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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진정한 그리스도인.. 알곡에 대해서 생각해 봄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담고 사는

여러 교파에 속한 신실한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랬다..

그들의 마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 신실히 살기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 많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자신들이 배운 교리 안에서 찾고 그 교리 안에서

행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신실한 행동들을 구체화시키고

싸워지켜야 할 마땅한 믿음의 영역을 만들어 자신들 고유의 믿음의 형태를 고수하고 있었고,

그들의 구체화된 행동의 결국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내적외적인 발전에 결국 일조하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그 조직 안에서는 그 일조하는 정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정도를 가름하는 잣대가 되었음은 물론이었다..

   

여러 교파를 스치면서

비슷비슷하지만 또 다르고, 다르지만 실상은 모두 공통된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을 보았다면 ..

그것은 예수께 속한 복음의 씨앗에 여러 형태의 조직의 옷과 교리의 겉옷들이 입혀져 있다는 것이었다..

 

복음의 씨앗이 그 교회조직 안에서 발아되어 하늘 아래 자신을 드러내었지만

곧 입혀지는 조직의 색색의 옷들과 교리의 무거운 겉옷들로 

자신의 정체성이 조직의 정체성으로 인식되면서

본디 자연으로부터 받은 자기 본연의 생명력에 속한 자아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오랜 세월에 거쳐 속한 교리의 옷들을 걸치고 있어왔기에

교회조직 밖에서 태어난

걸칠 옷이 없는 알몸의 발아된 생명들은

도리어 이상하고 초라하게 여겨지기 십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날마다 높아지는 인간 조직들의 높은 성벽의 그늘에 가리워져 제대로 크지도 못했고

급기야 지나다니는 겉옷입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거나

미처 발아되지 못한 씨앗들은 땅을 밟고 다니기도 하는 작은 새들의 먹이가 되고 있었다..

 

 

나는 생각해 본다.. 

각기 교파들이 세워 올린 자기들의 성역인 성벽과 크고작은 여러 모양의 깃발들이

알곡과 함께 자라난 키가 큰 가라지의 깃발들이 아닌가 하고..

 

또 가라지란 어쩌면 예수를 매일같이 부르지만 실상은 예수와  무관한 일로 바쁘기만 한

교회조직과 일찌기 하나가 되어버려

예수가 들어있지 않는 믿음을 붙잡고 있는 

속한 교파의 깃발이 구원의 증표인냥 여기는 무늬만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

 

나는 생각해 본다..

살아계신 한 성령 안에서 어찌 다른 성서 이해가 있을 수 있으며,

이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새하늘과 새땅을 펼치신

우리들의 하나님이자 아버지이시자 왕이시자

하나님의 가족관계로서는 맏형까지 되기도 하시는 예수를 따르는 작은 예수들에게까지

어찌 다른 구원의 형태에 믿음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 

 

나는 생각해 본다.. 

태어나고 자란 연고로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기회도 없는 상태에서 

자기 정신과 하나되어 굳어버린 잘못된 교리적 족쇄에 매인 바 되는 이들을

당신의 아들의 피로 구원의 길을 마련하신 하나님께서

구원의 사각지역에 있는 그들에 대해서 결코 무관심해 하시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하여 나는 조심스럽게 추리해 본다..

어느 때인가에는 꼭 ..

일 세기 때 있었던 또한번의 성령의 기적이 다시 일어나

한 성령 안에 한 구원의 형태가 세워지고

예수께 속한 진리로 하나의 믿음과 구원의 형태의 지식을 소유하게 된 그 무리들은

예수가 낸 발걸음을 따라 하늘 시온성을 향하게 되는 기적같은 일이

어느 시점엔가 꼭 생겨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

 

 

어쩌면 ..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제자들로 복음의 빛이 이땅 전체를 비추게 되도록 허락된 이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은

알곡과 가라지가 자라도록 허락된 기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또한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이후로

마지막 추수 때까지 허락된 하나님의 시간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해 하나님이 되고자 하였던 아담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간섭을 떠나 자유롭게 살아보도록 허락된 시기로

사상이나 철학과 종교나 정치.. 그리고 예술과 각기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과학의 발달로

결국 인간 능력의 한계과 모순에 스스로 봉착하게 되는 데까지 소요될 기간 또한 아니었을까 추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