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오늘의 일기

시장을 보고 

저녁준비를 하면서

제게 사물을 볼 수 있는 건강한 두 눈과

건강한 몸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하였습니다.

 

싱싱한 고등어가 났길래

묵은 김치를 깔고 고등어를 조렸습니다.

빨갛고 걸쭉한 국물이 보글보글 올라오길래

파란 고추와 파를 올려놓고 계속 끓는 것을 보다가 간을 보니

진짜 원하는 맛이 그대로 나서 "와.. 성공이다.."중얼거리며 한 가지 반찬을 끝냈습니다.

 

피조개를 데쳐서 뚜껑을 떼어 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뜨거운 물에서 그래도 살겠다고 힘있게 닿은 뚜껑을 열면서 

시력이 없다면 이런 일을 어찌 하겠나 싶어

갑자기 제 눈에 시력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하게 와닿았는지 몰랐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하는

그 평범한 일상도 시력을 잃은 이들에게는 얼마나 부러운 일일까 생각하니

건강한 몸으로 매 순간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는 자체가 죄스러워졌습니다.

제가 만일 맹인이었더라면 오늘 이 시간을 가장 부러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맹인학교로 봉사를 나가던 때 ..

저와 맺어진 짝이 물어왔습니다.

 

"하늘을 보면 무슨 생각이 나요?

파란색은 어떤 색이죠?

얼굴이 어떻게 생기셨나요?

머리카락은 길어요? "

제가 볼 수 있게 된다면 제 어머니 얼굴을 가장 먼저 보고 싶어요..

그리고 .. 제가 사랑하게 될 사람의 얼굴은 두번 째로 ..

아니 .. 바뀌었네요 ..ㅎㅎ

저 나쁜 놈이네요.. 정말 나쁜 놈이예요..

저희 어머니가 저 땜에 얼마나 고생하시는데 .."    

 

한번은 ..

세면실에서 빨래를 빨고 있는 그 아이를 보았습니다.

하얀 속옷을 빠는 것 같았는데.. 무조건 비비고 .. 무조건 행굼질을 해댔습니다.

'저렇게도 빨래가 가능한 거구나..'란 생각을 그때 했었습니다. 

 

눈이 보이질 않아도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샤워를 매일 하는 듯 늘 말끔한 모습으로 제 방에서 저를 기다리는 그 아이가

오늘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저보다는 몇 살 어렸지만 아주 성숙해 보이던 아이였는데..

그 아이도 이젠 나이 오십을 바라보고 있겠네요.

결혼은 했겠지요.. 아이들도 있겠구요..

 

사랑하는 사람은 본디 보고도 또 보고싶은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눈이 보이질 않는 이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아마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 같습니다.

여자들에게는 ..

자기 손으로 제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일 것이구요.

 

그들의 불행으로 오늘 제가 행복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니고..

제 평범한 일상의 감사한 행복이

그들에게는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사실이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주어진 제 환경에서 늘 감사하고 만족해 하면서 

그 감사를 나눌 수 있는 생활로 발전시켜야 할 것을 ..

있는 감사의 조건 속에서도 감사치 아니하고 도리어 자기 슬픔에 빠져있는 것은

아버지께 참으로 죄송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안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주인잃은 머리카락처럼

저희은 저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죄도 그렇게 흘리고 다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장들이 모르고 지은 죄에 대해서도 속죄제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희에게 구원의 길을 당신 아들의 완전한 희생으로 열어주신 

아버지의 사랑은 참으로 대단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일기 주제는 '감사'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속한 아버지 ..  (0) 2008.10.13
저의 날개짓이 ..  (0) 2008.10.12
저 비록 ..  (0) 2008.10.09
파문 ..  (0) 2008.10.08
곰곰히 생각해보니 ..  (0) 2008.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