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흐린 날
오늘은 해가 뜨긴 떴는가 싶게
종일 햇빛을 볼 수 없었다.
내 눈에 해가 보이지 않았어도
저 높은 하늘엔 해가 떠 있었는지
해질 시간이 되니
사방에 평소보다 무거운 어둠이 내린다..
스산한 겨울바람 불던 60년대 후반의 어느 초저녁 ..
부엌으로 난 쪽문을 열고 드러누워
상고머리 어린 계집아이 턱을 괴고 있다.
한쪽 곤로에서는 찌게가 보글보글 끓고 있고
부뚜막 위에선 하얀 김과 함께 밥 냄새가 진동을 한다.
주걱으로 밥을 살살 헤치고, 주물로 된 두꺼운 아버지 밥그릇에 밥이 담길 때면
어린 계집아이는 늘 주문처럼 "우리 아버지 밥 많이 담아줘 ~" 외웠고
후렴구처럼 "그래 느그 아버지 밥 많~이 담아 줄께.."란 답을 듣고서야
"내 밥에 고구마 많이 넣어 줘"란 요구를 했었다 했다.
서울 막 올라와서 어려워진 살림에 양식을 늘려 먹을 요량으로
저녁밥엔 늘 고구마을 넣어서 했었는데
고맙게도 우리 삼남매는 그 고구마가 많이 들어간 밥을 서로 차지하려
밥상 앞에서 잡고 도망치고 법석을 떨었다 한다..
그 기억은 나에게도 아직 남아 있다..
부엌으로 난 쪽문을 열고
어머니가 밥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재미난 일이었다.
춥다며 문 닫고 들어가라고 하시던 어머니 말을 들으면서
이불을 등에 덮고 있는 나를 도리어 춥다 하시는 어머니 말에
가슴이 가슴이 따뜻해지던 그 기분은 여전히 온기로 남아 있다.
그때 내 어머니는 보라색 두툼한 쉐타를 늘 입고 계셨는데
어머니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과 손 움직임을 보면서
한 가지 반찬이 만들어져 상에 올려지는 과정은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도마에서는 두부가 칼에 의해 썰어지는 단정한 모양이 나에겐 자극적으로 보기 좋았다.
장독간에서 막 꺼내온 빨간 김장 김치 한 포기와 두툼한 무우가 썰어져 보시기에 담기어
밥상에 올려지면 저녁상이 완성되는 거였다..
난 겨울..하면 내 어릴적 겨울이 생각이 난다.
요즘 며칠 추웠지만 나에게 겨울이라 하니 겨울이라 하지
내 가슴속 겨울의 단어는 늘 그 시절의 겨울로 인식되고 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는
내 감수성의 거의 대부분의 것이 60년대 후반의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시절에 뿌리 내린 인간적인 감성들이 아주 살가운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부족한 중에 채워지는 약간의 풍요에 기쁨 .. 엄격함 가운데 피의 뜨거움 ..
가족간의 위계질서 아래에서 오는 안정감 ..
상상력 좋은 계집아이의 발직한 거짓말 아닌 거짓말로 인한 헤프닝 ..
이상한 일은 ..
세월이 흘러 그때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수록
바로 어제 일처럼 점점 더 선명해져 더 그리워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추운 것은 딱 질색인 나이지만
난 겨울이란 계절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도리어 가슴이 따뜻해지는 계절이다..
그 시절에 둥그런 밥상 앞에 머리를 맞대고 있던 우리 식구들은 모두 다 있는데
우리 아버지만 볼 수 없다..
까만 코트 .. 짙은 곤색 양복..줄무늬 검은 양복 .. 자그마한 검정 구두..구두주걱..
재털이..신문 ..영문 사전 ..옥편 ..국어사전 ..필통..자 .. 카메라 ..
그리도 귀하게 여기시던 사진 두 장. 지리부도. 돗보기..
그 물건들을 그리 소중히 여기시던 그때 우리집 주인공만 사라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