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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과연 존재감의 표현이었을까?

난 글을 읽어 내는 소화력이 부족하다.

어떤 글은 읽어지기는 한데 도저히 무슨 말을 쓰고 있는지를 가름할 수 없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식인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어휘들의 나열과..

목적지점이 없어 계속 표류하는 분석과 추론들은 ..

불의 속성을 가진 나의 내면에 기름통을 붓는 것 같아 도대체 읽어 낼 수가 없었다.

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그런 글을 삼 분이상 읽어 낼 인내심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상이든 철학이든 지식이든 

필자가 그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소화시켜 내어 놓은 글들만이 

나에게 생명력있는 글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평소에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늘 같은 패턴의 글이 있었다.

그 글에는 늘 생명력이 없었다.

그러나 그 글은 늘 움직이고 있었다.

 

어제는 그 글이 하도 게 거품처럼 끊임없이 보글보글 나오기에

고개를 쳐박고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눈으로 그 상황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귀로는 성가신 기계음과 타자치는 소리가 산만하게 들려 귀를 닫아버렸기에..

 

나는 ..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졌다.

  

도화지를 꺼내들었다.

  

 

도화지 한가득 시퍼런 바다에 다양한 생명체들이 움직이는 가운데..

몸집에 비해 입이 지나치게 큰 물고기가

오른쪽 상단 위에서 아래를 향하여 입을 쫙 벌리고 있다.

 

그 많은 거품들이 어떻게 계속 나올 수 있는 것인지 궁굼할 정도로

거품을 토해내 바다 전체가 크고 작은 물방울들이 보글보글 있는 그림이었다. 

 

 

그 바닷고기는 어떻게 그렇게 끊임없이 거품을 낼 수가 있는 것일까?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바다 공간에서 그 이질감을 견디며 왜 ?

 

자신의 그 게 거품으로 그 바다 공간의 시야를 잠깐 잠깐씩 흐리고

멀리서 그 바다와 어울리는 물고기들이 다가와 기웃거릴라치면 

그 얼굴에다 자신의 그 게 거품을 부글부글 품어 낸다.

 

 

난 그 게 거품 하나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았다.

 

믿음과 전혀 다른 곳에서 기인된 ..

자기 의로서 신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지극히 하와의 후손다운 의지의 산물이었다.  

 

그는 유능하지도 않은 바벨탑의 석공이었다.

 

바벨탑의 석공들이 모여지고 있다.

 

그 바벨탑의 석공들은 ..

부패한 교회와 조직의 더러움을 깨닫고 나온 이들에게

이제껏 매여있던 예수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고정관념이란 두꺼운 알에서 깨고 나와 ..

 

또 다른 사상과 관념 속에서 하나님께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속삭이고 있다.  

성경 위의 또 다른 성경이라 감히 이름붙인 더러운 영의 세계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보고 들으며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믿음의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그들은 정녕 아담의 후손들이 지어올리게 될 마지막 바벨탑의 석공들이다. 

 

우리가 머무는 바다 속에서 ..

우리의 시야를 흐리도록 내어 놓는 그 게 거품은

허영으로 가득찬 무가치한 지식을 사랑하고 있는 한 교만한 젊은이의 존재감의 표현이 아니라

앞으로 드러나게 될 영적 바벨탑을 쌓고 있는 어린 석공의 분별없는 도끼질의 소란스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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