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1/5

야생 선녀초

마른 두통이 나서

바깥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

가을 바람도 제법 싸늘해져 머리가 시려왔다.

 

제 철을 만난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  

늘어선 화훼농원마다 

다양한 종류의 국화가 한창이었다.

 

아이들 어릴 때에는 제 철 꽃이라고

국화도 많이 사다 날랐지만

나중에 나중엔  

화분에서 결국 한 계절만

자기 이름을 나타내고 마는

그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더이상

집에서 국화꽃을 즐기려 하지 않는다.

 

언젠가

국화꽃이 피어있지 않고 있어도

군데 군데 누런 전잎이 생겨나 있어도

그리 눈에 거슬리지 않을

자연스런 전원주택에 살게 될 때가 있다면

그 즈음에

그 녀석을 우리집 대문 입구쪽에 놓아 키울 생각이다.

가을을 알려주는 전령사라는 작위를 주어 ..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야생화와 다육이를 팔고 있는 가게에 들러

다년생 야생초와

보라색 아주 작은 꽃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육이같지 않게 생긴 다육이를 단아한 화분에 심어

조심스레 업고 왔다.

 

해질녘에 돌아와

발코니 쪽에 두었더니 

저녁햇살을 받고 있는 그 녀석들의 인물이 보통이 아니었다.

 

역시 화초는 어느 화분에 담기느냐에 따라

인물이 달라진다더니

한 녀석은 자연스러운 짙은 고동색 화분에서

다른 녀석은 보라색을 예쁘게 더 드러나게 하는 하얀 화분에서

제법 멋진 내 아이들이 되어 있었다.

 

다년생이고

꽃이 피지 않고 

잎이 꽃처럼 여러 색을 띄고 있는 야생초는

붉은 빛 감도는 햇빛을 받으니 훨신 운치있었다.

 

그 녀석에게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다.

선녀초라고 ..

돌담에 담장이덩쿨처럼 아무렇게나 줄기를 늘어뜨리며

자라는 야생초에게

선녀란 이름이 조금 부담스러울 것이지만 ...

 

사실.. 그 야생초는 날 닮았다 싶었다.

그래서 속 보이게 그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을지도 ..

 

꽃이 없고 ..

여러 색을 가진 잎을 꽃처럼 가지고 있는 풀..

 

꽃이 없으니 넌 풀이야 ! 해도 할 말 없고..

무슨 풀이 온갖 잡동사니 색을 지니고 있니? 해도 할 말 없고 ..

잎을 꽃으로 보는 이에게는 꽃으로 ..

피고지는 꽃의 형태를 꽃이라 여기는 이들에게는 잡초로 .. 보이는 .. 

보는 이에 따라서 꽃도 되고 잡초도 되어 

내가 가진 뿌리와는 상관없이 내가 되고마는  .. 

 

동네가 끝나는 길목 안자락 돌담에 

낙엽이 진 것인지 .. 제 잎 색인지 ..

지는 해의 긴 여운에 그리 보이는 것이지를 도통 알 수 없는 색을 가지고

수풀더미와 이웃하여 본디부터 그 자리가 제 자리처럼 보이는 풀..

 

오늘처럼 그 자연스러운 것을 도리어 좋아라 찾는 이의 손에 이끌려

화초처럼 고운 화분에 옮겨 심겨

꽃처럼 대접받으며 집에 들어와도 그다지 어색하지도 않는 존재..

 

스스로도 자기 정체성을 찾기 힘든 슬픈 영혼 ..

 

여러 색깔을 한 잎에도 가지고 있고

여러 아이들이 모여 저 원하는 대로 색칠 해 놓은 것 같은 자유분망한 색처럼 .. 

자기주장이 확실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전혀 없기도 한 ..

강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한없이 약하기도 한 ..

자존심 때문에 이저껏 모든 노력을 포기해 버리다가도   

또 아무 이유없이 자기 감정에 충실해 그 자존심 .. 여민 망토 풀어 던져버리기도 하는 ..

내성적이면서도 외향적이고, 외향적이가다가도 한없이 내성적이 되고 마는  ..

너무도 다양한 색이 한꺼번에 제 맘대로 나올 수 있는 한 통안에 담긴 색연필 감정을 가진지라 ..

 

야생 선녀초 ..

넌 날 너무 많이 닮아 있었다.

 

반갑다. 선녀초 !!! ..

 

 

 

'살아가는 이야기1 > 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원시적인 음악 세계 ..  (0) 2008.11.07
어느 시인의 노래  (0) 2008.11.06
실체의 세계  (0) 2008.11.03
가난한 이웃들이 가르쳐 준 것  (0) 2008.11.02
난 이미 ..  (0) 2008.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