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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음각화와 양각화

내 머리 속에서 구름처럼 떠도는 생각들에 늘 붙잡혀 있다가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되지 않는 실제하는 바다 속에서

그 바다의 무한한 에너지에 눌리고 눌리어

바닷속 그 깊은 어둠의 압력과 그 무거운 고요의 무게 속에 영원히 갇혀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도록

내 머릿속에는 항상 뭔가로 채워져있다. 

 

그건 내 안에 무수히 많은 눈이 있기 때문이다.. 

보이기만 많이 하였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완벽주의 경향이 다분한 나에게는 더더욱 ..

 

많은 것이 한꺼번에 많이 보이기 때문에 항시 판단 내리기가 쉽지 않았고

그 머뭇거림은 우유부단함을 낳아

그 표현 역시 남들에게는 또하나의 선택의 모양이 되어

내가 전혀 원치 않는 흐름으로 타인의 의사대로 떠밀려가기 쉽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내 눈이 이미 보았던 많은 소인들은

그 결과와 함께 오로지 내 몫의 설걷이로 돌아왔다.. 

그로 인해서 깨달은 것이 그 순간 선택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된다는 거였다..

 

그런데 돌아보니 진짜 화근은 내 안에 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 눈들이 향하는 방향설정이 잘못된 것이었다..

나를 주관해 왔던 선악에 관한 관념도, 이상도,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도

사실은 모두 바람같은 허망한 존재들이었기에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흐르는 그 바람을 쫒아 향하는 눈들은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길에서 수시로 길을 잃고

흐르는 대세로 이끌리거나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그 눈들이 변하지 않는 선하고도 건강한 한 목적에 모두 맞춰져 있었다면

보다 지혜롭고 선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단지 그것만이

무수히 많은 마음의 눈을 가지고 태어난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우리 인생이 살아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주체로 서지 못한 탓과 함께,

그분과 나누는 교제가

인격적이거나 사실적이지 않고

관념적이고 허상적이었기에

내 인생은 그리도 곤했는지 모른다..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인 신앙이고 믿음이었던 것이기에

신앙의 연수가 그리 되어도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여

그 주변을 맴도는 바람의 곤고함을 지니고 산 것은 아닐까 싶다..

 

 

 

........

 

 

 

 

지나온 걸음들을 돌아보는 요즈음

뿌듯함보다는 후회가 더 많은, 아픈 시간 속에서 

하나님 나의 아버지께서는 번쩍이는 번개같은 깨달음으로 

심히 위축되어 있는 나를 위로해 주셨다.. 

 

양각화와 음각화에 관한 이미적인 것이었다..

 

적극적인 삶의 형태인 양각화든 그의 정반대적 음각화든 

그것은 각각의 여백을 가지기 마련이고

그 각각의 여백의 공간까지 철저히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당신께 보여지는 것은

사람들이 하는 것과는 달리

인생들이 그려내는 양각화나 음각화 자체의 표현 너머의 여백에

예수를 통한 진정한 회개의 마음으로 돌이키고자 하는 마음을 채워주셔서

온전한 하나의 삶으로 

기꺼이 기쁘게 받아 주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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