 그 능력을 담아 놓았다.

즉 거짓이 아닌 말씀으로 된 깨끗케하는 물을 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본이다.

다시 불 구덩이 속에서 나와야하는 것은 육에 속한 생명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불 구덩이를 뚫고 나오는 기능이란 어떤 생명력의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초기적 생명력인 육신에 속한 생명을 능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점이 예수의 재질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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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ater and blood
글쓴이 : 영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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