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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슬픔이 의지가 되는 때

 

                       슬픔이 의지가 되는 때   /   허만하

 

 

 

 우랄의 산정에서 눈사태처럼 무너진 바람이

지상에서 거세게 너울대는 바람의 속도에 부딪혀

거대한 포르테처럼 밤하늘에 솟구쳐올라 부서지는 것을 보고 있다.

치열하게 내리는 눈발이 중천의 높이에서 커튼처럼 펄럭이고 있다.

소용돌이치는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지는 눈부신 눈송이들은

최후의 몸짓을 스스로 지운다. 탄생의 흔적을 뒤에 남기지 않는다. 

 

자축한 눈보라 속을 느릿느릿 나를 바라보며 걸어오던 한마리 순록이

갑자기 돌아서서 자작나무 숲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한줄기 발자국이 은백색 적설을 밟고 뒤를 따르고 있다.

상처를 입어 무리를 떠나야 했던 다리 절던 한 마리 순록의 외로운 결심도

숲그늘 속으로 함께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아득한 설원 끝 저무는 지평선이 달빛처럼 얼기시작하는 것은

슬픔이 의지가 되는 때다.

광폭한 쏘나타러럼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멎고

자작나무 숲이 다시 먼 섬 그림자처럼 떠오를 때

순록들은 잎 진 나뭇가지 같은 갈색 뿔을 머리에 이고

킬치락거리며 떼지어 첨벙첨벙 은하를 건너고 있다.

 

집단을 따르지 못한 한마리 순록의 고독한 주검을

부드러운 아마포처럼 덮는 함박눈이 다시 조용히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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