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소풍가서 찍은 사진을 딸애와 함께 보면서
엄마 첫사랑을 찾아 보라고 했다.
아이는 귀신같이 김철수를 찾아 내었다.
어떻게 찾았냐고 물어보니
사진 속 아이 중에서 엄마 취향엔 그 얼굴이 딱일 것 같았다고 해서..
한참을 함께 웃었다.
철수 얼굴을 떠올리니 어린나이에 쓰렸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아득한 기억 속에 묻혀있던 나의 연적 춘희의 희미한 얼굴이 떠올랐다.
비밀이란 것을 지니지 못하는 내 특성상
춘희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누구에게도 해 본적이 없었던 것으로 봐서는
그 당시엔 적잖은 충격이었던 것 같다.
3 학년 때였던가..
철수가 하던 이야기를 철수 어머니가 우리 어머니한테 전하는 소리를 들었다.
"정숙이가 이상해졌어! 너무 조용해진 거 있지.."라고 했다고..
철수 어머니랑 우리 어머니랑은 내가 초등학교 입학 할 때부터 가깝게 지내셨기 때문에
교복을 맞추러 학교에 가든지 .. 소풍을 가든지 ..늘 함께 다니셨고
자주 서로의 집으로 내왕이 있었기 때문에 철수랑 나랑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그 아이도 키가 작은 편이라서 짝이 되었던적이 많았고 공부도 고만고만해서
사이좋게 잘 지냈었다.
하얀 피부에 내성적이고 지적인 경향도 있었던 것 같았다.
난 운동 잘하고 남들 잘 웃기는 스타일보다는
조용하고 지적인 분위기의 아이를 좋아했었다.
그 당시 팔랑개비란 별명처럼
난 전혀 다소곳하지 않았고 잘 웃고 많이 장난치고 ..
그런 날 보고 철수는 늘 웃어주고 늘 내편이 되어주었었다.
그래서 철수가 내 편이라는 것을 의심해 보질 않았었다.
3학년 어느 봄날 ..
얼굴도 예뻤지만 행동도 지극히 여자애다운 고운 아이가 전학을 왔다.
그 아이 이름이 춘희였다.
난 그 애가 참 맘에 들었고 우린 곧 친해졌다.
자연스럽게 나와 어울리던 아이들과도 같이 친해지게 되었고
당연히 철수와도 함께 어울려 노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
철수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가 함께 일을 보러 나가시고
철수네 집에서 여럿이서 뛰어 놀다가 다른 아이들은 가고
난 엄마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춘희를 붙잡아 두었다.
철수가 안 보이는 시간에 .. 난 장난기가 동했고..
춘희를 혼자 남겨두고 숨어버렸다. 단순히 춘희에게 장난칠 목적으로 ..
숨고 얼마되지도 않아 날 찾고 있는 춘희 앞에 철수가 날 찾으며 나타났다.
"정숙이가 안 보여.. 나 두고 그냥 갔나봐! .."
놀랬던 것은 철수의 반응이었다.
전혀 아쉬워하지도 않은채
"그래? 그럼 우리끼리 놀면 되겠네!"라는 소리를 하는 거였다.
난 그때 철수가 그 상황을 아주 반가워하고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았다.
그리곤 제 방에서 이것저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난 내 가방을 메고 숨을 죽여 살금살금 나와 ..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참으로 요상한 감정을 느끼면서 터벅터벅 걸어 집에 왔다.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정말 이상하게 몇 걸음 걸은 것같지도 않은데
우리집에 다 와버린 거였다.
다음 날.. 춘희는 나에게 신경질을 냈지만 ..
난 알고 있었다. 신경질 내는 척을 하고 있는 거라고..
이후로 춘희에게 약간 서먹해졌지만 그것은 금방 나아졌다.
춘희는 여전히 내 좋은 친구 역할을 하고 있었기도 했고..
그리고 바지차림에 남자애들하고 노는 나랑은 비교도 되지 않게
행동이 아주 조심스러웠고 여자다웠으며 따뜻한 춘희는
내가 보아도 특별한 아이였으니
철수가 그 아이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나름 했었던 것 같다.
어렸기도 해서 그런 요상한 감정에 오래 매이지도 않았겠지만
나 스스로의 깨끗한 인정에 의한 것이기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후의 기억은 이상하리만큼 아예 없다.
철수가 이사를 가서 어느 중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날 이후의 철수와의 기억은 정말 신기하게 백지 상태이다.
그런데 그때의 일이 내겐 정말 충격이었는지 ..
그 이후로 난 지극히 여자다운 애로 자리매김에 들어가게 된 사실이다.
더 이상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ㅎㅎㅎ
너무 어린 나이에 느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요상한 감정은
설익은 아픔은 분명했다..
고등학교 때 그룹과외 하던 아이가 철수와 중학교 동창이었는데
중학교 때 학교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는 이야기를 그 아이에게 전해들은 것이
철수에 대한 마지막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