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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들 /담아온 글 ...

[스크랩] 예수가 이룩한 생명의 본질,,, 영,,,(b) Regeneration in Spirit

빛이 보였다.

이 길은 바깥 세상으로 태어 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

영원한 자유의 길, 빛이 되는 길, 영이신 아버지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마침내 놓여진 것이다.

 

이 길은 죽음에서 나온 자들만이 걸을 수 있도록 미리 설계된 거룩한 길이 되었다.

이 길의 이름은 "서로 사랑 하라" 라는 예수의 몸으로 된 새로운 길이다.

이 길만이 아버지가 계신 장소인 지성소까지 뚫려있는 거룩한 길이다.

 

나도 이 길을 걷고 싶은데,,,, 나도 이 거룩한 길을 걷고 싶지만

나의 육체를 주관하는 죄의 강력한 에너지에 매번 쓰러지고 마는 나를 누가 구출 해줄 것인가 말이다.!

 

"오호라 그래서 나는 비참한 사람이라!!  

내 정신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지만

내 저주받은 육체는 나를 가만히 나두질 않는 구나. 나를 이리저리 끌고 결국 나의 심장을 죄의식으로 가득 채우고 마는구나,,

나의 정신은 하나님을 사랑 하지만, 내 육체는 죄의 종이 되어 내 정신의 의도와는 정 반대되는 육체안으로 끌어드려

온갛 나쁜 행위들로 죄의식을 낳는구나,,, 누가 나를 이 죽음에서 구출하랴...." 로마서 7장    

  

 

당신이 만약 이 단계까지 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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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당신이 당신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는 고통가운데 한탄하고 있다면,,,,

이 죽음의 고통속에 잠겨있는 당신은 이제야 부르 짖을 수 있습니다. 

 

이미 마음으로는 주를 믿어 의에 이른 당신은 온 목청 다 토해나듯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요. 그러면 죽음에서 구출 될 것입니다."

 

당신이 현재 처한 곳은 죽음의 골짜기 입니다.

예수의 영을 받은 당신은 이제 이 장소,,,

육체의 죄의 댓가인 죽음의 장소까지 지금것 인생의 행로에서 매번 밀려와 죄의 고통속에서 진통을 격고 있는 것입니다.

십중팔구,,, 예수를 믿는 당신은 죄를 짖지않기위해 굳은 결심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결심이 굳을 수록 그 결심은 더 깨지기쉬운 질 그릇이였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당신은 죽음 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였습니다.

 

이 죽음의 장소란,,,

곧 죄의 에너지에 속박되 온 인생을 이 죄의 종으로 살아야하는 당신의 신분을 노출시키기위한 교육장소 입니다.

 

벌써 잊으셨습니까?

당신의 첫 조상이 이미 자궁안애서 미래의 당신까지 이미 팔아 넘긴것을요?

 

당신은 종 입니다.

이 종은 그 주인의 목적을 이루워야 하지요.

당신의 주인의 이름은 죄 입니다.

그리고 이 죄의 목적은 죽음이라는 장소 입니다.

당신은 이곳까지는 가야 사탄에게도,,, 하나님에게도 공정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성귀에 이제 귀를 귀울여 보새요.

 

"(새)창조물들이 계속 허망한 죄에 굴복하는 이유는 창조물의 의도가 아니라 그 고통을 목적하신 분의 의도였기 때문 입니다.,,

모든 (새) 창조물들이 지금까지(믿음의 영이 머물렀을지 언정) 해산의 고통에 부르짖는 이유는,,,,) 로: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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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해산, 잉태이다.

우리는 아직도 자궁속에서 자라나는 매우 연약하고 부서지기쉬운,,,  태아 상태인 것이다.

즉 예수가 가신 길,,, 자궁에서 밖으로의 길을 트고 빛으로 마무리되야하는, 결국 빛이신 아버지의 품속에 품어질,,,아버지의 영광으로

온 세대에 비추어질 빛의 씨인 태아인 것이었다.

 

이 태아인 우리는 예수가 시작하고 마침내 끝낸 길,,, 자궁에서 밖으로의 길,, 이 길을 가는것 외에는 다른 생명의 길이란 없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떻게 이 길을 시작하고 마련하고 끝내었을까?

 

이 길이란 어떤 길인가?

이 길이 왜 당신에게 그리도 중요한 길이 되어야 하는가?

예수가 간 길을 왜 당신도 가야 하는가, 갈 수 있는가? 

예수와 당신은 어떤 관계인가 말이다.     

이 길의 시작은 무었이였고 그 끝은 또 어떤 장소인가 말이다.   

예수를 믿어 예수의 영을 받는 우리가 왜 죽어야 하는가?  

 

 

자궁안의 십자가

 

  

"내가 진실로 말하는데 당신이 물과 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담은 깨끗한 물,, 수정유리 같이 투명하고 맑은 물,,, 하나님이 말씀하사 그 말씀의 물로써 지어저서 태어 났었다.

즉 하나님의 창조의 자궁안에서 태아로 태어 났었다.

그리고 아담은 이제 자신의 업적인 순종을 이루어내어 영, 생명을 위한 영을 받아냈어야 옳았다.

즉 물과 영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온전히 마치고 그 자궁에서 나와 육신을 옷처럼 입고있는 완전한 영혼이 되었어야 옳았다.

 

하지만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으로 태어나는 과정에서 실패하여 유산되고 추락하여 자궁 안에서 죽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두 번째 아담이 이 자궁안에서 나타났다.

 

이 두 번째 아담은 하나님이 첫 번째 에덴동산에서부터,,,

아담이 유산할 때부터 계획하고 약속한 창조주의 뜻이었다.

창조주는 자신의 뜻을 우선 청사진인 율법에다 그림으로 그렸다.

이 청사진은 두 번째 아담의 역활을 이행 하는데 온 촛점을 마춘,,, 땅이 아니라,  하늘의 청 사진이였던 것이다.

이 율법이라는 청사진은 땅의 것들을 목표에 두질 않는다.

 

이 율법에 의해 태어 난 예수라는 두 번째 아담은

이 율법의 가장 작은 요구서부터 모든 요구를 다 행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의 성년시절에는 제사장의 역활까지 온전히 끝내어서

하나님만의 장소인 거룩함에까지 완성을 이루어 놓았다.

 

자 그럼 이 두번째 아담인 예수가 어디에서 이 모든 일을 행하여 완성 시켰는가?

우리 인간의 장소인 자궁이였다.

 

이 자궁안으로 들어온 예수는 인간으로 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인자가 말하는데,, 인자는 ,,,," 등등 자신을 인자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이 자궁 안으로 들어 온것은 이 예수뿐만이 아니었다.

거룩한 창조주 하나님의 성전이 이 누추하고 추악하고 지저분해진 자궁안으로 함께 자리를 한 것이었다.

 

자궁안에 거룩한 하늘을 임시적으로 옮기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 자신은 자신을 심히 떨어뜨려 시궁창으로 변한 이 곳까지 친히 오신 것이다.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두 번째 새로운 조상인 예수와 하나가 되는,,, 그래서 예수를 움직이시는 작업을 하기 시작 하셨다.

즉 예수라는 육신과 정신에 하나님이 영으로, 에너지로 예수와 하나가 되어서 작업을 시작하신것이다.

다시말해 예수라는 육신안에 성전을 만들고 이제 하늘 도형인 거룩한 율법의 청사진대로 거룩한 하나님이

거룩한 하늘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신 것이다.

이 말은, 인간 육체안에 이제 거룩한 성령의 존재가 거룩한 길을 가기 시작하여 그 끝을, 완성을 가져왔다는것이다.

 

율법 청사진의 실체가 예수 안에서 완성된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실로 무섭도록 찬란한 개념의 장이 open 된 것이다.

 

자궁안에서 태아로 살다가 아담처럼 태아들로 죽어가는 우리인간에게 이 예수의 개념이란,,

상상을 초월한 개념의 장들이 펼쳐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 개념의 축을 단면적으로나마 그려내자면,

우리 두 번째 인간 조상에게는 하나님자신이 다시 창조주가 되는 창조의 일을 하기위해

두 번째 조상에게 와서 하나가 되 버린 형태였다.

 

첫 번째 조상인 아담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틀린 창조이다.

 

간단하게나마 이어지는 개념의 논리란,,,

두 번째 인간 조상에게는 하나님자신이 직접 에너지로 들어와 예수라는 몸,과 정신 즉 영혼을 움직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예수를 통해 자신의 법을 자신이 다 성취해야만하는 일이 발생해 버린 것이다.

다시말해 자신의 입에서 나 온 율법의 요구들과 축복들과 거룩함과 십지어 저주까지도 다 자신이 행해야할 숙제들로

자신에게 돌아오게 한 셈이다. 즉 행위로 된 업적으로 그 업적의 에너지인 영을 발생 시키겠다는것이다.

 

이 영이란 인간의 하찮은 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이 될 것이라는 것은 아마 당신은 짐작할 것이다.

   

   

      

 

 

  

 

     

 

 

출처 : water and blood
글쓴이 : 영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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